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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최초의 울산석유화학단지는 1969년 11월 부지정지 공사를 시작하여 12월 공사를 완료하고, 1972년 10월 31일 합동준공식을 거행했다. 사진은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조성 초기의 전경. (1972년도)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년)이 진행 중이던 1965년 3월에 제2차 경제개발 기간(1967-1971년)에 시행할 지침을 마련했다. 다음 해 1966년 3월에 2차 경제개발 기간에는 석유화학을 핵심사업으로 하는 개발계획을 확정하고, 화학공업의 원료를 국산화하는 데에 총력을 쏟기로 했다.

 1966년 7월 상공부에 석유화학공업 심의위원회와 석유화학공업 추진위원회가 설치됐다. 그해 12월에 석유화학공업 개발계획이 확정됐다. 이어 울산과 인천, 비인, 여수를 대상으로 한 입지 선정작업에 들어가, 67년 7월 울산을 석유화학공업단지로 최종결정했다. 석유화학공업위원회는 68년 2월 울산시 부곡동 일대 110만평을 석유화학공단으로 지정했다. 68년 3월 22일 우리 나라 석유화학산업의 시발점인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의 역사적인 기공식이 거행됐다.

 석유화학위원회는 단지조성을 충주비료에 맡겼다. 충주비료 측은 단지조성과 지원시설의 효율적인 건설을 위해 (주)석유화학공단을 만들어 업무를 총괄케 했다. 콤비나트 형성을 위한 단지 조성계획을 짜는 한편으로, 7개월간에 걸쳐 부지매입과 지질조사에 나섰다. 68년 11월부터 69년 12월까지 1년여에 걸쳐 22억원이 투입돼 단지 조성공사를 했다. 1차로 68만평이 조성됐다.

 71년 1월에 한양화학을 시작으로 대한유화와 삼경화성, 이수화학이 속속 공장 건립공사에 나섰다. 단지조성 시작으로부터 4년6개월여에 걸쳐 내ㆍ외자 2,000여억원이 투입돼 9개 공장이 준공됐다. 72년 10월 30일 울산석유화학 콤프렉스의 합동준공식이 거행됐다. 기초유분과 합성수지, 합성섬유원료, 합성고무, 기타 유화제품 등을 생산ㆍ공급하는 콤비나트형 기초소재산업공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석유화학단지가 만들어지던 1968년에 현대자동차도 공장 건립공사에 들어갔다. 1940년대에 자동차 정비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67년에 현대자동차를 설립했다. 68년 3월 양정동 700번지 일대에 공장 건립공사에 착수했다.

 영국 포드사(社)의 모델 코티나의 조립생산을 시작했다. 68년 11월 초에 코티나 1호차를 생산했다. 그러나 판매에 한계를 드러내자 독자모델을 생산키로 했다. 76년에 최초의 한국형 승용차 '포니'의 시판에 들어갔다. 그해 6월에는 첫 수출길에도 올랐다. 에쿠아도르에 포니 6대를 수출했다.

 제3차 경제개발 기간(1972-1976년)에 조선소가 들어섰다. 현대의 조선소 건립은 70년 3월 현대건설에 조선사업부가 발족되면서 비롯됐다. 다음 해 71년부터 조선소 건설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4월에 부지조성에 들어가는 한편, 9월에 영국 애플도어사(社)와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 및 판매협조계약을 체결했다. 10월에는 영국 버클레이은행을 간사은행으로 하는 차관컨소시엄과 차관제공계약을 체결했다. 12월에는 정부로부터 현대울산조선소 사업계획을 인가받았다.

 72년 4월 10일 그리스 리바노스(社)로부터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했다. 그 다음 달 72년 3월 23일 오후 2시 미포만 백사장에서 역사적인 기공식을 가졌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주한 각국 대사, 직원과 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1차로 70만톤급 드라이 도크 2기의 공사에 들어갔다. 73년 3월에는 1, 2호선의 건조에 착수했다.

 마침내 74년 6월 28일 조선소 1차 준공과 함께 첫 수주한 배 2척의 명명식을 가졌다. 1호선은 애틀란틱 배런호, 2호선은 애틀란틱 배러니스호로 명명됐다. 2년3개월만에 조선소 1차 준공과 함께 명명식을 가진 것이다. 75년 5월에는 100만톤급 3도크가 완공됐다. 단일 조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로 발돋움했다. 회사 명칭도 73년 12월 현대조선중공업(주)이던 것이 78년 2월에 현대중공업(주)으로 바뀌었다.

 울산은 2, 3차 경제개발 기간에 지금의 울산 경제의 세 축(軸)인 석유화학과 자동차, 조선 업종이 들어섰다. 1차 기간에 에너지와 비료 업종이 입주해 당시 빈약한 국가경제의 밑바탕 역할을 했다. 2차 기간에는 석유화학과 자동차, 그리고 3차 기간에는 조선 업종이 뿌리를 내려 울산이 세계적인 공업도시로서의 기반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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