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동굴속으로 파고든 수도자의 거룩한 믿음
[주말ON-감마르조바, 조지아] 13. 흔들리며 가는 여정의 끝자락에서!
끝 모를 산길 고독의 시간 견디며 걷는 순례자처럼
어디쯤에서 불쑥 천상의 화원이 나올 듯한 비포장 길을 몇 시간째 가고 있다. 이러다 나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 체첸공화국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두려움마저 생긴다. 양떼를 몰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으니 아직도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을 길게 가리킨다. 아마도 계속 가라는 뜻일 게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그 맑던 하늘은 별안간 안개가 전차군단처럼 몰려와 천지사방을 분간조차 못하게 만든다. 민달팽이가 나뭇잎을 기어오르듯이 속도는 자꾸만 느려진다. 십자가 전망대를 돌아서자 길이 안개에 묻혀 산도 하늘도 분간조차 할 수 없다. 별안간 깊은 바다 속에 난파된 한 척의 배 같다. 간간이 몰려왔다 사라지는 바람에 안개는 군무를 춘다. 차에 갇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제 거의 다 왔지 싶은데 돌아서려는 마음 한 쪽이 무너지는 걸 겨우 추스르며 혼자 중얼거린다. '왜 이리도 자연의 속내는 알다가도 모를 것인가!' 앞만 계속 주시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안다. 체념이 이토록 발걸음을 무겁게 할 줄이야. 어쩔 수 없다. 돌아선다고 해서 돌아갈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더는 지체했다간 이 높은 산에 둘려 눈이라도 내리면 더 큰 사고로 낭패다. 눈 먼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듯 엉금엉금 차를 들쳐 맨 꼴로 온 길을 돌아 나간다.
내가 언제 이만큼 왔는지 싶을 만큼 길은 더욱 멀다. 몇 시간을 달리니 안개가 어느 새 마술을 부리듯 사라지고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진다. 꽃과 뭉게구름이 산허리에 걸려 장관을 이룬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길을 달려 어느 작은 민박집에 들러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딱히 정해진 코스가 있는 건 아니니 어제 못 간 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호수를 비켜 달리고 달린다. 어젯밤 간절한 기원이 닿았을까. 오늘은 너무 맑고 평화롭다. 어제 보았던 풍경이라 낯설지 않은지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천상의 선율을 튕기듯 물빛이 가뭇없는 진발리 호수, 물결이 소녀의 머리카락처럼 찰랑거린다.
몇 시간을 달렸다. 험준한 2,700m의 다트비스바리 길을(Datvisjvari pass) 넘었다. 간간이 집 몇 채씩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아마도 아르구니Arghuni 협곡에 위치한 마을인 것 같다. 다 왔다는 뜻이다. 집과 집이 서로를 품으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저들의 삶이 경이롭다. 아마도 남루한 고독의 시간을 견디며 길을 걷는 순례자의 걸음이 저와 비슷할까.
사각 블럭같은 집들 한 몸인듯 아닌듯 연결된 샤틸리 성채
강줄기의 거친 물돌이가 큰 바위를 비켜 흐르는 저기쯤 불현 듯 나타나는 성채! 바로 샤틸리(Shatili)다. 약 2,000년 전부터 이곳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보면 정말 인간의 한계란 우리의 작은 편견에 지나지 않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잊힌 누군가의 얼굴을 발견한 듯 성 앞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조지아인도 이곳으로는 좀처럼 오기 어려운 곳, 고대 유적지의 샤틸리 성채는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인다. 산 너머 이민족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만치 돌을 정교하게 쌓았다. 가만히 보면 수 십 채의 집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져 있는가 싶다가도 떨어져 있고, 다시 한 몸을 이루면서 60여 채가 마치 사각 블럭 같다. 요새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한 여름의 더위를 비웃듯 서늘하다. 출입구는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돼 있으며, 1,2층은 가축을 키우고, 꼭대기에는 사람이 거주했단다.
지금은 카페, 호텔 등으로 다양하게 리모델링해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고 있지만, 길이 워낙 험해 손님이 오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맨 꼭대기 카페에 들렀다. 나는 시원한 음료수 하나를 시켰다. 주인이 다가와 사진 한 장을 찍자고 했다. 아마도 낯선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이리라. 나무의자에 앉아 흐르는 강줄기 끝으로 펄럭이는 조지아 깃발이 품어 안은 평화가 승리의 상징인 듯 숭엄해 보였다.
