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전화 한통이면 배달 오는 울산 유일한 지역

[주말ON-다방열전] 41. 봉계 정다방과 그리고(2) 짧은치마 아닌 줌마스타일 레지 쟁반대신 가방 들고 뚜벅이 배달 추운 겨울 장터에서 일 보고 찾아 청춘시절 노래·커피 한잔에 행복 농촌 불구 찾는 손님 꾸준히 있어 50년 전통 정다방 등 6곳 영업중 다방 작별 아파트권 언양과 대비 울산권서 방어진 다음으로 많아

2025-01-02     정은영
삽화. ⓒ왕생이
정다방 벽에 옛글·그림이 그려져 있다.
정다방 간판.
길다방 간판.
로또 다방 간판.
유림다방 간판.
청기와다방 간판.
수연다방 간판.

 

봉계는 아직도 다방이

“봉계에 다방이 몇 개쯤 있을까"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요새 도시나, 농촌이나 다방이 어디 있노"라고 제대로 숨도 쉬지 않고 직답한다. 하지만 “아니올시다"이다. 봉계는 아직도 다방들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10년 전인 2013년에 갔을 때도 유리창에 50년 전통 스티커를 붙였던 정다방이 2023년에도 당당히 50년 전통을 그대로 붙인 채 영업하는 등 봉계에는 모두 6곳의 다방이 있다. 아니 더 있을 수도 있다. 필자의 눈에 띈 것만 여섯 곳이다. 정다방 그 주변으로 유림다방, 수연다방, 로또다방, 길다방, 청기와다방이 언양과 경주를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빨랫줄에 참새 앉은 듯 줄지어 있다. 

 봉계 다방 간판들은 볼수록 정겹다. 할 일 없이 봉계 장터 앞 언양 경주 간 길을 왔다 갔다 몇 번 했다. 그리고 봉계는 경주로 나가는 길목에 카페가 몇 곳 더 있다. 

 이웃한 언양에 다방이 사라지고 있는데 비해 봉계는 아직도 다방이 많다. 남들이 보면 선뜻 이해하기가 곤란하지만 사실이다. 

 언양은 아파트문화가 들어오면서 다방 대신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점차 언양은 도시형태를 갖추면서 다방과 작별하고 있다. 

 최근 가 보니 언양은 다방이 3곳에 불과하다. 단순 비교하면 봉계가 언양보다 다방이 두 배로 많다. 봉계 같은 농촌에 아직도 다방이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다방을 찾는 손님들이 꾸준히 있음이다. 

 울산지역 다방 이야기를 쓰면서 봉계에 다방이 많은 데 필자도 깜짝 놀랐다. 봉계는 울산권에서 방어진 다음으로 다방이 많은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정다방의 자존심

앞에서 잠시 밝혔듯이 정다방은 1990년대만 해도 봉계 버스 종점 앞 감초한의원 옆 기와집(현 유통불고기)에서 출발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같은 이름표를 달고 다방을 이전한 것이다. 과거 정다방의 기와집 시절을 아는 사람이면 여타 다방에 대해 제법 지식이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봉계 다방들 규모는 도토리 키재기 하 듯 고만고만하다. 이 지역 다방의 특이한 점은 아직도 배달이 있다는 점이다. 울산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배달 전문이던 덕하, 남창도 다방 앞에 세워졌던 배달용 오토바이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도 쟁반 아닌 가방을 들고 배달 다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울산에서 유일하게 커피 배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 갔을때의 기억이다. 

 2023년 7월, 극한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최근 극한 폭우로 전국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불볕이 쏟아지고 있다. 문자를 보니 노약자는 밖에 나가지 말고 자주 물을 마시라는 내용이 수시로 전달되고 있다. 이렇게 더운 날 봉계지역 다방을 가봐야 하는데 어쩔까,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생수 한 병 챙긴 후 오후 2시 즈음에 불볕을 뚫고 봉계로 향했다. 

 봉계에서는 어느 다방을 먼저 갈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추억을 찾는다면 당연히 정다방이다. 이 다방으로 가는 길에 다방들이 있다. 먼저 봉계 들머리 봉계 보건지소 맞은편 수연다방, 이 다방을 지나니 다음은 유림다방이다. 그리고 정다방은 봉계 장터 맞은편 10년 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정다방 주차장에는 인근 주민들이 타고 온 1톤 트럭 두 대가 주차돼 있다. 밖에서 봤을 때 다방 홀에 불이 꺼져 있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문고리를 잡아 당겨보니 너무 쉽게 열렸다. 어차피 문을 열었으니 들어가 볼 수밖에…. 

 홀에는 촌노 몇 명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이 불쑥 나타나서인지 모두 경계하는 빛이 역력하다. 조금 전 왁자했던 웃음소리가 난 것을 보면 분명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분위기를 깬듯해서 미안했다. 화장실 쪽 빈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바깥은 불볕으로 땀이 삐질삐질 나오는데 다방 안은 에어컨이 빵빵하다.

 짧은 치마의 레지는 간 곳이 없고 대신 줌마 스타일이 무표정하게 다가오더니 테이블에 물잔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레지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줌마 레지가 다가와서 뭘 마시겠는지 물었다. 뭘 마실까 고민하다 다방 커피를 달라고 했다. 다방 커피는 봉다리 커피가 기본이다. 봉다리 커피는 세상 사람들의 공통입맛이다. 커피값은 한잔에 3,000원, 이 정도면 봉계 장터에서 일 보고 커피 한잔으로 더위를 식힐 만하다.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묘했다. 20년 전, 기자로 활동할 때인데 그때 선배들과 후배들 기억이 난다. 함께 1박 2일 경주 보문 한국콘도에서 MT를 했을 때였다. 분위기에 취해 과음한 탓으로 이튿날 아침 비실 비실 했었다. 울산으로 오다 봉계에서 커피 한잔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로 했다. 

