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건축자재 모아 단결 의미 더한 시계탑 랜드마크 우뚝
[감마르조바, 조지아] 17.트빌리시를 거닐며
시간이란 무엇일까. '태초'라는 단어는 이미 시간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누가 시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명확한 답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추상적인 개념일지도 모르지만, 이 우주의 창조를 약 138억 년 전이라고 본다는 설이 있다. 시간은 무한한 존재일지 유한한 존재일지부터 결론을 내리는 일부터 쉽지 않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지만 실은 시간의 정의는 참으로 어렵다. 오거스틴(Augustine)은 '시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이 자명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려 들면 우리가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도심의 보도블록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쉽게 닿는 곳이 있다. 바로 시계탑이다. 여행객은 절대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하루에 딱 두 번만 종을 치는 천사가 나오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탑 아래서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12시가 되면 황금빛 망토를 입은 천사가 조그마한 창문을 밀치고 나온다, 그리고 망치로 종을 친다. 뎅! 뎅! 뎅!
주위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고개를 들고 천사만 바라본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듯한 거룩한 행위는 시간이 과연 어떻게 흘러와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숭엄한 자기반성의 철학적 사유로 치유하는 하나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시계탑을 짓기 위해 레조 가브리제와 그의 친구들은 도시에 흩어진 건축 자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타워를 지지하는 빔은 1966년에 해체된 무크라니 다리의 지지대 중 하나를 가져왔으며, 타일도 직접 하나하나 만들고 칠을 했다고 한다. 200~ 300년 전의 벽돌들도 수집하여 4년 동안이나 돌과 돌을 맞대어 쌓아 사랑, 갈등, 포옹으로 단결하도록 그 의미를 더했단다. 그리고 마침내 생명을 불어넣어서 완성된 이 탑은 수도 트빌리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곧 무너질듯하게 비스듬히 비대칭으로 세워진 탑을 받치고 있는 철제 빔은 어쩌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보여주려는 듯하다. 모두가 휴대전화기를 들고 이 시간을 놓치지 않고 잡으려는 양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숨소리조차 방해될까 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주 짧은 이야기의 인형극이 오르골(orgel)처럼 둥글게 돌아간다. 아이가 태어나고, 결혼하고, 중년에 열심히 일하다가 죽음으로 가는 스토리다. 인간의 삶이란 이 네 가지 장면으로 축약된다는 주제다. 그렇다. 우린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으로 달려가는 운명이 주어졌다. 시간 속으로 사그라질 인간의 미약한 존재,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 일상의 24시를 어떻게 저마다 알뜰하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생의 길은 달라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데, 음악이 그치자 천사 인형은 유유히 들어가 버린다. 무엇에 홀린 듯 모두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한다.
다 돌아간 텅 빈 골목, 다시 길을 나선다. 좁은 뒷골목을 돌아 작은 공원 옆을 걷는데 피아노 소리가 잔잔하다. 이곳은 카페나 식당, 또는 술집에서 기본적으로 피아노가 한 대씩 있다. 그리고 늙은 악사는 유려한 손놀림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낡은 피아노에서 고운 선율이 흐르면 자마다 음악 감상을 하며 음식을 먹는다. 멋진 연주가의 피아노 소리는 도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기에 충분하다. 시원한 음료수 하나를 시켜 놓고 밖에 앉았다. 연주는 여지없이 이어졌다. 온몸을 흔들며 땀을 흘린 채 독주가 이어졌다. 그때, 저 끝에 앉은 대학생쯤 되는 친구 한 명이 대뜸 피아노 옆으로 가더니 둘이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자리를 바꾸었다. 늙은 악사는 옆에 놓여 있던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둘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청년은 피아노를 현란하게 쳤다. 곧이어 악사의 가느다란 선율이 피아노 소리 위에서 물방울처럼 통통 뛰어올랐다. 주위 손님들은 먹던 음식을 놓고 연주에 삐져 들었다. 손뼉을 치거나 어깨를 들썩이는 이도 있다. 흥이 많은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나도 그만 반하고 말았다. 여름날의 한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한 하모니는 환호와 갈채로 마무리되었다. 악사는 계속 아쉬운 듯 더 연주를 즐기고 싶은지 손을 끌었지만, 친구는 이쯤에서 손사래를 쳤다. 피아노 옆에는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몇 라리를 넣으며 "감마르죠바" 인사를 건넸다.
