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것만으로도 모든 소원이 이뤄질 것같은 기도처
[정은영의 주유천하] 2.설악산 봉정암
무더위를 이고지고 떠난 1박 3일 일정
"가야 돼, 말아야 돼"
설악산 봉정암 순례를 앞두고 며칠간 고민이 컸다. 전국 곳곳이 극한 호우로 수해를 입었고 기온은 120여 년 만에 가장 높다는 게 기상대 발표다. 한마디로 한반도가 가마솥처럼 절절 끓고 있고 서울은 7월 중 열대야가 22일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하는 성하(盛夏)의 계절이다. 굳이 이런 계절에 봉정암을 가야 하느냐 하는 물음들이 이어졌다. 무더위는 더위가 무겁다는 말인데 무거운 더위를 지고 안고 어떻게 설악산 봉정암을 올라가려 하느냐 하는 주변인들의 걱정들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일정이라서 이 모든 우려를 뒤로하고 지난 1일 오후 10시 동천체육관 입구에서 19명의 봉정암 순례객을 태운 버스는 출발했다.
이름하여 1박 3일, 첫날은 차 안에서 홀딱 밤을 보내고 이튿날 새벽 5시가 넘어서 백담사 아랫마을 용대리에 도착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 깨어나고 있었다. 예약한 식당에서 황탯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용대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용대리에서는 백담사까지 7㎞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오전 7시 첫차를 보내고 이어서 출발한 차를 타고 백담사에 도착,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했다. 대청봉 가야 할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천천히 봉정암으로 가는 산속 길을 찾아 들었다.
전체 걸어야 하는 구간은 10㎞가 넘었다. 우선 영시암까지는 설악산에서 가장 길다는 수렴동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산책해도 좋을 만큼 편안했다. 간간이 철계단이 나오기도 했지만 무난하게 두 시간여를 걸어서 영시암에 도착했고 이 암자에서 내준 커피를 마시며 평상에서 쉬었다. 긴장했는데 단 것이 들어가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산책로 같던 영시암까지와는 전혀 다른 험한 산길
봉정암까지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회원들과 다시 봉정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섰다. 잘 걷는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가 않는다. 제일 뒤에 서서 처지는 회원들을 챙기기로 한 상태라서 산행이 힘들지는 않았다.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기 전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세암 가는 길과 봉정암 가는 길이다. 우리는 봉정암 가는 길로 들어섰다. 갑자기 계단이 나타나는 등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연 그대로의 험한 돌들이 길 가운데 불쑥 솟아 있기도 하고 폭우에 휩쓸려간 도로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걷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도 모처럼 산행하는 사람들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잠깐 쉬었다. 식수를 구하는 마지막 장소라서 빈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최소한 여기서 4시간은 걸어야 한다. 그것도 험한 산길이다.
수렴동 계곡을 가르마처럼 난 길을 따라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는 일행 중에는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이 마지막 관문 같은 깔딱고개 즉 해탈 고개가 아직 멀었느냐는 것이다. 힘이 드는지 모두 말이 없다. 오직 앞만 보고 걸을 뿐이다. 쉬엄쉬엄 오른다고 하지만 7시간 산행은 모두에게 무리인 것은 당연했다. 출발하기 전 봉정암에 대해 한마디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80대 할머니도 이 길에 들어서면 무조건 포기는 없다는 말을 했었다.
깔딱고개 지나 한 굽이 돌자 웅장한 적멸보궁이
시간은 물 흐르듯 빨리 갔다. 오후 4시 봉정암 불 뇌 사리탑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한 시간 좀 더 남겨 놓았다. 그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걷다 보니 드디어 해탈 고개, 깔딱고개 이정표에 도착했다. 전체 구간에서 난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다. 산행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갔다. 다듬어진 길이 아니어서 조금 오르다 보니 숨이 턱에 걸렸다. 겨우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또 한 고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해탈 고개를 지나서 한 굽이를 돌자 봉정암 윤곽이 드러났다. 근래 새로 지은 적멸보궁이 소청대피소 아래 산 능선을 타고 지어져 있다. 웅장했다. 봉정암에서 가장 큰 전각이다.
오매불망 불뇌 사리탑에 삼배
봉정암은 중창 불사를 마친 뒤라서 그런지 절이 과거와는 달리 웅장하고 복잡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비좁게 지어진 전각들 사이로 서늘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가을 초저녁 같은 느낌이었다. 땀을 식히며 경내 마당에서 쉬었다.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일부 대청봉을 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오세암으로 가서 봉정암을 오르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다. 오세암으로 간 사람은 아마 혼자서 무진 힘을 쏟았을 것 같았다. 수시로 전화를 하면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봉정암까지는 800m 정도 남았다"며 웃었다. 저 웃음도 고통으로 힘든 웃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려주기로 했다. 오후 4시 30여 분이 돼갈 무렵 오세암을 갔다가 오는 사람도 도착했다.
