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선생 보기 부끄러운 울산 한글날
추석연휴 연결 시민관심 소홀 울산지역 당일 경축행사 없어 17일 학술대회 등 명맥 잇기만 타 시도 기념행사 등과 대조적
한글 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라는 도시 정체성을 내세워 스스로 '한글도시'를 표방해온 울산이 정작 한글문화 계승에는 소홀한 모습이다. 반면 타 지자체의 경우, 별도의 한글날 경축식을 마련하며 우리말의 가치를 재조정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9일 제579돌 한글날을 맞았지만, 울산시를 비롯한 각 구·군의 공식 기념행사는 없었다.
울산의 대표 한글날 행사인 '외솔한글한마당'이 울산시의 예산 지원 중단으로 존폐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부터 울산시와 중구가 공동 주관해온 외솔한글한마당은 국내 유일의 한글 종합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 행사는 민족의 스승이자 울산의 자랑인 외솔 최현배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문화적 가치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뜻깊은 축제다.
당초 '한글문화예술제'로 출발해 2020년 명칭을 바꾼 뒤 학술대회·전시·체험행사 등으로 규모를 키우며 전국적인 축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행사는 급격히 축소됐다.
과거 3일간 이어지던 일정은 하루로 줄었고 장소 역시 시민 접근성이 높은 '문화의 거리'에서 외솔기념관으로 옮겨 관람객 수가 크게 줄었다.
한글 관련 국제학술대회와 청소년 참여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외솔한글사랑기념회가 주관하는 '제5회 외솔 최현배의 애국사상과 문학 학술대회'(오는 17일 중구청)만이 남았다.
올해는 추석 연휴 여파로 한글날(10월 9일)이 아닌 오는 19일에야 행사가 열릴 예정이지만 시내 어디에서도 홍보물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울산시의 예산 전액 삭감이다.
지난해 시는 행사 예산 5억7000만원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전체 예산의 88%가 사라졌다.
현재는 중구청이 7,700만원을 부담하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축제 기간과 장소가 제한됐고 축제 개막식과 체험행사 위주로 진행됐던 것이다.
13년간 이어온 대표적인 문화행사가 사실상 '생존형 행사'로 전락한 셈이다.
그나마 울산시립어린이테마파크의 소규모 '우리말, 우리글 사랑해요' 행사 등이 마련돼 손에 꼽힐 정도다.
반면 같은날 제주도의 경우, 울산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579돌 한글날, 제주에서는 한글과 제주어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 마련됐다.
제주도는 9일 오전 10시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세상을 밝히는 빛, 한글/불휘(뿌리의 옛말)를 지켜온 말, 제주어'를 주제로 579돌 한글날 경축식을 열었다.
행사 주제는 한글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창제돼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됐듯, 제주어는 불휘'처럼 우리말의 소중한 근원을 간직해온 언어유산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제주도는 경축식을 통해 제주어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소멸 위기에 처한 제주어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한글날 예산은 줄이면서 보여주기식 축제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A씨는 "아이들과 함께 타요 한글버스를 타고 한글 문화를 체험했던 기억이 떠올라 더욱 안타깝다"며 "울산이 외솔 선생의 정신을 기려 '한글도시'를 표방해온 만큼, 한글날 행사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빈기자 gpfk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