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최대 규모 '제철로' 보유지서 만난 금속예술 극치

[정은영의 주유천하] 3.충북 진천 종 박물관

2025-09-25     정은영
충북 진천 종박물관 전경. 정은영 제공

개관한 지 20년이 됐지만 있는 줄도 몰랐던…
종(鐘) 박물관에 다녀왔다. 생기 진천, 살아서는 진천이라는 물이 좋아서 살기 좋은 땅에 국내 유일 종 박물관이 있다. 진천이 박물관에 다녀오고 나서 의문이 생겼다. 종 박물관이 왜 충북 진천에 있는 걸까. 경주나 공주, 부여 등에 있다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종 박물관은 진천에 있다. 

 이곳에 가보기 전에는 사실 종 박물관이 국내에 있는 줄도 몰랐다. 전국 산천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닌 지가 수십 년인데 진천 땅은 처음이고 그곳에 종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최근에 들었다. 정말일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정말 번듯하게 종 박물관이 있다. 당장 가보고 싶었다. 

 종이라면 봉덕사 신종 일명 에밀레종이 경주 국립박물관에 있듯이 그 지역의 사라진 절터에서 발견된 종이 지역 소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진천읍 백곡로 1504-12에 있다. 진천군이 설립한 종 박물관은 한국 종의 연구, 수집, 전시, 보존은 물론 기획 전시, 교육 및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5년 9월 개관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고대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의 제철로를 소유했던 진천에 금속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범종의 문화를 기리는 종 박물관의 건립은 그 의미가 깊다. 아하 종 박물관이 진천에 있어야 하는 당위성을 알았다. 

 종 박물관은 입구에 마련된 종 체험을 시작으로, 그 내부에는 범종을 중심으로 한 우리 종의 역사와 종류에 대해 시청각 자료가 곁들여져 생생하게 알아갈 수 있다. 특히 시대를 대표하는 종, 모양과 용도가 제각기 다른 종의 특성을 소리로 경험할 수 있다. 종 박물관 들어서면서 오른편에는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이 있다. 수시로 판화 관련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종 박물관을 찾는 탐방객들이 덤으로 둘러볼 수 있다. 
 

쇠북이라 불리는 금고. 정은영 제공

경기-강원 접경에 있는 진천 5시간 넘게 달려 도착
궁금하면 가볼 수밖에 없는 일, 최근 울산예총 서진길 고문님께 충북 진천 종 박물관을 다녀오자고 했다. 2박 3일 일정이었다. 충북 진천은 울산에서 멀다. 얼추 서울 가는 마음을 먹어야 할 만큼 가기 쉬운 곳이 아니다. 

 충북 진천은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이었다. 말이 충북이지 수도권이라서 평일인데도 고속도로가 교통체증으로 가다 서다 했다. 5시간여가 지나서야 진천 요금소를 통과했다. 요금소에서 30여 분을 더 달려서 도착한 곳이 종 박물관이다.

 주차장이 엄청나게 컸다. 필자만 몰랐던 것 같다. 주차장 규모를 보니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인 것은 분명하다. 진천은 수도권 개념이 확실하다. 

 군 단위 시설이 아닌 수도권 어느 대공원 같은 시설에 놀란다. 주차장은 그냥 주차장이 아니라 산책하기 좋은 숲으로 조성돼 있다. 

박물관 내 전시된 대종. 정은영 제공

신라∼고려∼조선 시대별 종 소리 변천사 한눈에
우리나라 종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굳이 신라 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종은 우수한 주조기술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출 효자 상품이라고 하니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기술은 알아주는 것이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신라 성덕대왕 신종을 비롯해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 보신각종까지 시대별로 전시된 다양한 종들이 있다. 박물관 1층 전체는 시대별 유명 종들을 볼 수 있고 소리체험을 할 수 있다. 

종 주조 장인들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정은영 제공

 먼저 통일신라 범종의 울림을 체험하는 순서다. 신라 종은 웅장하면서도 맑고 깊이 있는 소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고려 시대 범종은 높은 고음이 매력이다. 조선 시대 종은 강한 울림을 가진 저음을 느낄 수 있다. 종의 소리를 통한 변천사를 체험하는 느낌이 묘하다.  

 제2 전시실은 범종 제작과정을 미니어처로 설치해 놓았다. 밀랍 녹이는 과정에서부터 쇳물 붓는 과정까지 일목요연하게 과정 마다를 볼 수 있어서 종의 주조과정을 이해하는 학습장으로서는 안성맞춤이다.

