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이라도… 원서 연구원을 찾으러 가야 해요!"
[주말ON-역사동화] 판타지로 떠나는 반구대 선사마을
암각화의 틈, 선사로 통하다!
배가 절벽까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교수님, 겨우 다 왔습니다. 배를 묶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절벽이 바람을 막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두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배를 두고 암각화가 있는 바위로 올랐다. 다행히 그곳에는 사람이 설 수 있을 만큼 튀어나온 넓은 너럭바위가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갑작스럽게 진동이 전해졌다.
“어, 어! 조심하세요! 아침보다 강도가 훨씬 커요!"
“교수님도 조심하세요!"
두 사람은 바위를 붙들고 흔들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흔들림이 잦아들자, 절벽 바위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몇 걸음 옮기자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가 눈에 들어왔다. 공기가 싸늘하게 변하며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대호 교수는 주위를 샅샅이 살피며 원서 연구원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호수에도 없고, 어디로 간 걸까요? 지붕처럼 돌출된 암벽 위로 올라갈 수도 없었을 테고요. 혹시 이 근처 전설 속으로 사라진 걸까요?"
상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호 교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 바위틈… 예전보다 훨씬 크군! 설마, 전설에 나오던 그 동굴 속 길이……"
그가 손전등을 비추자, 틈 안쪽으로 이어진 공간이 어렴풋이 보였다. 바닥에는 발자국처럼 보이는 흔적과 무언가 끌린 자국도 있었다.
“정말 길이 있어! 어서 가봅시다"
대호 교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상우의 눈빛에도 긴장감이 스쳤다.
“정말 원서 연구원이 이 길로 간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커 보여요"
대호 교수는 몸을 최대한 움츠려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상우 씨, 어서 들어오세요"
교수의 목소리가 바위 밖으로 울려나왔다. 상우 연구원도 곧바로 뒤따라 들어갔다.
“와, 안에 이런 동굴과 길이 있을 줄이야! 원서 연구원이 이 길을 지나갔다면 흔적이 있을 거예요. 잘 살펴보며 가죠"
상우의 말이 동굴 벽에 메아리쳤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던 두 사람은 뜻밖의 급경사에 중심을 잃고, 손전등을 든 채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앗! 위험해요!"
어둠 속에서 굴러간 그들은 바닥에 가까스로 멈췄다. 손에서 벗어나가 뒹구는 손전등을 집어든 대호 교수를 향해 상우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대호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그가 손전등을 켜려 했지만 불이 꺼져 있었다. 몇 번 두드리자 불빛이 깜빡이며 다시 들어왔다. 손전등 불빛이 닿은 벽면에는 빼곡한 암각화들이 새겨져 있었다.
“찬 공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어딘가 통로가 있을 겁니다. 찾아봅시다"
교수의 말에 상우가 손전등으로 무언가를 비췄다.
“교수님, 저기요! 저건 뭐죠?"
그들이 다가간 곳엔 목걸이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상우가 주워보며 말했다.
“활 쏘는 사람 문양이에요! 원서 연구원 목걸이 같아요"
상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에서 떨어졌다는 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는 걸 수도 있어요. 동굴 안에 없다면 분명 출구가 있다는 거예요. 어서 저쪽으로 가 봐요"
대호 교수는 상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수님, 선사세계로 가는 비밀 문이 있다고 들었어요. 선사세계는 역사 속 세계 같지만, 현실과 이어져 있대요. 우리는 그 둘을 잇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상우의 말에 대호 교수는 전율을 느꼈다. 동굴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학문적이고 논리적이던 그가 갑자기 신비로운 이야기에 매료된 것 같아서였다. 교수는 잠시 망설였지만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그렇다면 찬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찾도록 해요"
“바람 방향을 알기 위해선 불을 피워야 하는데, 나무가 있을까요?"
“원서 연구원이 지나갔으면 누군가 불을 피웠을 테니 근처를 둘러봐요"
대호 교수가 손전등으로 주위를 두루 비췄다.
“저기 보이는 게 나무 맞지요?"
“네, 맞아요. 그런데……"
물가 너머에 나무토막이 보였지만 갈 수가 없었다. 교수는 잠시 고민하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동굴 천장에 종유석이 늘어져 있었다.
“혹시 물에도 징검다리처럼 돌이 있을지 봅시다"
그가 손전등을 물속으로 비추었다. 정말 물 위로 솟아오른 돌들이 있었다.
“상우 씨, 따라 와요!"
두 사람은 돌을 조심스레 밟으며 건넜다.
“여기 이 나무, 불을 피운 흔적이 있어요. 우리도 빨리 불을 피워 방향을 찾아야겠어요"
상우가 라이터를 꺼냈다. 불을 붙이자 동굴 안이 환해졌다. 동굴 벽엔 밖에서 보았던 암각화와 비슷한 그림들이 있었다. 사람, 선, 소용돌이… 사람들이 남긴 무언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품은 흔적들이 있었다.
“원서 연구원이 이것들을 봤다면 무언가를 발견했을 거예요"
상우 연구원이 놀라 소리치고 있을 때 이미 동굴에는 바닥에 있던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사라지고 있었다. 물속에 있던 거대한 돌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중심을 잃은 듯 휘청이며 쿵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동굴 벽의 동물 문양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흔들리더니 어디선가 부드러운 꽃향기가 흘러들었다. 상우가 눈을 반짝 뜨며 외쳤다.
“교수님, 길이 있어요! 원서 연구원이 이쪽으로 간 게 분명해요"
대호 교수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았다. 퍼지는 향기와 스며드는 바람 속에서 둘은 눈을 마주쳤다.
대호 교수는 너무나 의아스러웠다. 암각화를 연구하고 정년퇴임을 했는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곳이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건, 원서 연구원이 이미 이곳을 거쳐 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잠시 말을 잊은 그는, 퇴임한 학자로서의 호기심과 동료를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마음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는 곧 결심했다.
“어떤 길이라도… 원서 연구원을 찾으러 가야 해요!"
대호 교수의 결단에 상우 연구원은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 전 안 갈래요. 겁이 나요. 교수님만 다녀오세요. 전설에 불이 꺼지면 비밀 문이 닫힌대요. 원서 연구원도 그래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저는 여기서 불을 들고 기다리겠습니다"
대호 교수는 잠시 상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엔 두려움 속에도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호 교수는 짧은 침묵 끝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저 또한 이 발걸음이 되돌아오지 못할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겠어요. 당신을 믿고 다녀오겠어요"
“네, 교수님. 무사히 돌아오세요"
두 사람은 굳게 악수했다. 그리고 대호 교수는 조용히, 꽃향기가 퍼지는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그가 몇 걸음을 옮기자, 어디선가 낯선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피리 같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소리 같기도 한 신비로운 소리를 따라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밀의 문으로 원서 연구원이 무슨 일로 갔을까? 무엇을 발견하러 갔을까? 누구에게 쫓겨서 갔을까? 누구를 쫓아서 갔을까? 그리고 그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걸어 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