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찬란한 빛내림, 성스러운 대관식을 거행하 듯 엄숙하고 거룩했다

[주말ON-감마르조바 조지아] 16. 텔라비의 아침 햇살처럼 뜨겁게 살고 싶다

2025-03-20     이서원
알라자니 평원으로 쏟아지는 아침 빛내림.

 

텔라비는 조지아 동부의 도시로 8세기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로 역사에 등장했으며,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카헤티 왕국의 수도로 15세기 통일 조지아 왕국이 분열되기 전까지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다. 

토기 항아리에 포도담아 숙성시키는 세계 무형 문화유산

여름의 뜨거운 볕이 쏟아지는 거리는 온통 먼지로 뒤덮여 운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밤 12시경에 도착한 이곳에서는 방조차 쉽게 구할 수 없어 새벽까지 몇 군데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분에 넘치는 호텔에 들어섰다. 이런 호사를 누림이 왠지 자신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지친 몸에 너덜너덜 피로 누적은 천근이었으니까. 잠시 드러누웠다 싶었는데 눈을 뜨니 금방 아침 6시다. 창을 열었다. 그 사이 비가 내렸던지 대지는 젖어있었고, 초록의 이파리는 싱그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옥상에 올랐다. 조금 후 저만치 코카서스산맥의 위엄 뒤로 숨었던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빛살! 저 찬란한 빛 내림은 알라자니 대평원이 마치 성스러운 대관식을 거행하듯 엄숙하고 거룩했다. 그동안의 피로가 한순간 저 빛에 압도당했다고나 할까.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앉았다 섰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혼자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법을 잊었다.

 쏟아지는 수천의 빛 갈래는 포도원의 이파리들을 깨우며 서서히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아는 와인 발상지답게 이 지역은 특히 포도 재배지로 더 유명하다. 와인의 붉은 빛만큼이나 정열적이고 웰빙 라이프 스타일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산맥이 높고 추워서 습도가 높은 공기를 막아줌으로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포도 재배지로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도가 400~700미터 사이의 이 알라자니(Alazani)와 이오리(lori) 분지 사이의 평원은 더할 나위 없는 최적지다. 특히, 이곳에서는 크베브리라고 하는 토기 항아리에 포도를 담아 숙성시키는 방법으로 2013년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년시절 기억 떠올리게 한 붉은 포도주

아버지는 일찍이 포도 농사를 지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호구지책이었다. 과수원의 일손은 늘 부족했고 주말이면 온 식구가 달려들어 청포도 농사에 헌신했다. 조금씩 집은 일어났다. 몇 해 농사를 지으면 땅 한 뙈기를 샀고, 점점 농장은 몇 년 사이 수천 평으로 늘어났다. 긴 고랑 끝에 아버지는 원두막을 지었다. 이런 뜨거운 여름날에는 가끔 거기에 올라 쉬기도 하였다. 근처 흥덕왕릉에서 푸른 솔바람이 쏴아쏘아 파도처럼 밀려오면 팔베개로 곁에 누워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포도 알맹이처럼 탱탱하게 익어가던 유년, 그곳에서 꿈을 키웠고 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해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에 따라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그 많던 포도나무는 아버지의 꿈마저 하루아침에 다 잃게 했다. 전량 수매를 계약했던 와인 공장은 문을 닫았으며, 그 해 농사지은 포도는 몽땅 썩은 냄새로 진동하며 고스란히 나무에 매달린 채 버려져야 했다. 이후 아버지는 급격하게 기력을 잃었으며 포도나무가 뽑혀 나가듯 생도 그렇게 허무하게 마감하고 말았다.                

내외부 공사중인 알라베르디 대성당 전경.

 

천년 넘은 와이너리가 있는 알라베르디 대성당

아침은 간소하게 빵조각 몇 개와 커피를 마신 후 서둘러 호텔을 나왔다. 도시 전체는 온통 흙먼지로 신호등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도로 공사로 방향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침에 본 빛나는 햇살처럼 조지아의 미래는 분명 찬란한 태양을 닮았다고 믿고 싶었다. 아무도 이런 불편을 탓하지 않는 듯 모두가 자연스럽게 차를 피하며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길을 돌아 근처에 있는 알라베르디 대성당(Alaverdi Cathedral)으로 갔다. 이곳에도 여전히 1천 년이나 된 와이너리가 있을 정도로 종교와 와인은 공생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이 수도원에서 생산된 'SLNCE 1011 알라베르디'의 라벨은 조지아 최고의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담장은 요새처럼 성벽을 쌓았으며 망루가 군데군데 있다. 종교와 신앙을 지키려는 저들만의 처절한 방법이었으리라. 짧은 바지를 입고는 입장할 수 없어 바구니에 담겨 있는 검은색 치마를 걸치니 순식간에 거룩한 사도처럼 보여 혼자 피식 웃었다. 