 종 박물관 전시실에는 역사적으로 명성을 얻은 국보급 동종을 실제와 같은 크기로 주조해서 전시하고 있다. 그중 역사적으로 유명한 3개의 동종을 자료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성덕대왕 신종
 먼저 신라 성덕대왕 신종인 에밀레종이다. 종 박물관을 상징하고 있다. 이 종만큼 많은 전설을 안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1962년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뤄졌다. 이 동종은 봉덕사(奉德寺)에 달았으나 수해로 폐사된 뒤 영묘사(靈廟寺)에 옮겼다가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였다.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일명 봉덕사종·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상원사 종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최대의 거종(巨鐘)으로서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의 양식이 풍요 화려한 동종의 하나이다. 상원사 동종(국보, 1962년 지정)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 범종을 대표한다. 이 동종을 완성하였을 당시는 통일신라의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극성기를 이루던 시기로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이와 같은 우수한 작품이 제작되었다. 특히 이 동종의 명문은 종명(鐘銘)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문장면에서도 지극히 뛰어난 것이다. 지은 사람은 신라 혜공왕 때 한림랑급찬(翰林郎級飡)인 김필계(金弼溪)라고도 하고 김필오(金弼奧)라고도 하나 글자가 마멸되어 분명하지는 않다. 종명은 630자로 된 서문(序文)과 200자 명(銘)으로 짜여 있다. 

 종명의 주제는 성덕왕의 공덕을 종에 담아서 대왕의 공덕을 기리고 종소리를 통해서 그 공덕이 널리 그리고 영원히 나라의 민중들에게 흘러 퍼지게 해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발원이 담겨 있다.

 1962년 국보 제36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67㎝, 입 지름 91㎝. 용뉴(龍 ) 좌우에 오목새김 된 명문에 의해 이 종이 725년(성덕왕 24)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어떠한 목적으로 주조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루문(安東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예종 1) 국명(國命)에 의하여 현 위치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종구(鐘口) 일부에 작은 균열이 생겨 수리를 거친 뒤 모작품(模作品)을 만들어 사용하고 이 종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종의 정상에는 용뉴와 용통(甬筒)이 있다. 용은 머리 부분이 크고 몸체가 용통에 붙어 있으며 발은 정상에 버티고 있다. 용통의 표면은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두었다. 그 사이에는 연화문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모두 아래위로 연주문대(連珠文帶)를 돌리고 유려한 당초문으로 장식되었으며 드문드문 한 사람 내지 네 사람의 주악상(奏樂像)이 돋을새김 된 반원권(半圓圈)을 돌렸다. 네 곳에 배치된 유곽(乳廓)은 당초문으로 장식되었고 그 안에 연화로 돋을 새김된 9개의 유두(乳頭)가 배치되어 있다.

 종신에는 서로 마주 보는 두 곳에 구름 위에 서서 무릎을 세우고 하늘을 날며 공후와 생(笙)을 주악하는 비천상(飛天像)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또 그사이의 서로 마주 보는 두 곳에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8판 연화(八瓣 蓮華)를 돌리고 바깥 원의 안팎에 연주문을 돌렸으며 그 안에 당초문을 새긴 당좌가 있다.

보신각 종
 조선 태조는 1395년 운종가에 종각을 세우고 커다란 종을 매달았다. 임진왜란으로 종과 종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의 종은 1469년에 주조한 것이다. 원래 서대문 안의 정릉사에 있었는데 원각사로 옮겼다가 1619년에 종루로 옮겼다. 1895년 3월 15일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단 이후부터 보신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종각은 6·25전쟁 뒤에 재건되었다. 

 높이 318㎝, 입 지름 228㎝인 보신각종은 현존하는 종 가운데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크다. 종의 정상부는 반구형처럼 둥글고 중앙에는 쌍룡으로 된 용뉴가 있다. 종신은 3개의 띠에 의해 상·하단으로 나뉘었고 상단에는 보살입상의 윤곽이 보이나 당좌는 없다. 

 1985년까지 '제야의 종'으로 사용했으며 그 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보물 제2호이다. 종 박물관에는 이 같은 국보급 유명 대종들이 실제와 같은 크기로 주조돼 전시되고 있다. 

행운을 기원하는 종탑이 눈길을 끈다. 정은영 제공

울산에도 특별한 박물관 하나쯤 있었으면
왜 충북 진천에 종 박물관이 있을까. 성덕대왕 신종이 있는 경주에 이런 종 박물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에 대해 영축산 문수원 수안 큰스님은 "이 지역에서는 종을 만드는 기술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씀이다.

 주차장에서 나오면 바로 인근에 백곡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규모가 한눈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이다. 이 저수지는 빙어낚시로 유명하다. 그리고 호수 주변에는 숙박업소와 카페가 몇 곳 있다. 빵 명장이 만든다는 유명 화과자 빵집도 있어서 휴식 겸해서 들러볼 만하다. 카페는 호수 조망이 한눈에 가능하도록 모두 호수를 향해 통창이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바라보는 백곡지의 아름다운 풍경은 글로 표현할 방법이 부족하다. 카페 앞 대형 자전거 모형도 눈길을 끈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휴식이 필요하다면 진천을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쉼이라는 문화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사람은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다. 재충전의 기회가 있어야 일상에 활력이 넘친다. 진천은 전형적인 농촌에서 수도권 외곽의 휴식공간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벌써 20년 됐다고 하는 종 박물관 건립 등이다. 다른 지역에 없는 특별한 박물관이 울산에도 한 곳 생겼으면 한다. 자동차 박물관이 울산에 생긴다면 멋진 명소가 될 것인데 아직 말이 없다. 아 참, 종 박물관은 현재 수리 중인데 11월 초순 문을 연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