우리는 불 뇌 사리탑으로 향했다. 그렇게 오매불망했던 탑이 눈앞에 나타났다. 감개가 무량했다.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삼배를 올리고 오늘 저녁에 탑 전에서 기도정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리탑 주변은 조망이 탁월했다. 설악산 일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사리탑에서 조금 위로 올라서면 전망대 같은 곳이 있다. 오세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겹치는 곳인데 속초 시내 방향으로 공룡능선이 길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용아장성, 저 멀리 끝 청이 보인다. 그리고 속초 시내를 넘어서 속초항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룡능선 넘어 탑처럼 솟은 봉이 부처님의 다른 호칭인 세존봉이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나무아미타불!
설악산 8경 손꼽히는 일몰 감상하며 기운 충전
회원들은 여기저기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오후 6시가 되자 공양 시간이었다. 공양은 미역국에 밥 한 덩어리, 단무지 몇 조각이 한 그릇에 담겼다. 숟가락 한 개로 충분했다. 아예 젓가락은 없었다. 후루룩 마시듯 저녁 공양을 마쳤다. 경내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봉정암 일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봉정암 일몰은 설악산 8경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하다. 위치는 불 뇌 사리탑 주변이다. 모두 봉정암까지 올라온다고 힘들었는데 100m 남짓한 사리탑 가는 거리가 더 힘들다고 아우성치었다. 그러나 적멸보궁에서 본 일몰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런 광경을 평생에 몇 번 볼 수 있을까 할 만큼 장관이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너무 커지자 사리탑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자 속초 시내 불빛이 화려했다. 또 속초항 등대 불빛이 깜박이는 모습을 보며 휴대전화기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완전히 어둠이 자리를 차지하자 사리탑은 조명으로 더욱 신비한 기운이 비치는 듯했다. 그 앞에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신선처럼 보였다. 밤이 더 깊어지면 올라와서 밤샘 기도를 해야 하겠다고 하면서 탑 전을 내려왔다. 그리고 일부는 숙소로 들어가고 일부는 남아서 봉정암의 밤 풍경을 한없이 즐겼다. 낮은 사람들이 붐벼서 장터 같지만, 밤은 호젓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칡차 한 잔에 피로 풀고 다시 일상으로
봉정암의 기운이 대단하기는 한 것 같다. 이 맑고 좋은 기운을 받아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면서 다시 탑 전으로 올라갔다. 아뿔싸, 탑 전에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자리가 없었다. 주변에서 3배를 올렸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가 내려왔다. 절은 적막했고 고요했다. 용아장성 위로 비치는 달은 언뜻언뜻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같은 기도처가 봉정암이다. 누구나 평생 3번은 와야 하는 절 봉정암은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기도는 이미 끝난 것이다. 우리 회원들은 이제 한 번 시작이다. 앞으로 세 번을 더 와야 한다.
3일째 새벽 4시 눈이 저절로 떠졌다. 밖이 시끌시끌했다. 나왔더니 이미 대청봉에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봉정암에서 대청봉까지는 2.5㎞ 이 거리를 어제도 오늘 새벽도 다녀왔다니 장하고 할 수밖에 없다. 새벽에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절에서는 오전 5시 30분에 아침 공양을 시작했다. 오늘은 5분을 당겨서 25분부터 공양이 시작됐다. 음식은 어제저녁과 같은 미역국에 밥 한 덩어리, 그리고 단무지 몇 조각이 전부였다. 꿀맛이었다.
아침 공양 중에 잠깐 비가 내려서 일부는 우비를 챙기는 등 분주했으나 비는 바로 그쳤다. 오전 6시 주변을 정리하고 모두 하산을 시작했다. 수렴동으로 내려서는 발길이 어제의 피로 누적으로 무거웠다. 천천히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탈 고개를 내려섰다. 백담사까지는 약 10여㎞를 걸어야 했다. 점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자 다 내려온 것 같았다. 조심 또 조심 영시암까지 와서 영시암 부처님께 잘 다녀왔다고 말씀을 올렸다. 영시암에서 내준 칡차 한 잔에 피로를 풀었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낮 12시 30분이 됐다. 백담사에서 용대리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오후 1시, 그렇게 우리들의 봉정암 순례는 끝이 났다.
"아 참! 까먹을 뻔했네"
설악산 봉정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 율사께서 창건했다고 한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