리 단위 불구 기차역 덕분에 유동인구 많아 성업

[주말ON-정은영의 新 다방열전] 39. 아씨다방, 그리고 덕하 다방들(1) 파출소·면사무소·오일장 따라 우후죽순 생겼던 다방들 10년 전만 해도 4곳이나 영업

2024-11-07     정은영
삽화. ⓒ왕생이

 

시작하면서

단풍잎이 고운 가을이 절정이다. 며칠 전 고교 동기 몇 명과 오랜만에 부부 모임을 했다. 7080 청춘들은 이제 모두 정년퇴직했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서울, 대구, 합천 등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자주 모이기가 쉽지는 않다. 모임 가진 날 하필 비가 내렸다. 합천 친구가 창밖을 보며 걱정했다. 마늘을 심어야 하는데 근래 비가 자주 내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야, 비 오면 촌 다방에 가서 커피나 마시면 되지 않나, 요새는 다방에 안 가나, 촌 다방 경기는 좀 어떻나?"

 친구는 "일한다고 바빠서 다방에 갈 여가가 없다. 촌 다방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현상 유지는 되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촌 다방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변화를 거친 것 같다. 요즘 촌 다방은 들에서 일하다가 전화 한 통이면 커피는 물론이고 컵라면과 뜨거운 물까지 갖고 온다는 것이다. 

 아직도 레지 언니들이 서너 명 정도는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다방 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 됐다. 

 도시 다방들은 죽을 쑤고 있지만, 촌 다방들은 나름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남는 법을 익히고 있다. 과거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배달 가능한 승용차로 운송수단도 바뀌었다.

 

덕하 다방들 위치.

 

도심 변두리 반 촌에 아파트 건설 붐

촌 다방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량읍 덕하 다방들을 생각했다. 덕하도 불과 10년 전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반 촌이었다. 대부분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인 상태였다. 

 하지만 어느 날 덕하는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아파트 건설 붐이었다. 시내에 마땅히 아파트 지을 땅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건설사들은 울산에서 10분 이내 덕하를 찾아오면서 천지개벽을 한 것이다.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 중심상권은 전통적으로 오일장 덕하장터 일대다. 남창 옹기종기 오일장과 더불어 울산 동해권 대표 시골장이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덕하는 5~6곳의 다방에서 커피 쟁반을 한쪽 손에 들고 또 한쪽 손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아슬아슬 배달 가는 레지들의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세상이 급변했다. 지금은 레지들 오토바이 소리는 고사하고 다방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그럴 생각을 하고 있다. 대형 카페에 밀린 덕하 다방들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시절 날렸던 다방들의 추억만 간직하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울산 도심과 가까운 반 촌 덕하는 2021년 12월 28일 울산~부산 전철 동해선 개통과 더불어 교통 편의성이 향상되면서 주거지역으로 개발이 가속화됐다. 한적한 농촌으로 남아있던 덕하는 몇 년 사이에 아파트가 마천루를 이루고 있다. 현재도 곳곳에 아파트공사가 한창이다.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대부분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는 중이다. 덕하리의 과거는 덕하 장터 주변뿐이다.

30년 전 이 덕하거리는 방석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석유화학공단 시작점이자 울산의 관문

덕하는 근래 새롭게 굴기하고 있다. 행정단위도 면 단위에서 읍 단위로 승격됐다. 울주군이 울산시 남구 옥동 군청사를 2017년 12월 22일 55년 만에 청량면 율리로 이전하면서 지방자치법 제7조 '인구 2만명 미만이라도 군 사무소 소재지 면은 읍 승격이 가능하다'는 규정에 따라 2018년 1월 8일 행정안전부로부터 면 단위에서 읍 단위로 승격됐다. 

 읍 승격을 위한 기준 인구수가 모자라는데도 읍으로 승격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군청이 옮겨온 덕이라며 원님 덕에 나발을 분 셈이라고 했다. 

 덕하는 동쪽 작은 들판 너머 있는 울산석유화학 공단을 마주하고 있다. 이 덕분에 매일 밤, 원도 한도 없이 울산석유화학 공단 야경을 볼 수가 있어서 밤이 더 화려한 곳이었다.

 덕하는 리(里) 단위인데도 청량읍보다 더 알려졌다. 울산 북구 농소동보다 호계리가 더 알려졌듯이…. 이는 대표 교통수단이던 기차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량읍 청사와 파출소를 비롯해 다양한 읍 단위 기관이 몰려 있는 덕하는 동해남부선을 따라 울산으로 오다 보면 울산석유화학 공단 시작점이자 울산 관문이다. 

 

 

추억속으로 사라진 덕하검문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덕하에서 공업탑로터리와 울산석유화학 공단 사거리에 덕하검문소가 있었다. 

 그때는 덕하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 남창, 온산, 기장 등지의 동해안 지역을 지나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없다고 봐도 됐다. 다시 말해 부산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이 덕하검문소였다고 보면 된다. 