조지아인들의 거룩한 신전 다비드 가레자
어릴 적 장롱 속에 숨겨둔 사탕을 살며시 꺼내듯이 오늘은 짜카리아 친구랑 조지인의 영적 명소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한국에서 몇 번씩 검색하며 사실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굳이 목적지가 좋아서라기보다 가는 길이 파스텔로 칠해놓은 듯 동화속의 그림 같은 곳이라 늘 동경하고 있었던 터였다.
시내를 벗어나자 그는 내게 "한국에 가고 싶다" "일자리를 추천해 줄 수 있느냐"며 계속 물었지만 불쑥 부를 자신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따라 나서겠다는 듯 적극적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내 뜻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괜히 미안했다. 택시 운전으로 부모님과 두 아이를 키우기엔 조금은 힘겨운 듯 보였다. 택시기사로 하면 한 달에 얼마를 버느냐고 물으니 우리 돈으로 약 50만 원 정도 되는 듯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남자 월급이 얼마냐며 호기심이 많다. 세 번째 만남이니 이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것은 분명했지만, 왠지 동경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만 흐리게 할까 싶어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는 연거푸 담배를 피우거나, 길가 작은 매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사 마시는 걸 좋아했다. 담배를 피우는 건 좋지 않다며 만날 때마다 충고했지만 아직도 금연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깨를 툭 치면, 그저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크게 웃는 걸로 겸연쩍음을 비켜갔다.
금방 또 다른 이국적인 광활한 초평이 펼쳐진다. 마치 쾌속정이 바다위의 물살을 가르듯 우리의 차량은 푸른 초원을 가르며 언덕을 넘어갔다. 저 멀리 마을이 그림보다 더 명징하게 다도해처럼 펼쳐 있다. 말과 양떼가 서로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작은 바람에도 하늘거리며 제 향기를 흩는다. 모든 게 조화를 이루어 주는 이 일체감의 광휘가 황홀하다.
언제나 그렇듯 돌아서기 아쉬운 여행의 마지막
짜카리아도 기분이 좋은지 신나는 조지아 음악을 틀어 놓고 흥얼거린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묶고 있을까. 내일이면 기약 없는 이별을 할 테지만, 그 시간을 미리 당겨 슬픔을 붙들 이유는 없겠다.
저 끝에 푸른 호수가 하늘빛을 반사하며 유리거울처럼 또렷하다. 초원과 호수와 하늘, 삼원색의 극치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렇게 두어 시간을 달려 드디어 다비드 가레자(David Garedzha)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시리아에서 조지아로 들어온 13명의 선교사 중 한 명인 다비드 선교사에 의해 처음 조성되기 시작했다. '가레자'는 '무덤'이라는 뜻으로 다비드 선교사가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6~9세기경에 바위를 깎아 만든 이 수도원은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였으며 100개가 넘는 동굴이 있으며, 조지아인은 이곳을 '거룩한 신전'으로 여기고 있다. 신을 향한 믿음의 분량을 감히 측량하기 어렵지만, 수도사들의 한없는 기도가 지금의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힘의 근원이 아닌가 싶었다.
아쉽게도 이곳은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지역으로 서로 작은 마찰이 빈번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분쟁으로 갈등이 이어지자 조지아에서는 수도원을 온전히 영유하기 위해 이 면적만큼 다른 땅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바위산을 오르자 저 멀리 국경수비대가 서 있다. 두 나라의 안녕과 화평을 기원하며 옛 수도사가 걸었을 길을 따라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었다. '다비드 가레자'의 어원은 '자학'이라는 뜻이 담겨 있단다. 자학! 스스로에게 엄격하리만치 학대하며 깎아내리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더 낮은 자세로 믿음을 요구하는 수도사들에게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겠나. 자신을 버리는 일, 그리고 오롯이 신을 향한 경배는 위대하고 지순하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엠마오 마을로 가는 제자처럼 조지아 여행의 일정은 오늘 이곳을 끝으로 멈추게 된다. '누구를 안다고 하는 것' 그 안다는 뜻이 주는 범위가 너무 크고 넓어서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의 저 끝으로 또 다른 풍경이 손짓을 한다. 돌아선다는 건 결코 포기가 아니라 다음을 기다리는 찬미의 시간임을 누가 알까. 내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에 인격적 만남의 새로운 누군가를 기대하며 나는 바위보다 무거운 걸음으로 수도원을 천천히 빠져 나왔다. 이서원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