 선배가 우리 중에 누가 봉계지역 다방을 잘 아느냐고 해서 내가 나섰다. 과거 한기철 울산연협 지부장과 간 적이 있는 정다방으로 향했다. 그 당시 당당히 정다방에 발을 들인 우리는 구석진 곳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커피를 시켰다. 진한 화장의 레지 아가씨가 껌을 씹다 말고 엽차 잔을 먼저 날랐다. 

 “다방 커피 다섯 잔"

 짧은 치마, 가슴팍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었던 레지가 커피를 날라다 주면서 한마디 했다. “오빠, 나 커피 한 잔 마셔도 될까요." 당연히 그러라고 했더니 그녀는 커피 대신 요구르트를 마셨다. '커피는 피부를 거칠게 한다.'라고 했던가. 

수연·유림·길·로또·청기와다방

정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옛일을 생각할수록 추억이 엊그제 일처럼 새록새록 하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는 봉계 장터와 그 일대 다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봉계 장터는 불고기 특구 지정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냥 오일장이 섰던 난전이 사라지고 대신 2층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오일장 분위기를 기대해서인지 낯설었다. 장날이 아닌데도 과일 가게가 문을 열었다. 시골장이 아니라 도시의 어느 상설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봉계에 왔다고 여섯 곳 다방 모두를 가 볼 수는 없다. 이미 커피는 정다방에서 마셨다. 그리고 다방 분위기도 챙겼다. 다방마다 특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봉계 다방의 특색은 배달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오토바이나 승용차를 타고 배달하지는 않았다. 그냥 손바닥만 한 봉계 일대를 뚜벅이로 걸어서 다녔다. 이만하면 봉계 다방 분위기는 얼추 파악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한우 전문 불고깃집들도 주차장이 한산하다. 주차장은 동시에 승용차 10대 정도는 쉽게 주차 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주말 저 주차장이 만원사례가 될 때 이 지역 다방들도 손님으로 가득 찰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 도시에서 봉계로 오는 사람들은 불고기를 먹고는 카페 등지를 찾아간다. 그 바람에 봉계에서 10여 분 거리인 산골 치술령 박제상 유적지 일대에 카페가 많다. 최소 대여섯 곳은 된다.  

 정다방 외 나머지 다방들에 대해 한 꼭지 정도는 챙겨야 봉계 다방 이야기가 끝을 맺을 것이다. 먼저 수연다방이다. 언양에서 봉계에 들어서면 수연다방이 있다. 이름이 청초하다. 

 “수연이라"

 활짝 핀 연꽃을 떠올렸다. 요즘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연꽃은 제철이다. 이 다방에 가면 연꽃처럼 청초한 분위기가 날까 하면서도 그냥 살짝 지나쳤다. 

 다음은 수연다방 맞은편에서 조금 가면 유림다방이다. 지난해였던가, 봉계를 지나다가 유림다방을 보았다. 

 필자는 습관적으로 다방을 보았다면 무조건 한 컷 정도는 찍어야 한다. 유림다방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그때였다. 주인이 나와서 무슨 일인가 살폈다. 나는 그냥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한참을 달려와서 생각하니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도망을 치다니 하는 생각에 웃고 말았다.

 커피를 한 잔 마셨던 정다방을 지나 봉계 장터에 들어섰다. 봉계 장터는 2층 건물 상가가 있다. 상가 들머리 골목에 길다방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길다방은 다방 이름치고 흔한 편에 속한다. 한때 울산 중구 병영파출소 맞은편에도 길다방이 있었다.

 길다방을 돌아서 과거 버스 종점이 있는 곳으로 나오자 봉계 번화가인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월평 방향 건물 2층에 로또다방이 있다. 로또다방! 한 방 터지면 팔자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서라 팔자에 없는 돈벼락을 기다린다는 것은 봄날 헛꿈에 불과하다. 

 과거 버스 종점이었던 곳에 대신 터미널 슈퍼가 있다. 터미널 슈퍼 2층이 청기와다방이다. 봉계에서 경주 나가는 길목이다. 
 

정은영 작가·울산불교문인협회장

 

마무리

봉계 다방 일대를 돌아봤다. 느낌은 봉계가 불고기 특구로 지정됐지만 하나 더 추가한다면 봉계 다방 특구로 지정해도 좋을 듯하다. 불고기만 먹고 갈 것이 아니라 봉계지역 어느 다방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청춘 시절 노래 한 곡이라도 듣고 간다면 이만한 행복도 드물 것 같다. 

 불볕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여름, 그리고 단풍으로 물들었던 가을도 저물었다. 지금은 외투를 입어도 추운 겨울이다. 이렇게 계절은 쉼이 없다. 

 다방은 아무래도 겨울에 찾는 것이 제격이다. 따끈한 다방 커피가 시린 맘을 달래주거나 녹여줄 것이다. 도심에서는 거의 찾기가 힘든 다방이 봉계에서는 넉넉하다.

 모처럼 마무리로 조용필 버전의 한오백년을 부른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년 살자는데 왠 성화요." 

 겨울 봉계 들 바람이 시원하다. 봉계에는 아직도 다방이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