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부터 근대까지 이어온 울산 행정 1번지
조선조부터 근대까지 이어온 울산 행정 1번지
  • 최창환
  • 승인 2011.06.0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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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구석구석] 6. 중구 북정동

   
▲ 1965년 함월산에서 바라본 중구 시가지 전경. 좌측의 산 중 우측 봉우리가 학성공원이다. 오른쪽으로 구 울산역과 옥교동이 보인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 중구 북정동은 예전 울산의 '행정 1번지'었다. 멀리로는 조선시대 축성된 울산읍성이 자리했고, 1970~1980년대에는 울주군청을 비롯해 울산경찰서, 울산등기소, 울산기상대, 안기부 울산분소 등 모든 관공서가 밀집해 행정중심지를 이루었다.
 이처럼 북정동은 행정중심지이면서 울산의 근대사를 연 중심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울산기상대 등 일부 시설만 남고 대부분의 관공서가 마을을 떠나 행정타운의 기능은 상실됐다.

 현재 북정동은 북정·성안 2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정동에는 울산유형문화재 제1호인 울산도호부가 있었던 동헌이 있고, 성안동은 신흥도시지역과 성동, 풍암, 황암, 성안약사, 손골 등 5개의 자연부락으로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하는 매우 넓은 지역이다.

 신흥도시지역인 성안에는 울산지방경찰청,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적십자혈액원 등 여러 공공기관이 소재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공동주택과 음식점 등 상가의 입점으로 중구의 대표적인 상권이 형성되어 행정수요가 증폭되고 있어 주민불편을 최소화 하기위해 성안민원실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울산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지역으로 특히 울산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동헌.


#동헌과 울산객사 그리고 경찰서

북정동은 근래 들어 각종 문화시설들이 집중하면서 중구지역의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 행전기관이었던 동헌이 자리하고 있고, 중부도서관과 울산 문화의 집, 북정공원 등이 있다.
 북정동의 옛 울산경찰서 자리에 조성돼 주민들의 새로운 문화공간이 되고 있는 북정공원이다. 울산경찰서는 북정동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었던 관공서로 8.15광복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1945년 10월 설립돼 1992년 울산 중부경찰서로 독립 뒤 1933년 10월 남외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무려 47년 동안이나 자리했다.

 이 옛 울산 경찰서 자리에 들어선 북정공원은 도심에서는 비교적 넓은 1000여 평의 부지에 공연시설인 야외무대와 벤치, 화장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울산이 자랑하는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의 동상이 공원을 안내해 청소년들은 물론 일반 구민들로부터도 인기를 끌고 있다.
 1984년 개관한 중부도서관은 1650개의 좌석과 각종 도서 10만 2000여 권을 갖추고 있어, 이용자가 하루 평균 740여 명에 이르면서 구민들의 독서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북정동에는 천년사찰 백양사를 비롯해 주택가 중심부에 자리한 조계종 통도사 포교원인 해남사 등 울산 시가지에서는 가장 많은 10개의 사찰이 소재하고 있다. 그리고 울산지역에서 전통이 가장 오래된 울산초등학교를 비롯해 화교학교, 방송통신대 울산학습관, 울산노인대학 등이 자리해 있다.
 북정동은 이렇게 각종 문화시설과 학교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 주민들의 새로운 문화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 울산초등학교 회화나무.


#정자나무가 있는 울산도호부의 북쪽마을

북정동은 숙종 34년(1708) 북문내리와 동문내리, 두 개의 마을로 갈라져 있었다. 영조 41년(1765)에는 북문내리와 상린리로, 정조 때인 1777년에는 두 개 마을을 합해 북문내리로 하였다. 순조 10년에 다시 북문내리와 북정리, 상린리 2개 마을로 갈랐다가 1849년 북문리로 통합했다. 고종 31년(1894)에 와서는 북문동과 북정동으로 나누었다가 1911년 다시 북정동으로 통합했다. 그 뒤 1972년 성안동까지 행정을 관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정이라는 마을 이름은 '북쪽에 정자나무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송림으로 이루고 있었는 데 집이 들어서니까 우거진 소나무들이 정자구실을 했으며, 그리고 마을이 도호부의 북쪽이 이었던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성마을은 울산초등학교 동북쪽에 있는 북정의 본마을을 지칭하는 것이다. 허촌각단은 지금의 해남사 동북편을 말하는 데, 허씨들이 살았으므로 허촌이라 했고 '각단'은 마을을 뜻한다.

