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둔 동네 공사 울타리 속 잠든 추억
[주말ON-정은영의 新다방열전] 42. 까치다방과 수암로 다방들(1) 시장 중심으로 사람 붐비며 한 때 10여곳 성업한 자리 대규모 아파트가 대신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변화려니 앞으로 얼마나 더 바뀌어 갈까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열렸다. 누구나 편안을 누릴 수 있는 을사년이 되길 소원해본다. 지난 2023년 8월 말 까치다방과 공주다방 등 공업탑 로터리에서 야음시장까지 다방들을 돌아봤다. 아쉽게도 그간 다방들이 이미 문을 닫고 간판마저 흔적을 감추었고 야음시장 재개발로 상가 2층에 있던 공주다방과 한성다방들도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다행히 공사 가림막을 설치한 틈새로 옛날을 엿볼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 기억들을 모았다.
2023년 8월 어느 날 기억이다. 모기 아래턱이 떨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다. 처서 덕을 본 것인지. 무지무지 더운 여름도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 처서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잠깐잠깐 스치는 바람결에 마른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가을 냄새가 진득하게 배여 있다. 문 앞에 가을이 대기하고 있다.
다방열전을 쓰면서 수암로를 물고 있는 다방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계탑을 중심으로 한 도심지역의 음악다방과 공업탑 로터리 원다방 등을 비롯해 그 많고 많은 울산지역 다방을 찾아다니느라 수암로 일대는 아껴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수암로를 물고 있는 다방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몇 개 다방이 문을 열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수암로 다방들은 과거 야음동과 선암도, 수암동, 신정동 일부 산비탈 농지가 마을로 변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성장 발전한 지역이다. 지금도 여전히 잘나가는 수암시장은 울산 여러 전통시장 가운데서 신정시장과 함께 전통시장으로는 단연 선두급에 속한다. 수암시장과 야음시장이 발전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발전하고 사람이 많이 살았다.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이들을 상대하는 휴식공간으로 술집과 당구장, 다방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석유화학공단 조성되며 공업탑로터리 물고 생긴 수암로
울산 관문 공업탑이 수암로 기점이다. 울산석유화학 지원공단이 조성되면서 공업탑 로터리를 물고 생긴 도로가 수암로다. 수암로를 물고 수암시장과 야음시장 등이 있으며 1970년대 신정, 야음주공아파트 등이 생기면서 상권이 형성됐다.
수암로는 공업탑 로터리에서 여천동 고개까지 구간이다. 그 시작점인 공업탑 로터리 주변 수암로 일대는 최근 주상복합아파트로 개발되면서 상가들은 대부분 비어있거나 흘리고 있다. 그리고 울산여상 주변은 이미 고층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일대는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바뀔 것이다.
일단 먼저 천천히 차를 운전하면서 눈에 거리를 익히고 다음에는 다방이 있는 곳에서는 다방에서 마담과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 다방 열전 기본 코스다. 그런데 야단이 났다. 공업탑에서 야음주공아파트 진입 방향과 직선으로 연결되는 사거리까지 왔는데도 다방은 흔적이 없다. 이러다가 오늘 허탕 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과거에는 야음 주공 아파트 입구 소방도로 코너에도 분명 다방이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 다방 이름이 가물가물했다. 야음 다방인가 했는데 아닌 것 같다. 수암시장 주변에서는 혹시 하고 수암다방을 찾았다. 아뿔싸! 모두 허사였다. 수암로에서 다방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새 땀이 등 짝을 후줄근히 적셨다. 꼭 소나기 한줄기를 맞은 듯했다.
아파트촌으로 급성장 중인 야음·수암동
지명에 대해 알고 나서 그 지역을 갔을 때 더 정감이 갈 때가 많다. 다방을 찾기전이지만 먼저 수암동과 야음동의 유래를 간략히 적는다. 이 일대는 신선산과 선암호수공원이 위치하며 수년 전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입주로 단독 주거형태에서 아파트촌으로 급속히 변화가 진행 중이다. 수암(秀岩)동의 이름이 된 수암은 신선산 북쪽 지역을 부르는 이름으로 바위가 수려하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본래 야음동 지역인데 1985년 야음2동이 야음2·3동으로 분동했고 2007년에 야음3동을 수암동으로 행정동 명칭을 개칭했다. 그러니 원 뿌리는 모두 야음동에서 시작하고 있음이다.
야음(也音)동은 이름이 특이해서 그 유래를 찾아봤더니 조선 숙종 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울산의 유서 깊은 동네였다. 야음은 바람이 불면 동네 뒷산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야음리'라 불렀다고 한다.
지명의 뜻을 알고 나면 웃음이 나는 곳 중에 대표적인 곳이 야음동 아닐까 한다. 아마 야음동에 대해 그동안 "왜 야음동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진 이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궁금증을 해소해도 좋겠다. 어찌 되었건 야음동과 선암동 수암동은 신선산을 가운데 두고 있다.
더운 날 헤매다 나타난 까치다방, 보석 찾은 기분
3~4개월 전이었을까 싶다. 수암로를 지나가면서 까치다방을 봐 두었는데 어디쯤일까, 그새 문을 닫은 것은 아닐까, 날이 더워서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 들어가 봉다리 커피 두 개를 타서 얼음을 띄워 마실 작정을 했다. 그러나 긴가민가 하는데도 까치다방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애타게 했던 까치다방은 공업탑 로터리에서 수암시장 근방까지 와서야 눈앞에 나타났다. 수암시장을 100여 미터 앞두고 까치다방이 있었다. 까치다방은 다방 이름 치고 썩 나쁘지 않다. 예부터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 온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까치다방 이름은 흔한 다방 이름이다.