 남창, 덕하 지역에서 울산 시내에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직장 회식할 때도 술 한 잔도 마시지를 못했다. 차를 운전하고 이 검문소를 지나칠라치면 한결같이 창문을 내리고 검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신분증 보여주십시오"

 초소병의 선글라스 낀 무표정한 불심 검문에 얼떨떨했던 시절이 오늘은 까마득한 과거다. 신분이 불안한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던 덕하검문소는 이제 동해선 철로 아래에 옛 흔적으로 남아있다. 

 반 촌 덕하리는 근래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들이 마천루로 치솟고 있다. 덕하 전철역도 최신식 건물이다. 

 교통이 편리해지자 젊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덕하 주변 카페들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2일과 7일 열리는 덕하 오일장은 쪼그라들어서 볼 것이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시골장 모습 그대로다. 

 그래도 장날에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이웃들 안부도 알고 장 구경도 할 겸해서 덕하장터로 나온다. 그냥 나오기가 그렇던지 논밭에 가서 팔 수 있는 농산물 한 두어가지는 들고 온다. 그 덕분에 푸성귀는 물론이고 꿀꿀대는 돼지 새끼, 병아리, 고양이, 강아지도 있다. 

 덕하 장을 둘러보면 농촌이 겪는 공통적 문제이긴 해도 장에 오는 사람들이 노인들이다. 그러니까 어느 시골장을 가도 노인들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아씨다방 앞에 배달용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있다.

월급날 직장인들 방석집서 밤 새기도

"덕하에도 다방이 있기는 하나" 

 "덕하를 뭐로 알고 하는 말이고…" 

 덕하 사람들은 이 말 한마디에 자존심이 상했다. 덕하 사람들은 우리도 시내 사람들처럼 다방 가고 술집 가고 사람 하는 짓 다 하고 살았다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1990년대만 해도 덕하는 다방이 대 여섯 곳, 또 일명 방석집으로 불리는 술집들이 덕하장터에서 부산 가는 도로를 따라 한 골목을 이루고 있었다. 월급날 직장인들이 잠시 들러 술 한잔 마신다는 것이 그만 꼬박 밤을 새운 경우가 흔했다. 

 당시는 해가 지면 거리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구포집, 부산집, 청도집, 함양집, 영덕집 등등이 밤마다 울산석유화학공단 화려한 불빛만큼 예쁜 초롱불을 문밖에 내걸었다. 술집들 문밖에 나온 아가씨 미소에 한눈팔려 들어갔던 청춘들은 좀 전에 본 아가씨가 들어와서 옆자리에 앉을 줄만 알았다. 

 숫기 없는 사내들 몇이는 문밖의 아가씨를 기다리며 밤새워 마신 맥주가 한 짝씩(1상자)이나 됐다고 했다. 그 시절 잘 나갔던 술꾼들의 영웅담은 언제 들어도 삼국지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그렇게 말술을 마셨던 술꾼들도 이제는 모두 늙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그들도 요즘은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누가 술을 따라주면 받아놓기는 해도 마시지는 않는다. 과거를 생각하며 그저 웃는다. 그들은 맥주 한잔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혈압이 높다나 뭐라나. 강물처럼 흘러간 과거는 그저 지나간 일일 뿐이다.

 역사에서 10년은 세상 변화기준 잣대이다. 덕하의 세월도 마찬가지다. 10년 전만 해도 덕하에는 아씨다방, 상록수 다방, 한일다방, 신선다방 등 최소 4곳의 다방이 영업하고 있었다. 

 다방들은 장터에 있는 상록수 다방을 제외하면 대부분 청량면(읍)사무소, 구 덕하역과 파출소 등 행정기관 주변에서 영업을 해왔다. 

 리 단위 마을에 다방이 4곳 이상이나 있었다는 덕하는 시내 사람들보다 경제력 등에서 뒤지지 않았다. 그들의 돈줄은 덕하 들판 하우스다. 온 들판이 하우스로 덮일 때도 있었다. 여기서 나온 상추, 오이 등이 울산 시내로 나와서 돈과 바꿨다. 

 그래서 하우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지갑이 두둑했다. 덕하 다방들이 이 돈줄을 보고 영업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돈이 돌다 보니 다방과 술집들이 생겼다. 

 현재 덕하에서 문을 열고 있는 다방은 두 군데다. 그중 한곳을 들어가 봤다. 아씨다방이다. 지난해 이야기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아씨다방

이 다방은 덕하검문소에서 청량읍 파출소와 구 덕하역 앞을 지나 청량읍 행정복지센터 방향으로 약 50m를 가다 보면 주요 도로를 물고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로변 다방 벽은 빨간 벽돌 그대로다. 

 단지 달라진 풍경은 배달용 오토바이가 사라진 점이다. 10년 전에는 다방 앞에 배달용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있었고 다방 유리창에 에어컨 가동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있었는데 그간 세월에 사라졌다. 에어컨 가동이라는 것이 손님을 끌 수 있는 이유였다는 것이 그때는 당연했는데 지금은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