대형 건물에 들어섰다. 호텔 로비 같은 분위기에 입구 옆에 서점과 작은 소품이 진열된 상점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건 꼭 나는 그 나라의 책을 사 오는 게 내 버릇이다. 오늘도 조지아의 호수를 중심으로 찍은 멋진 풍경 사진첩을 손에 쥐었다. 알 수 없는 조지아의 글이지만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정겹다. 약 2000년 전부터 사용된 조지아 문자는 역사가 깊다. 여기 오기 전부터 이곳 문자를 따라 쓰며 조금 공부했지만, 실상은 와서 읽기조차 쉽지 않고 발음도 K와 F의 중간쯤이라 우리나라 발음으로는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 아빠는 보통 파파(papa), 엄마는 마마(mama)라고 하는 데 비해 특이하게도 이곳에서는 아빠를 마마라고 부른다. 몇 권의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주인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루스타밸리'라고 말한다. 익숙한 이름이다. 와인에도 루스타밸리, 공항 이름도 루스타밸리 트빌리시 국제공항, 루스타밸리 거리, 루스타밸리 식당…. 그는 친절하게 루스타밸리에 대하여 이야기해준다. 조지아의 국민 작가라며 이 정도를 모르면 조지아의 문학을 논하지 말라는 눈빛이다. 러시아에 푸쉬킨, 톨스토이가 있다면 자기들은 쇼타 루스타밸리가 있다는 걸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는 화폐 100라리의 주인공이다. 12세기 타마르 여왕 시대의 시인이며 철학자로 고위직 관료였다. 서사시 '호피 두른 용사'는 조지아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이며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당시에 긴 서사시를 외우는 걸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결혼을 앞둔 신부는 남편을 위해 이 시를 낭송하는 걸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라고 했다.
조지아 문학의 모태가 된 '호피 두른 용사'의 대서사시 서문 일부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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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와 찬사의 시를 쓸 수 있도록 저에게 혀와 심장을 주소서. / 이 시에 제 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재능과 힘을 내려 주소서. / 부디 저희가 정열적인 언어로 용사와 타리엘을 기리도록 하소서. 끊어지지 않는 우정의 실로 이 세 영웅을 한데 묶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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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신의 재능을 의미 없이 낭비해선 안 된다. / 그는 열정적인 마음속에 홀로 거주할 집을 지어야 한다. / 열정에 바쳐지는 모든 것은 기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 열정이 보상에 손 내밀지 않도록 보상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민족시의 고전형식으로 우정과 조국애, 용기와 행복을 찬양한다. 당시 유럽 궁전에서는 왕에게 시를 지어 바치는 게 관례였는데, 아마 그도 이런 이유로 타마르 여왕에게 이 작품을 선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갑자기 우리나라를 돌아본다. 우리 역사 이래 최고의 작가 한 사람을 추천하라면 누구를 추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저마다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단 한 명의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문학이 조지아에 비하여 뒤처지는 일도 아닐 텐데 왜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는 것일까.
루스타밸리 그는 조지아의 모든 문화, 문학의 최고봉이다. 조지아에서 수여하는 예술문화 분야의 상 이름도 '루스타밸리 상'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격조인가.
친구 짜카리아의 문자가 왔다. "친구, 어디야?" 그래 너를 만나야겠다. 택시를 운전하는 그는 자유광장으로 오란다. 둘이서 오랜 벗인 양 열흘 만에 다시 만났다. 플라타너스가 아름드리 드리워진 쿠라강변을 지나 시외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8차선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웃음을 던진다. 그리고 냅다 차를 인도로 급선회하더니 거기를 달린다. 나는 기겁을 했다. 그런데도 말릴 생각을 못 한 채 웃음만 계속 나온다.
2021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액션 블록버스터로 태국, 영국, 미국 그리고 이곳 조지아에서도 일부 촬영되었다. 그도 이 영화를 보았을까. 친구는 마치 본인이 주인공 도미닉인 양 가속 페달을 밟으며 달렸다. 자유 광장을 벗어나자 인도 위를 위험천만하게 종횡무진이다. 길이 좁아지면 다시 도로 위를 내려왔다가 다시 인도 위를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이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내 안의 질주 본능도 한몫했는지 그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지아 은행 본부를 지나 자유의 다리를 건너서야 우리는 겨우 차를 멈춰 세웠다. 마침내 웃으며 하이 파이브를 날렸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는 영화의 줄거리처럼 우리는 의기양양 어깨동무를 한 채 멋진 저녁을 사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우리 우정 만세!' 그는 웃으며 내 옆에서 흥에 겨운 듯 연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서원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