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뚫리길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기는 사람들

[주말ON-파키스탄, 인샬라] 5. 판다르밸리로 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만난 친구들!

2025-11-06     이서원
산사태로 공사중인 도로에서 마냥 기다리는 차량과 현지인들. 이서원 제공

 

며칠을 지내니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까. 밤새 강물 소리도 아니고 돌 깨는 공장 기계 소리도 아닌 데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잠을 설쳤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잠해서 조금 잤던 것 같다. 무하마드는 벌써 일어나 마당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제 잠을 못 자는 것 보니 파키스탄 사람이 다 되었다며 놀렸다. 나는 밤새 그렇게 시끄럽던 소리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다. 무하마드가 웃으며 그건 교량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 소리란다. 알고 보니 이곳은 시멘트나 건축 자재가 열악하다 보니 굵은 쇠밧줄에 나무를 엮어서 강의 다리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길기트 강 위로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니 그 소리가 어찌 쉽게 멈추겠나. 

한 폭의 그림같은 무하마드의 집과 가족

둘이서 간단히 토스트를 구워 한국에서 가져온 잼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는 오늘은 판다르 밸리(phander valley)로 가자고 한다. 그곳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지프로 달려도 오늘 밤늦게 도착할 수 있다며 재촉했다. 무거운 짐은 숙소에 맡겨두고 간단히 먹을 것과 옷가지만 챙겨 차에 올랐다. 포장도로가 거의 없는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다. 산을 수없이 굽이 돌아 몇 시간을 달렸을까. 땡볕이 내리쬐는 어느 산골짜기 길가에서 차가 멈추었다. 무하마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내리라고 하더니 그는 차 앞바퀴를 빼내고 혼자 연신 차를 고쳤다. 이곳 남자들은 웬만한 건 스스로 자가 정비도 할 수 있어야겠다. 이 시골에 버려진 우리 두 사람 나는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몇몇이 집으로 가서 공구 하나씩 갖고 다시 나타났다. 모두가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전통 가옥인 돌집의 내부. 이서원 제공

 

 겨우 차는 기본 수리를 마친 모양이었지만 임시뿐인 듯했다. 또 얼마나 달렸을까. 이번엔 지난겨울에 무너진 산사태로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목적지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 멈춘 차들이 기차처럼 늘어져 길가에 세워져 있다. 나만 답답한 노릇인가? 더운 여름에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차에서 내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자기들은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다. 그 사이 낯선 동양인이 반가웠던지 나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자며 막무가내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들과 사진을 찍었다. 어디로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나를 한국으로 초대해 줄 수 있느냐? 등등 끝없는 수다가 이어졌지만, 나는 그것보다 이들의 기다림이 이렇듯 여유로움이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

 무하마드도 내게 미안했던지 차에 올라타라고 손짓으로 불렀다. 오늘은 아무래도 판다르까지 가기는 무리라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의 뜻을 따랐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차를 돌렸다. 가는 길에 빈손으로 갈 수 없으니 뭐라도 하나 사 가자며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하자 알았다는 듯 양어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가 미안했던지 송어 두어 마리를 담기에 나는 몇 마리를 더 담았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갑자기 집으로 온 아빠를 보며 어린 세 딸이 와락 안겨 왔다. 어디서든 아이들은 이렇듯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겸연쩍게 서 있는 나를 집으로 안내하는 그의 아내는 인정이 넘치고 후덕해 보였다. 

무하마드와 그의 가족들. 이서원 제공

 

 금방 물고기를 손질해서 기름에 튀겼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생선을 앞에 두고 아이들과 아내와 같이 먹자며 불렀지만 끝내 저들은 같이 앉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곳 풍습인 듯 아이들은 남자 어른이 먼저 먹고 나면 따로 남겨진 음식을 먹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생선 두어 조각만 먹고 슬그머니 눈치껏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저 어린아이의 맑고 영롱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말이다. 넉넉하게 사 왔지만 한꺼번에 다 차려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마당에 나왔다. 초록 밀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저 멀리 높은 산을 배경으로 무하마드의 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들과 나란히 서서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먼 후일, 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못내 궁금해하면서 ….