 지금은 최초에 건립되었던 성당은 사라졌으며, 이 성당은 1010년 왕위에 오른 크비르크(Kvirike) 3세 때 건축되었다. 왕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지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무려 높이 50미터, 폭이 42미터에 이를 만큼 웅장하게 중세 조지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 완공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길을 기도하며 나아갔을 것이다. 자기의 집에서 먼 거리를 탓하지 않은 채 이 성당으로 몰려왔겠다. 아치형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웅장한 첨탑 앞에서 먼저 존재의 근원을 찾으려는 갈망으로 성호를 그었으리라. 

 친구들은 내게 물었다. 조지아에 무엇을 보러 몇 번씩이나 가느냐고. 본다는 것은 1차원적인 여행이다. 느끼는 것은 2차원적인 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했다. 나를 찾아가는 소통이었노라고. 보고 듣고 느끼고, 그다음은 하나님과의 소통이다. 그게 종교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자문자답 속에서 겨자씨보다 작은 자신을 저만치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그게 여행의 참다운 내디딤이었다. 엄숙하고 숙연했다. 발걸음 소리조차 소음으로 들릴까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들어선 교회는 천장이 높고 웅장했다. 25개의 높은 창문을 통해 아침에 빛나던 햇살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차브차바제 박물관 전경.

 

중세 귀족 궁전이었던 차브차바제 박물관과 럭셔리 호텔

교회를 나와서 다시 근처에 있는 알렉산드로 차브차바제 박물관(House Museum of Alexander Chavchavadze)으로 이동했다. 19세기 귀족 시인 알렉산드로 차브차바제(1786 ~1846)의 소유였던 궁전과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조지아 최고의 부유한 럭셔리 호텔도 함께 있었다. 울창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도열한 입구로 들어서면 마치 군대의 사열을 받는 느낌이라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면 박물관이다. 그는 조지아 최초로 그랜드 피아노, 당구, 마차, 등을 소개할 만큼 문화 대중화에도 힘을 쏟았다고 한다. 내부에는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며 상품을 파는 공간도 따로 있었다. 왕족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려는가. 직원들은 권위적이며 무뚝뚝하기도 했다. 무엇을 물어도 단답형이고 미소가 없다. 가구와 침실, 실제 사용했던 소품들은 먼지 하나 없이 정갈했다. 기침 소리조차 함부로 내면 안 될 것 같은 이 엄숙함의 불편함은 숨조차 쉴 수 없으리만치 갑갑하고 돌처럼 차갑다. 

 

이서원 시조시인

 

 박물관을 돌아 계속 들어섰다. 호텔이다. 푸른 담쟁이로 두른 호텔은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깨끗했다. 현실에도 왕족과 서민의 계층을 구분하려는 듯 감히 들어설 용기마저 없다. 내 속에 흐르는 평민의 피가 어김없이 주눅 들게 하는 것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솟구치는 분수, 반듯한 정원, 이름 모를 꽃들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가꾸어진 뜰, 정복을 입은 직원들의 삼엄한 경계의 눈초리가 조지아 속의 새로운 권위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듯했다. 갑자기 된장찌개에 밥 한술 뜨고 싶은 이 느끼한 감정은 무언가. 왕족의 삶을 살라며 누가 붙들지도 않는데 나는 허공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듯 잽싸게 걸어 나오고 말았다. 

차브차바제 공원 내에 있는 화려한 호텔.

 

 정원에는 어둠이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권위를 누구보다 싫어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내가 이곳에서는 왠지 낯설다.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 노란 머릿결이 찰랑거리는 여인들이 마주 앉아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곳, 가장 부유한 이들만이 즐기는 호텔의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련된 모습, 부조화의 조화를 여기서 보았다. 늘 낮게 살려던 내가 왜 은근슬쩍 저 틈바구니에 끼고 싶은 건 뭘까. 갑자기 부자가 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본성이기 때문이겠지. 이성과 감성의 충돌이 여기서 부딪히게 될 줄이야!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그저 담담히 붉은 와인을 혼자 홀짝거리며 둥근 테이블에서 중세의 귀족처럼 슬며시 눈을 감았다.    이서원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