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중인 바위 신의 딸 바오와의 만남

[역사동화] 판타지로떠나는 반구대 선사마을

2025-09-04     김미영
역사동화. 김미영 제공

골짜기는 마치 미로 같았다. 오솔한 계곡이 나무뿌리처럼 산 속으로 뻗어 있고, 나무들은 계곡을 향해 가지를 뻗어 있었다. 대호 교수는 붙잡을 듯 뻗어 나온 가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걸었다. 그가 보았던 지도 어디에도 없는, 숨어 있던 계곡 같았다.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골짜기들.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피융~'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가르더니, 대호 교수의 귀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자, 뒤이어 '으하하하!' 하고 거친 웃음소리가 숲을 울렸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직감이 들자, 교수는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누구야? 비겁하게 숨어서 화살을 쏘다니! 당장 나와!"

 대호 교수는 등을 구부린 채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 후, 이끼 낀 굵은 나무 뒤에서 한 늙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 눈은 감긴 듯 움푹 들어가 있었고, 반대쪽 눈만 번뜩였다. 아이들이 말하던 바로 그 '애꾸눈'이었다. 교수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바로 세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허허, 사슴인 줄 알았잖아"

 애꾸눈이 헐떡이며 숨을 고르더니 투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에는 활이 들려 있었다. 활은 낡았지만 탄력이 있어 보였고, 활시위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신이 혹시……"

 교수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늙은이의 한쪽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무섭도록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사냥꾼으로 살아왔지. 그런데 자넨 활도 없이 어딜 헤매고 다니는 게야?"

 "저는 사냥꾼이 아니라서……"

 대호 교수가 변명처럼 말하자, 늙은이는 퉁명스럽게 비웃었다.

 "흥! 사냥꾼이 아니면 저 깊은 숲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지. 맹수들이 우글거리고, 독초도 많고, 길을 잃으면 영영 못 나가는 곳이거든. 내 솜씨를 구경해 보겠나?"

 그는 어깨에 멘 망태기에서 반짝이는 화살 하나를 꺼냈다. 햇살에 비친 그 화살촉은 매끈한 뼈빛을 내고 있었다.

 "사슴 뼈로 만든 화살이네……"

 대호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사냥꾼은 뿌듯하다는 듯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그렇지. 사슴 뼈만큼 강하고 날카로운 게 또 어디 있겠나"

 교수는 놀라움에 이끌려 손을 뻗으며 외쳤다.

 "아니, 설마 그 화살로 사슴을 잡는단 말이오?"

 "그렇소. 내가 사슴을 잡아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오. 어제도 웬 사내가 내가 만든 사슴 뼈 화살을 갖고 있기에 뺏으려고 했더니 달아나버렸소"

 대호 교수는 화들짝 놀라 물었다.

 "사내를? 달아나요? 어디로요?"

 대호 교수는 그가 원서 연구원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빨리 뒤쫓아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사내가 갖고 있던 화살은 내가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 용왕에게 바친 거라 한눈에 알아봤죠. 그런데 용왕이 갖고 있는 화살을 그 사내가 훔친 게 분명해 빼앗으려 했지요"

 "용왕이라뇨?"

 대호 교수는 의아해 물었다.

 "이 곳을 다스리는 용왕을 몰라요? 그 화살은 백발백중하여 마법의 화살로 불려요. 그런 화살을 빼앗긴 왕이 화가 나 산을 흔드는 것 같아 찾아주려고 했더니……"

 애꾸눈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대호 교수는 지금까지 들었던 말이 이해가 됐다.  

 "그 사람은 그런 걸 훔칠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 어디로 갔어요?"

 "이쪽으로 가서 별빛 골짜기로 가 봐요. 그곳 너머 시선 마을에 한 족속이 사니까 어쩌면 그들에게 붙잡혔을 수 있어요"

 "붙잡히다니! 고마워요!"

 대호 교수는 다급히 인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가 돌아보니 애꾸눈은 보이지 않았다.

