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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방송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얼굴에 바르는 황토팩의 유해성이 보도되면서 황토의 효용성이 논란에 휩싸였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은 "업계 1, 2위를 다투는 업체를 비롯한 여러 황토팩 제품을 수거해 중금속 함유 여부 검사를 실시한 결과 비소 등이 기준치 이상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고 납은 일반 화장품 기준 수치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서해안, 청정지역 등에서 채취한 황토를 사용한다는 설명과는 달리 실제 채취 장소는 논바닥, 과거 과수원으로 쓰이던 지역이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황토 자체가 아니라 황토를 채취한 지역의 오염수준으로 청정지역에서 천연황토를 확보해 팩을 만든다면 유해성 논란은 사라질 법하다.


 이미 알려진 대로 황토는 '살아 있는 흙'이자 자연이 인간에게 남긴 천연치료제이다. 세계의 4대 문명지가 모두 황토지대에서 시작됐고 고인돌과 미이라도 황토지대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 1995년 남해안에 사상 최대의 적조가 발생했을 때 시험적으로 사용했던 황토의 바다살포는 의외의 효과가 나타나 지금은 일본도 우리의 황토살포를 따라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우리나라 서해안은 중국대륙과 우리나라에서 황토가 연중 유입되기 때문에 리아스식 해안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해양내부적 요인에 의한 적조발생은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황토의 효용성은 국제적인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황해에 지금 나타나고 있는 적조현상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쏟아내는 산업폐수가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0여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황토 찜질방은 이미 고려시대에 있었다. 고려 때 민중들은 황토집이 사람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생활에 응용했다. 황토집이 병자들을 치료하는 곳으로 활용됐다는 증거도 있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인 이규경이 남긴 문집에는 고려 중기에 고관들이 한 두 칸씩의 '황토찜질방'을 만들었으며, 나이가 많은 재상이 휴식을 취하거나 병자들이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이용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는 이 같은 황토이용이 더욱 활성화 됐다. 태조 이성계는 황토방에서 심신을 수련한 덕분에 활쏘기의 힘을 얻었고, 고려 말 왜구에 대항한 우리의 신궁(神弓)들도 황토굴에서 수련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종기로 고생했던 세종과 세조는 아예 경복궁에 따로 찜질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병을 치료했고 광해군도 찜질방을 즐긴 임금이었다. 민간의 황토 이용은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민중들의 응급처치약인 '복룡간'은 황토로 만든 아궁이 바닥의 누런 흙으로 코피가 나거나 상처가 났을 때 바르면 피를 멎게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복룡간'은 독기(毒氣)를 삭히고 해산을 쉽게 했다는 기록에서부터 중풍으로 인한 언어불순과 수족마비는 물론 부인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황토가 그 효용성을 인정받는 결정적인 요인은 황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 때문이다. 태양광선 가운데 인체에 유익한 미세한 빛인 원적외선이 황토에 농축돼 있기에 한 스푼에 2억 마리나 되는 미생물이 표피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살아 있는 흙이 지난 40여 년간 계속된 국토개발과 농경지의 증산정책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과수원과 농경지의 무차별적인 농약사용으로 천연 황토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있다. 수천 년 동안 자연의 신비를 간직해온 황토로 미용을 하고 찜질을 통해 기력을 해복한 것도 황토가 살아 있을 때의 일이다. 죽어가는 황토로 오늘은 황토팩이 도마에 올랐지만 머지않아 황토찜질방의 유해성 보도가 나올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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