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 감아봐…이 세계가 우릴 받아들일 거야"
[주말ON-역사동화] 판타지로 떠나는 반구대 선사마을
선사세계로!
임하우 국장은 암각화 방에서 바위틈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아이들과 급히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은 그는 거대한 문 앞에서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센서에 갖다 댔다.
'찰칵.'
문이 열리자, 그 안에 펼쳐진 풍경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 바다가 있고 그 위에 고래 모형 보트 한 척이 물결 위에서 출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와… 노란 고래잖아?"
경주가 소리쳤다.
"자, 타렴. 이건 현실세계에서 선사세계로 가는 보트란다."
임 국장이 손짓했다.
"와! 고래를 탄다!"
"물이 조금 무서운데……."
"조심해서 타!"
아이들이 서두르고 있을 때, 윤서가 가방을 벗으며 말했다.
"국장님, 저도 가볍게 가고 싶어요. 이거 어디 둘 데 없어요?"
임 국장이 윤서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중요한 건 없어? 따로 보관해 뒀다 오면 주마."
그는 벽 쪽에 있는 보관함에 가방을 넣고 문을 단단히 잠갔다.
"다 됐어? 이제 정말 출발이다!"
"네!"
"우와! 진짜 선사세계로 가는 거야!"
보트에 오른 아이들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임 국장이 시동을 걸고 버튼을 누르자, 보트는 동굴 밖을 향해 빠르게 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속도에 아이들이 잠깐 긴장하며 조용해졌다. 순간,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장구, 징, 꽹과리, 북, 피리 소리가 어우러지더니 민요장단이 나왔다.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보던 영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국장님, 이건 우리 취향이 아니에요. 다른 음악 없어요?"
임 국장이 앞만 보며 물었다.
"왜, 다른 데로 가고 싶어? 이 음악은 우리가 가는 선사세계 마을에 맞춰진 주파수 음악이야."
"주파수요?"
영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 이 보트는 암각화 방에서 봤던 그림들과 연결된 마을 정보를 저장하고 있어. 마을마다 주파수가 달라. 이 음악은 우리가 갈 마을에 맞게 주파수를 맞춘 거란다."
"이 음악이 우리가 갈 곳과 연결된 음악이라고요?"
영서가 표정을 펴며 물었다.
"그렇다니까. 주파수를 잘 맞췄어. 잘못 맞추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가 있어."
임 국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엉뚱한 곳이요? 거기 갔다가도 돌아올 수 있어요?"
유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운이 좋으면 올 수 있지만 악한 세계에 닿게 되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네?"
임 국장의 말에 아이들이 긴장한 채 눈이 동그래졌다. 민요장단에 이어 구성진 남자 목소리가 노래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고래나 호랑이 거북과 사는~~ 언제 적 용들도 장수하는 마을~~"
아이들이 귀 기울이던 노래가 끝날 무렵, 보트 속력이 줄었다. 멀리 절벽이 보이고 바닷가 숲 언저리에 보트가 다다라 멈춰 섰다. 임 국장이 먼저 보트에서 내렸다.
"다 왔다. 여기가 선사세계란다."
"네? 벌써요?"
유주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이렇게 금방 도착할 줄은 나도 몰랐어."
임 국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코끝을 찡긋했다.
"음, 냄새가 너무 좋아요!"
경주가 빙글빙글 돌며 외쳤다. 바람은 들꽃 향기를 실어 나르고, 크고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지저귀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어떻게 찾죠?"
유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러보며 하는 말에 아이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윤서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찾아보자."
"근데… 나무밖에 안 보여요. 우리가 어디 있는 거예요?"
영서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유주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화면은 멈춰 있었다.
"먹통이야. 선사세계라 기지국이 없어요?"
"걱정 마. 이걸 준비해 왔으니."
임 국장이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우리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어요?"
산이가 지도를 들여다보고 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던 임 국장이 지도를 접고 몸을 돌렸다.
"따라 와.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마을이나 지형이 보일 거야!"
그는 무성한 숲을 지나 산으로 향했다. 아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
"국장님, 헉헉…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윤서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넌 운동도 하면서 벌써부터 힘이 들어? 높은 데 가야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거야. 힘을 내. 마을을 다 보려면 힘을 내서 가야 해 맞죠? 국장님?"
"유주가 탐험가답구나!!"
임 국장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국장님도 탐험가셨어요?"
"꿈이었지."
임 국장이 웃으며 앞장섰다. 아이들은 힘을 내 산길을 올랐다. 얼마쯤 올랐을까. 나무들 사이로 크고 작은 바위가 드문드문 솟아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전해져왔다. 조용해진 정적 속에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그 너머 바위 곁에 짙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 저거 뭐야…?"
영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그곳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동물이 잠들어 있었다.
"호, 호랑이야!"
경주가 작게 외쳤다.
"범… 굴이라 호랑이가 있는 건가?"
유주가 입을 틀어막고 속삭였다. 임 국장이 손가락을 입가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호랑이는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은 무심결에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저 호랑이… 통할 수 있을까?"
유주가 속삭이듯 말했다.
"쉿. 돌아서 가야 해."
임 국장은 조용히 팔을 벌려 아이들을 가로막았다.
"잘못하다간… 잡혀 먹힐지도 몰라."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한 발 한 발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고 있었다.
"억!"
윤서가 그만 돌부리에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데굴데굴 구른 작은 돌들이 바위에 부딪혀 '딱!' 소리를 냈다. 그때,
"으르렁!"
산을 울리는 굵고 낮은 울음소리가 울렸다. 잠에서 깨어난 호랑이가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감히 나의 잠을 깨운 것이…"
호랑이 목소리가 산속을 울리며 메아리쳤다. 아이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이들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순간, 긴장감이 산 공기 속에 팽팽하게 감돌았다. 영서가 목걸이를 꼭 쥔 채 속으로 되뇌었다.
'이 목걸이가… 진짜 통하면 좋겠어.'
경주는 얼어붙은 채 눈만 굴렸다. 유주는 목걸이를 입가에 댄 채 있었다. 임 국장은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살핀 뒤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혀 봐. 이 세계가 우리를 받아들일지도 몰라."
아이들이 어설프게 눈을 감자, 호랑이의 콧김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잎 소리까지 크게 들렸다. 마침내, 호랑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앞발이 땅을 짚는 순간, 땅이 울리는 듯했다.
그때 산이가 속삭였다.
"말 걸어볼까? 혹시 진짜… 말이 통할 수도……."
유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있어봐. … 아직 눈빛이 화나 보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호랑이의 시선이 천천히 그들 쪽으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