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연구원 흔적 따라 용머리산 계곡으로

[역사동화] 판타지로떠나는 반구대 선사마을

2025-08-12     김미영
역사동화. 김미영 제공

애꾸눈 사냥꾼쯤은 무섭지 않아

"네? 이걸 어디서 주웠어요?" 윤서가 물었다.

 "알 수 없지. 여기는 계곡이 여러 갈래라 아들을 찾으러 다니다 어디서 주웠는지 나도 기억이 깜빡깜빡해서 잘 모르지. 그 자를 본 건 확실해. 근데 내가 바빠서 아무 것도 못해 준걸. 그렇지만 너희는 행운이야, 우리 아들 생일이라 먹을 게 많으니까"

 그런데 처음엔 친절한 목소리로 말하던 엄마용 목소리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 곳에서 빨리 벗어나!' 귀에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경주가 빠르게 반응했다.

 "아, 저희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 밥은 다음에 와서 먹을게요. 국장님, 우리 그만 가요!"

 경주가 부랴부랴 아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마용이 내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느라 일어설 생각을 않았다. 그러던 아이들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배가 아프고 엉덩이도 안 움직여. 아 음식에 뭘 넣은 거죠?" 임 국장이 소리쳤다.

 "저도 배가 아픈걸요. 음식에 뭘 넣은 거예요?" 경주가 엄마용에게 따지듯 물었다.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고작 그것 먹고 배탈 소동이라니! 이걸 다 먹어야 엉덩이는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여긴 그게 식사 예절이거든" 엄마용의 말에 궁우리 일행이 놀랐다.

 "아, 우리가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뭔가 이상해요. 빨리 그냥 가요 국장님!" 산이가 외쳤다.

 "일어서려면 먼저 음식부터 다 먹어!" 엄마용의 큰 소리에 아이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편 동굴 속을 걷고 있던 대호 교수는 궁우리 일행이 선사세계에 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비밀 문을 찾아 나갔다. 기분 좋은 꽃 냄새는 동굴을 내려갈수록 점점 더 진하게 풍겨왔다. 대호 교수는 그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코를 막으며 걸었다. 어쩐지 그 냄새가 대호 교수를 유혹하는 것 같아서였다.

 대호 교수는 혼자서 비탈길을 하염없이 내려갔다. 가다보니 점점 손전등 불빛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점점 커진 불안감이 공포로 바뀔 때쯤 멀리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터널 입구가 멀리 보이는 듯 했다. 드디어 대호 교수는 비탈길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실종된 원서 연구원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넌 할 수 있어!"

 대호 교수는 스스로에게 힘을 주며 비탈길 끝에 섰다. 그리고 빛이 비쳐드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아주 작게 트인 굴 문이었다. 대호 교수는 등을 구부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 굴 밖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지는 몰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한참 헤매다 굴을 벗어난 대호 교수는 두 팔을 짝 펼쳤다. 그곳은 아카시아와 꽃 냄새가 어우러진, 정말 아름다운 숲이었다.

 "오 환상적이야! 내가 선사세계에 온 거야!"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대호 교수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호 교수는 선사세계 탐사국 요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을 당시 본 지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신경을 집중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멀리서 돌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소리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호 교수는 우선 그 소리 정체를 찾기로 했다. 주위를 자세히 살피며 나무들 사이로 걸었다. 절벽아래 바닷물이 찰랑찰랑했다. 위험한 저 곳에서 누가 바위를 새길까 궁금해 가보려고 걸음을 옮겼다.

 "땅! 땅! 땅! 땅!"

 돌을 치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거의 다 왔겠다 싶었을 때 대호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를 찾아 걸어갔다. 길을 걷다가 외진 계곡에서 한 젊은이가 돌을 주워 서로 부딪치는 것을 보았다. 어느 돌이 센지 감별하고 있던 젊은이는 하던 행동을 딱 멈추고 대호 교수를 째려보았다. 대호 교수는 그의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조금 쫄긴 했으나 용기를 내어 정중하게 말했다.

 "젊은이, 실례지만 이 마을에 살면 말 좀 물읍시다"

 "뭘요?" 덩치에 걸맞지 않게 말소리는 작았다.  

 "혹시 당신 같이 젊은 사람 본 적 있어요?" 대호 교수 말에 젊은이가 눈을 화들짝 뜨며 말했다.