온 가족 옹기종기 생활하는 전통 돌집

이튿날 다시 집을 나섰다. 길은 구절양장보다 더 험하고 위험했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 아이들의 물놀이를 보면서 나는 참 먼 시간여행을 왔구나 싶었다. 강가의 키 큰 미루나무는 아름드리 솟아 하늘에 닿아 있으리만치 곧고 푸르렀다. 이 나라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미루나무가 솟아있는 곳에는 의례 사람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만큼 물이 풍부하고 식물이 잘 자란다는 뜻이다. 

 무하마드는 가는 길에 지루했던지 잠시 친구의 집에 들리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며 차를 세우고 한적한 마을 끝에 있던 친구의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돌로 만들어진 이곳의 전통 가옥 형태로 100년이 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오랜만에 만났던 건지 서로 안고 한참이나 등을 토닥이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 했던가.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해도 저렇듯 아름답게 맞이해주는 친구가 있으니 가끔 이렇게 운전 중에도 들러 서로의 귀한 안부를 나누는 것이리라. 

미루나무가 있는 마을. 이서원 제공

 

 집은 단출했다. 대낮인데도 입구는 자정처럼 어두워 벽을 더듬으며 들어갔지만, 집 가운데는 천장을 뚫어 빛이 쏟아져 내려 어둠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집 가운데는 화로에 나무를 지펴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었다. 천장은 오랜 세월에 그을음이 새까맣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 화로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벽 쪽으로 기대고 빙 둘러 잠을 자는 듯 이불이 놓였다. 그 긴 겨울밤을 서로의 온기와 가족애로 시간을 건너가는 이들, 아내는 예상 밖에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으니 먹거리도 변변찮을 건데 짜이를 데우고 난을 구워냈다. 참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아마도 무하마드는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보다도 내게 이런 전통 가옥을 보여주려는 속 깊은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의 고마운 인정이 도탑고 따스했다. 갈 길이 바빠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안타까움이 두 사람에게 내내 미안하고 또 아쉬웠다.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 검문소에서의 만남

또 몇 시간 먼지를 마시며 달리다 검문소에 다다랐다. 이곳은 검문소가 수시로 있었으며 여행객의 비자를 반드시 확인하고 한 장은 제출해야만 했다. 대여섯 명이 근무를 서는데 갑자기 한 명이 나의 손을 잡고 따라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내리니 어디서 왔느냐며 강압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얼떨결에 무하마드를 찾았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척 딴 곳만 보며 외면하는 게 아닌가. 맙소사! "무하마드, 무하마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두다니, 두어 시간만 더 가면 아프가니스탄인데 이들은 혹시 검문소의 군인으로 무장한 괴한인가? 그 짧은 순간에 머리가 쭈뼛, 온갖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마에 땀이 나고, 온몸에는 경련이 일어나는 듯 떨리며 심장은 쿵쾅쿵쾅 멈출 줄을 몰랐다. 우루드어로 계속 그가 심문하듯 다그쳤지만 내가 어찌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나. 작은 창문을 두드리며 무하마드를 찾으니 그제야 슬그머니 내려왔다. 두고 보자! 이 무하마드! 

검문소에서 만난 친구들. 가운데가 아이샤르. 이서원 제공

 

 나는 잔뜩 긴장하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가 죽어 있는데 무하마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왔다. 알고 보니 이들도 서로 친구였다. 아마도 가끔 이곳을 지나가면 이런 장난을 치는 건지 호탕하게 웃으며 조금 전까지 그렇게 강압적이던 친구가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는 뜻이리라. 한국은 어떤 나라냐? 어떻게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느냐며 서로의 질문이 저 강물처럼 쏟아져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다정한 이들과 한국에서 갖고 간 커피 믹스를 나누며 뜨거운 우정을 확인했다. 

이서원 시조시인

 갈 길이 아무리 멀고 바빠도 이들의 마음과 애잔한 눈빛을 어찌 잊으랴.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올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만이라도 더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돌아갈 길을 잊고 몇 날을 같이 보내고 싶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평생을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없는 이도 있고, 소나기를 피하려 잠시 처마 밑에 서 있다가도 옆에 만난 이가 평생지기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아이샤르 친구는 지금도 안부를 물어온다. 

 "언제쯤 너 다시 올래?" "곧 갈게" 늘 같은 대답이지만 내 안에서 배낭을 챙겼다 다시 놓기를 수십 번도 더했음을 그가 알까 모르겠다.  이서원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