까치다방은 30년 전 울산종합운동장 앞 덕원빌딩 지하에도 있었다. 물론 그 다방 주인이 이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시절 반구동에 살았을 때는 수시로 들락거렸던 터라 다방 이름이 낯설지는 않았다.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낮인데 지하 계단에 불이 켜져 있다. 다방 입구까지 내려갔다. TV 소리만 요란하고 사람의 인기척은 없다. 지하다방 문을 들어서자 겨우 주인의 인사가 들려왔다.
"어서 오이소"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주인이다. 그리고 자리를 안내했다.
"여기 앉으시면 선풍기 틀어 드리지예"
등짝이 땀에 젖은 것을 눈치라도 챈 것 같다.
큰 소리가 아닌 조용조용한 목소리다. 그냥 가까이 있는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았더니 주인은 친절하게 선풍기를 정조준해 주었다. 갑자기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이 식으면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다방 실내를 둘러보니 이 다방에는 아직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지 않다. 올해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데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살폈다. 어디를 봐도 에어컨이 없다. 이를 눈치챘는지 주인은 지하라서 비상구 문만 열어놓으면 그렇게 덥지 않다고 했다. 정말로 땀이 가셨다. 선풍기에서 시원한 바람이 났다. 선풍기 바람인데도 가을의 전령사 같은 서늘한 바람이 슬쩍 비쳤다.
한 동네 다방 주인끼리 동병상련의 정
우선 전통적인 다방 냉커피를 시켰다. 커피포트에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나고 커피 병에서 숟가락으로 커피 알갱이를 떠내는 소리가 났다. 5분여 시간이 흘렀을까, 주인도 한잔 드시라고 했다. 커피 한잔 나누는 것뿐인데 무척 반가워했다. 마주 보고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마땅히 할 말이 궁색했다.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까.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였다. 주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저 그림들은 과거 이 다방을 했던 먼저 주인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림이 수준급이라고 치켜세웠더니 주인은 그 사람이 그림 그리는 솜씨가 좋았다며 벽에 그림과 함께 써진 시를 읽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불과 수년 전 작고했다고 했다. 주인은 혼잣소리로 "지병이 있는데도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더니…" 라며 많이 아쉬워했다.
이 바닥에서 물 장사하는 사람들끼리의 애정이라 생각했다. 이런 애정은 과거 10년 전 울산 함월다방과 현대다방에서도 느낀 바 있다. 그때도 함월다방 마담이 아프다고 하니까 현대다방 마담이 무척이나 안됐다며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이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주인의 고향까지도 알게 됐다. 그녀는 60대 후반의 나이로 고향은 경남 하동이라고 했다. 배구선수 출신 강만수 감독과 초, 중학교 동기라고 했다. 요즘도 한 번씩 동창회 때 만나느냐고 물었더니 서로 바쁘니까 만남은 거의 없다고 했다.
30년 경력 주인은 울산 곳곳 다방 꿰고있는 척척박사
까치다방을 만난 것은 다방을 찾는 나에게 행운이었다. 어디서 사람 냄새 물씬한 다방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싶었다. 까치다방 주인은 이 다방을 인수한 지 겨우 9개월 됐다고 했다. 그러면 다방 운영 경험이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최근 재개발지역에 들어간 야음시장의 2층 건물에서 한다방이라는 상호를 걸고 30년간 영업했다고 했다. 재개발 들어가면서 다방은 신물이 나서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3개월 정도 놀아보니 도저히 무료해서 안 되겠기에 마침 비어있는 까치다방을 인수하게 됐다고 한다. 알고 봤더니 까치다방 주인은 다방 운영 경험이 풍부한 분이셨다.
사실 까치다방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판 보고 들어올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한적한 위치에 있는 다방을 인수한 것도 그의 풍부한 경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투였다. 들어갈 때 다방 안에는 손님이 한사람 있었다. 선풍기는 이곳저곳 대충 3대, 지하다방은 손님보다 많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30년 다방 경력답게 수암로 일대 다방들뿐만 아니라 울산지역 전통다방들에 대해서도 거의 알고 있었다. 장생포 하니까 연안다방을 들먹였다. 그 사장님도 나이가 제법 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신정시장 들머리 봉월로를 물고 있는 기로다방 주인도 잘 알고 있었다. 기로다방 주인을 알고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남구 지역에서 어느 다방이나 이름을 대면 그는 척척박사였다.
좀 전에 말한 한다방은 야음시장에서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 옆에 공주다방과 함께 수암로 다방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한다방과 공주다방은 이미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 공사용 울타리가 처져 있다. 수암로에서는 까치다방만 남았다.
이 거리에서 사라진 숱한 다방들은 카페들의 진격에 무참히 무너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세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상인들은 수암로에 다방들이 10여 곳 있었는데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데 다방이 제대로 문을 열 수 있었겠나.
까치다방 주인은 요즘도 가끔 옛날 생각난다며 간판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어서 수입보다는 정으로 하루하루 문을 여닫는다고 했다. 그때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행여나 날 찾아왔다가 못 보고 가더라도/ 옛정에 매이지 말고 말없이 돌아가 주오
사랑이란 그런 것 생각이야 나겠지만/ 먼 훗날 그때는 이 사람도 떠난 후일 테니까
김미성이 부른 '먼 훗날'이다. 이 다방에 어울리는 노래다. 누군가 옛정이 그리워서 찾아왔으나 이미 그 사람은 떠나고 없다. 그 간절한 마음을 담은 노래의 중심에 까치다방이 있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