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울산 해(海)'

[소소한 울산史 에세이]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2025-08-31     김잠출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울산 앞바다에 구름 걷히고, 승승장구하며 추격하는 함대의 용맹에 침몰하는 러시아 류릭호" 1904년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본 군가의 첫 구절이다. '울산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일본 제독 가미무라 장군을 칭송하는 군가의 무대는 다름 아닌 울산 앞바다였다.  

 8월 14일 새벽 4시 25분. 울산 남방 해상에서 일본 제2함대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함대가 맞붙었다. 황해 해전 4일 후에 도주하던 러시아 함정을 일본이 추격하면서 벌어진 교전이었다. 일본의 장갑순양함 4척과 방호순양함 2척과 러시아 장갑순양함 3척이 참전했다. 일본 순양함 1척이 가벼운 피해를 입었고 러시아는 다수의 사상자와 함께 순양함 류릭호가 격침됐고 다른 2척은 크게 파손당했다. 일본 해군의 승리, 대첩이었다. 이를 '울산해전'이라 한다. 일본은 '蔚山沖海戰'  또는 '조선해협 해전'이라 하고 러시아는 '대한해협해전'이라 부른다. 일본의 『極秘 明治37·8年 海戰史』에 따르면 사상자는 일본측 전사자 45 부상자 81명 러시아측 전사자 343명 부상자 652명, 일본 해군이 구조한 러시아 해군(포로)은 626명이었다. 이 해전은 일본이 동해 제해권을 장악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울산의 바다는 동북아 국제전의 격랑 한복판에 놓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러일전쟁은 일본 해군의 기습으로 시작돼 동해에서 끝을 맺었다. 울산해전의 승리로 일제는 대륙을 향한 노선을 확보하고, 러시아 극동함대의 블라디보스토크 연결 항로를 차단하면서 동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역사 속의 울산 바다는 한일 충돌의 현장이었다. 신라 박혁거세의 건국 8년째인 기원전 50년 '왜인이 병사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하려 했는데, 시조가 신령한 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다'는 기록을 비롯해 내물이사금 때는 왜가 수도까지 장악할 정도로 쳐들어왔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영락 10년 경자(400년)에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다. 신라성에 이르니 왜가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자 왜적이 퇴각하였다. 울산 바다는 오래전부터 충돌의 바다였다.

 고려와 조선에 와서도 왜구의 침략은 끝이 없었다. 조선 초 외교관 이예 선생이 71세에도 왜에 끌려간 포로 667명을 쇄환해 온 것도 울산 바다를 통해서였다. 조선시대의 울산 바다는 '국방의 전초기지'였다. 방어진·남목의 말 목장, 서생포와 염포, 그리고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개운포까지 울산 바다는 수군기지가 되어 전함이 깃발을 휘날리던 바다였다. 『세종실록지리지』가 울산 8경 중 하나로 '전함홍기(戰艦紅旗)'를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울산해전'의 승리 기념해 일본이 만든 판각. 김잠출 제공

 

그렇다고 언제나 위협만 안겨준 바다는 아니었다. 반구대와 천전리의 바위그림 속 배와 고래, 바다생물은 이미 신석기인의 시선 속에 울산 바다가 생명의 바다였음을 증언한다. 처용의 출현이나 해상무역은 울산 바다가 신라 수도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특징을 보여주고 황룡사 장육존상과 동축사는 서축의 아육왕이 보낸 배가 울산 바다에 왔기 때문에 탄생했다. 수로왕에게 패한 석탈해의 탈주로이자 박제상이 왜로 떠난 발선처가 울산 바다였다. 6세기 구법승들은 울산 바다에서 중국 유학을 갔고 7세기 중엽부터 대륙과 해양을 잇는 관문이었다. 박윤웅은 소금과 해산물로 경제력을 확보하는 등 바다를 발판으로 호족으로 성장했다. 임진왜란 때 울산 의병이 항전한 곳, 가토의 도주로가 울산 바다였다. 근대 일본 어민들의 방어진 이주로 정어리·방어·청어 어장이 고갈되었고, 장생포 고래는 러시아와 일본의 손에 수탈되었다.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격랑의 장소이기도 했다. DJ납치 사건, 한국전쟁 초기 승전의 기틀을 마련한 백두산호 해상전투, 2005년 신풍호 사건으로 간절곶 남동 해역에서 일어난 한일 경비정이 20시간 대치한 현장이었다. 국방과 경제적인 면에서 울산 바다가 얼마나 요충지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울산의 바다는 고래의 숨결이 어린 생명의 바다이자, 전쟁과 교역, 수탈과 항전이 끊임없이 교차한 역사의 무대였다. 수천 년의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울산의 바다는 언제나 굴곡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만하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