 "그 사람 혹시 사슴 뼈 화살을 갖고 있었어요?" 대호 교수는 직감이 이상해 눈을 크게 뜨고 젊은이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 사람, 저랑 같이 찾으러 가실래요? 마을로 가신다면 입구까지 안내할게요" 갑자기 뭔가 수상쩍은 기운을 느낀 대호 교수는 생각했다. 혼자 가는 게 낫겠다고.

 "이런 고마울 데가. 그런데 마을길은 알고 있어 혼자 갈 수 있어요" 대호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리나케 돌아서서 걸었다. 그런데 젊은이가 계속 뒤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대호 교수가 걸음을 재촉하여 계곡을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또 땅이 흔들렸다.

 "혼자 가세요! 그가 또 화가 난 게 분명해요. 저는 안 갈래요!" 뒤에 오던 젊은이가 겁에 질린 소리로 외치고는 오던 길로 달아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행동에 대호 교수는 젊은이 뒤꽁무니를 한참 바라봤다. 조금 후 젊은이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교수는 젊은이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대호 교수는 젊은이가 뒤따라온 것은 자신이 마을로 가고 있다는 것이란 걸 알았다.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가까이 있을 줄 알았던 마을은 숲 속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걷고 있는 계곡 길에 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이 보였다. 원서 연구원 신발 자국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따라가기로 했다. 발자국은 나무다리 앞까지 이어졌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건너편에 움막 두 채가 보였다.

 "누구 있어요?" 교수가 외침과 동시에 물에서 한 남자가 불쑥 나왔다. 그는 밖으로 나와 손에 든 큰 망태를 뚝 내리고서 대호 교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망태 안에 물이 흐르는 흙이 가득 들어있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네, 빨리 물어보세요. 난 할 일이 많아 오래 있지를 못한답니다"

 그러자 집 안에서 여러 명의 아이가 나와 대호 교수를 바라보았다.

 "혹시 원서라는 사람을 보았어요?"

 "나 같은 아이인가요?" 여자 아이가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키가 큰 남자입니다. 그 사람이 행방불명되어 찾고 있거든요"

 "그럼 고래사냥꾼을 찾는 건가요?" 작은 여자 아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물이 흐르는 망태기를 들고 움막 옆에 갖다 붙고 있었다.

 "고래사냥꾼이 왔어요?" 의아한 대호 교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고래사냥 갈 때마다 여기 큰 바위에 빌러 왔다 가는데 이번에는 다 빌고서도 가지 않고 마을에 쫓아다니고 있대요" 여자 아이 옆에 있던 10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봤어, 젊은 사람" 곁에 있던 8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도 입을 열었다. 남자가 빈 망태기를 들고 와 물었다.

 "네가 언제, 어디서 봤어?"

 "아빠가 물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그 사람 어떤 애꾸눈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달아나는 사람은 손에 화살을 쥐고 있던걸요"

 대호 교수가 오면서 보았던 젊은이는 손에 돌을 들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가 아이들이 말한 고래사냥꾼일 가능성이 컸고, 방금 들은 젊은이가 분명 원서 연구원일 것 같아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런데 잠깐, 물에서 흙을 퍼내요?" 물에 들어가려던 남자가 돌아섰다.

 "해마다 꾸준히 하는 일이요. 비에 씻겨 내려온 흙이 쌓여 물이 넘치지 않게 아름다운 이곳을 지키려고요. 그래, 언제 어디서 봤나?" 교수 말에 대답한 남자는 아이를 보고 물었다.

 "어제요. 용머리산 계곡에서요. 그 사람 걸음이 날쌔던걸요. 어쩌면 안 잡히고 달아났을 거예요"

 "아! 뭐? 용머리산 계곡이라고?" 대호 교수는 물에 퇴적되는 흙을 비워내는 일과 아이 말에 흥분됐다.

 "네, 그 골짜기에 가려고요? 거기엔 무서운 애꾸눈 사냥꾼이 숨어 사는걸요. 멀리 있는 건 잘 못 봐도 가까이 가면 붙잡힐 수 있어요" 대호 교수는 무섭다는 건 문제되지 않았다. 빨리 가 봐야 했다.

 "알았어. 고마워! 잘 있어!" 대호 교수는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용머리산 계곡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골짜기에 사는 애꾸눈이 아이들 말처럼 무서우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며 걸었다. (계속)  글·그림 김미영 울산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