 성안동의 옛 지명으로 새일내는 고종 31년(1894) 상리라 하다가 1911년 상안이라 고친 마을이름이다. 상리라 함은 '으뜸가는 윗마을'이란 뜻이다. 상안은 '위쪽의 따뜻한 마을'이란 뜻이며 '성안의 중심'이란 뜻도 담고 있다. 성안동은 자연마을인 풍암은 성동 북쪽에 잇는 마을로, 논밭이 많고 울산에 가장 높은 지대여서 바람이 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장암은 '장군바우'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는 데서 유래했다.
 
   
▲ 울산초등학교 앞 도로에 서던 1909년 5일장의 모습. 멀리 보이는 2층 누각이 태화루의 현판을 달고 있던 건물이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현판만 남았다.


#울산의 중심성곽 울산읍성

울산성은 북정동을 비롯해 옥교동, 성남동, 교동 일대에 걸쳐 둘러쳐져 있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축조되었던 성이다.
 '배산임수'라는 말이 있듯이 대개 읍성은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을 두기 마련이다. 이는 취락의 발달이 지형적으로 이러한 특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울산읍성도 울산의 진산인 함월산을 배경으로 태화강을 앞으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읍성이 자리한 지역이 취락의 발달과 함께 성의 축조 요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울산 읍성의 축성 연대는 조선 성종 때이다. 성종실록에 "병조판서 이극배의 건의에 따라 성종 7년(1476)에 성을 쌓기 시작해 울산읍민에게만 부역하게 하였더니 지지부진하여, 관찰사로 하여금 가까운 고을의 장정들을 동원해 성종 8년 10월에 완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성안에는 동·서·남·북으로 세워진 4개의 문과 함께 30여 개의각종 관위시설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성 안의 시설로 전해지고 있는 것들은 동헌과 내아인데, 이들 시설들은 1981년에 복원돼 당시의 일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 성안에 위치한 시설물로는 수령이 공무를 보던 행정처로 가장 중요한 동헌을 기준으로 동헌 입구에는 도적을 경계하는 북을 두었던 가학루가 자리하고, 동헌 뒤에는 오송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수령의 식구들이 거주하던 내아, 관가의 노비가 기거하던 관노방, 관아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무인이 기거하던 사령방, 군사업무을 보던 군관청, 도둑을 잡던 포도청이 동헌 오른편(서쪽)에 있었고, 관할 구역의 호적을 관리하던 호적소가 왼편(동쪽)에 자리했다. 내아 뒤에는 부엌시설인 내부가 있었다. 그리고 동헌 바로 앞에는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기거하던 통인방, 관청의 아전들이 있던 형리청이 자리했다. 동문 쪽으로는 객사가 자리했으며, 객사 입구에는 태화루가 있었다. 이 태화루 위치는 지금의 울산초등학교 정문 쪽에 위치했었다. 읍성의 남문인 강해루는 태화루에서 100보 거리에, 동문은 지금도 자리하고 있는 옛 울산시장 관사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울산읍성은 임진왜란 때 왜적이 지금의 학성공원에 왜성을 쌓으면서 성벽을 허물어 가는 바람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데다 현재 주책이 빽빽이 들어서 그 위치와 건물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할 수 없지만, 성의 총길이가 대략 1.7km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양사 부도와 울산초등학교 느티나무

북정동에는 신라 때 고승 백양선사가 창건한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는 데, 이 사찰에 두 기의 부도가 전해져 향토문화재가 되고 있다.
 이 두 기의 부도는 절 서쪽 소나무 숲과 절 동쪽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서쪽에 있는 부도는 백양사를 창건한 백양선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라 하고, 동편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는 조선조 숙종 때의 고승 연부선사의 부도라고 전해온다. 백양선가의 부도는 백양사기 창건 연도가 삼국사기에 신라 경순왕 6년(932)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북정동에 위치한 울산초등학교에는 수령이 수백 년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에서 말해주듯, 근세 이후 울산의 역사와 호흡을 같이 해 왔음을 보여준다. 울산초등학교는 울산도호부의 객사였던 자리이며, 객관이라 하여 중앙관리들이 오면 숙식을 제공하던 학성관이 있었다. 따라서 이 나무는 옛날 울산도호부청이 있을 때 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도호부청 자리에 있었던 옛 나무로는 울산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이 회화나무가 유일한 데, 아직도 수세가 좋아 앞으로도 울산의 역사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울산초등학교는 울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교다. 1907년 개교해 2000년 2월까지 90회에 모두 2만66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울산교육의 산실역을 맡았다.  최창환기자 c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