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숨기고' 송죽의 길을 내어주다
'꽃을 숨기고' 송죽의 길을 내어주다
  • 강정원
  • 승인 2011.05.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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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길] 언양 화장산길

   
▲ 언양읍 언양성당 인근의 화장산 진입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압권이다.

화장산. 고헌산에서 줄기 뻗은 해발 285m의 이 산은 언양읍을 품고 있는 주산이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언양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화장산에는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와 고려시대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냈던 김취려 장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울주군은 화장산 일대의 오솔길을 정비해 시민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작가 오영수 묘 주위의 길을 정비해 '난계 오영수길'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 놓았다.
 화장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럿 있지만, 산길 전 구간을 걷기위해 언양읍사무소의 도움으로 언양성당 인근의 화장사에서 진입하기로 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천

화장산 초입은 온통 키 큰 소나무다. 북적거리던 마을을 떠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천이다. 길은 가파르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솔향기가 힘을 내게 한다. 10여분쯤 오르면 '굴암사'다. 언양시가지에서 화장산을 바라보면 정상 바로 밑 절집이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굴암사다. 절 이름과 같이 부처님은 바위굴에 모셔져 있다. 바위 굴 법당 앞에는 굴암사와 화장산에 대한 전설을 새긴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 따르면,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하루는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남방에 도화(桃花)가 있으니 그 꽃을 3일간 달여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왕은 엄동설한에 어떻게 도화를 구할지 걱정하면서도 신하들을 풀어 꽃을 찾게 했다. 한 신하가 헌양성(언양성의 옛 이름)에 이르러 가까운 산의 남쪽 바위에서 서기가 어리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니 꽃은 없고 도화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바위굴에서 수도 중이었다. 서라벌로 간 도화 스님 앞에서 소지왕은 3일간 기도했고 병은 보란 듯이 나았다. 크게 기뻐한 소지왕은 직접 언양에 가서 도화 스님이 머물던 산의 이름을 '꽃을 감춘 산'이라는 뜻으로 '화장산'이라 하고 석굴 속 샘물을 염천이라 불렀다. 그 석굴 속에 부처님을 모신 곳이 굴암사다.

   
▲ 오영수 묘 인근의 대나무 터널 길.

#신라 소지왕의 전설

굴암사를 지나 정상 쪽으로 올라가면 울주군에서 조성한 체육시설이 나오고, 더 올라가면 오래 전에 조성된 듯 한 공동묘지가 나온다. 정상부를 가득 매운 공동묘지에는 십자가가 새겨진 묘비가 유난히 많다. 정상부에서는 동쪽으로 KTX울산역이 보이고, 그 너머로 문수산과 남암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영취산, 서쪽으로는 신불산과 가지산, 북쪽으로는 고헌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공동묘지를 지나고 나면 잘 정비된 임도다. 산이 낮아서 인지 정상부의 면적이 의외로 넓다. 마치 산정의 분지를 걷는 듯 한 느낌이다. 소풍 나온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걷고 있다. 길가에 지천으로 핀 들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있다.

 북쪽으로 난 길을 조금 내려가면,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는 길과 다시 굴암사 쪽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김취려 장군과 오영수의 흔적을 찾으려면 다시 굴암사 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화장실이 설치된 곳에서 다시 산 아래로 난 오솔길을 잡으면 된다. 경사지마다 목재로 계단을 만들어 놓고, 로프까지 달아 놓았다. 조금만 내려가니 온통 대나무다. 세죽이다.

 화장산이 위치한 곳의 지명은 언양읍 송대리다. 소나무와 대마무와 관련된 설화다.
 신라시대 어느 엄동설한. 산 밑에 사냥꾼 부부가 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 위 바위굴에 살던 곰이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등 행패를 부렸다. 부부는 곰을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곰에게 역습을 당해 죽고 말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부모를 찾으러 나섰던 남매도 산을 헤매다 기진맥진해 눈 속에서 얼어 죽었다. 가엾게 죽은 오빠의 혼은 대(竹)가 되고 여동생의 정령은 소나무(松)가 됐다.

   
▲ 굴암사 바위면에 최근 조성한 불상.


#김취려 장군과 오영수 선생 묘소


지금도 무성한 소나무와 대나무가 이 설화가 헛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세죽림이 한창인 지점에서 '위열공 김취려장군 묘', '오영수의 묘' 표지판을 동시에 만난다. 여기서 김취려 장군 묘까지는 350m다. 사람의 발길이 만든 그야말로 오솔길이다. 작은 계곡을 지나 만난 김취려 장군 묘역은 들어서는 순간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묘역의 정면으로 멀리 문수산 봉우리가 보인다. 문수산 봉우리와 김취려 장군의 묘터는 일직선에 놓여있다.

 고려의 명장으로 손꼽히지만 생소한 김취려 장군. 안타깝게도 그의 유물이나 직접적인 사료는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울산에서 김취려 장군의 흔적이라곤 이 묘(위열공 김취려 묘,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와 산 아래쪽의 비석(태지유허비)이 전부다.
 자료에 의하면 김취려 장군의 본관은 언양(彦陽). 아버지는 예부시랑 부(富)이다. 고관자녀의 출사 수단인 음서(蔭敍)로 등용된 뒤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으로 동북지방을 진압한 후 대장군이 되었다.

 김취려 장군이 활약한 가장 유명한 전투는 제천(堤川) 박달재 전투로 거란족은 이 전투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고 물러났다.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로 유명한 박달재 고개에 가면 김취려 장군의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와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묘지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김취려 장군이 사람됨이 정직하고 검소하였으며, 아랫사람을 바르게 다스려 누구도 그를 속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적을 공격할 때는 그의 전략전술이 뛰어나 큰 공을 세워도 그 공을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 사졸들은 그의 높은 덕망을 칭송했다고 해 놓았다.

 현재 묘역에는 봉분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두른 묘 앞에 묘비와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동물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새로 만든 무인석 옆에 목이 잘린 옛 무인석이 함께 서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김취려 장군묘역에서 되돌아 나온 후 '문학가 오영수의 묘' 표지판을 따라 30m만 내려오면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1909∼1979)를 만날 수 있다. 가족들 곁에 묻힌 그의 봉문 앞에는 '작가 오영수 여기 잠들다'라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옆으로는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넘어져, 해체의 과정을 겪고 있다. 묘역 쪽으로 가지가 처지는 소나무를 제거하기 위해 누군가 고의로 고사시킨 듯하다.
 오영수 선생은 단편 '남이와 엿장수'로 문단에 등단한 후 '갯마을', '화산댁이' 등 150여편의 소설을 남겼다.

#넉넉잡아 1시간30분 산책길

울산시는 최근 오영수 선생을 기념하고 알리는 '난계 오영수 길' 조성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출신의 문학인 이름을 딴 길이 생기는 것은 오영수 길이 처음이다. 화장산 산책길 중 1.5㎞ 구간을 오영수 길로 명명하고 각종 종합안내도, 안내표지판, 방향표지판을 곳곳에 설치했다. 화장산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오영수 길을 만나고,  선생의 묘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오영수 선생을 기리는 문학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오영수 문학관은 울산시가 16억1,800만원을 들여 선생의 고향인 울주군 언양읍 옛 언양정수장 부지 4,152㎡에 2012년 말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오영수의 묘에서 5분 남짓 아래로 내려오면 송대리 내곡 마을이다. 뒤돌아보니 화장산 전체가 소나무와 대나무로 뒤덮인 듯하다. 넉넉잡아 1시간30분의 산책길.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장산에서 마음 속에 담은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글·사진=강정원기자 mikang@ulsanpres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