 애꾸눈이 사라진 뒤, 대호 교수는 별빛 골짜기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걸으면서 애꾸눈이 말한 시선 마을에 정말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지도에 시선 마을은 높은 산 너머 있었던 게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계곡을 벗어날 즈음, 눈앞에 용의 등줄기 같이 높이 솟은 용등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저 산을 넘지 못하면 원서를 찾을 수 없어.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원서 연구원?

 조심스레 발을 옮겨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자, 어둑한 동굴 입구가 보였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교수는 손전등을 켜려다 멈칫했다. 혹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한참을 망설이다 불을 켜 비추자, 소리는 곧 멎어버렸다. 다시 불을 끄자,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다시 살아났다.

 그제야 어둠 속에서 작은 형체가 어렴풋이 움직였다.

 "거기 누구요? 원서 씨?"

 대답이 없었다. 대호 교수는 갑자기 상우 연구원이 떠올랐다. 자신과 같이 와 동굴에 혼자 남은 상우 씨가 혹시 여기서 나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나 생각됐다.

 "상우 씨? 전상우 씨?"

 대호 교수가 좀 더 크게 부르자 그 때서야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죠?"

 대호 교수는 손전등을 켜 비스듬히 비추었다. 불빛이 흔들리며 벽을 스쳤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작은 형체가 움찔 움직였다.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환영 같기도 했다. 교수의 심장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나 불빛이 조금 더 비추자, 소녀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또렷이 드러났다.

 "누구세요? 누구기에 여기 이렇게 있어요?"

 "전 바위 신의 딸 바오예요. 지금은 제 차례라서 중보기도 중이에요"

 "아, 바오, 내가 방해가 되었겠군요.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작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는 동굴 벽에 부딪혀 신비로운 울림을 만들었다. 순간 교수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동시에, 자신이 이곳에서 '다른 세계의 힘'을 목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니 바위에 새긴 기도가 영원하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대호 교수도 바오 곁에 앉아서 원서 연구원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바오가 고개를 들었다.

 "원서가 누구세요? 찾아 달라는 중보기도 소리가 제 귀에 아주 많이 들려오는데 누구기에 이렇게?"

 바오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면서도 따뜻했다.

 "이 마을을 사랑하는 자가 실종됐어요. 모두가 찾으며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나 봅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요? 친구가 없었나 보죠. 나랑 같이 놀면 되는데. 아쉬워요"

 바오는 오래 전부터 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아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다가 바오는 금세 밝은 얼굴로 바꾸어 말했다.

 "저도 원서를 위해 기도할게요. 찾으면 같이 와 주세요"

 바오 소리가 동굴 안에 가득 찼다. 대호 교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요. 소개해 줄 친구가 더 있어요"

 대호 교수는 궁우리 친구들도 소개해 주고 싶었다.

 "아마 처음 사귀는 친구가 될 거예요. 난 바위 안에만 살아 친구를 사귈 수 없을 줄 알았거든요. 꼭 부탁하는 의미로 이걸 드릴게요"

 바오가 돌망치를 대호 교수 손에 건네주었다.

 "무슨 망치지? 고마워요!"

 대호 교수가 손전등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돌망치를 손에 두드려보며 말했다.

 "그건 보통 돌망치가 아니에요"

 대호 교수가 눈을 크게 뜨고 바오를 바라보았다.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때 두드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망치예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조금씩 돌이 닳아요"

 "뭐라고?"

 "그러다 결국 작아져 망치의 본질을 잃게 돼요. 그러니 신중하게 다루세요"

 바오는 돌망치에 대해 말해 주고 다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대호 교수는 신기한 돌망치를 들고서 손전등을 꺼내 동굴을 비쳐보았다. 상우나 원서 연구원은 보이지 않았다. 동굴도 더 확장 돼 있지 않았다. 교수는 빨리 나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는 바오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동굴을 나왔다. (계속) 글·그림 김미영 울산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