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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공업의 효시 ③ 3대 염전과 소금 생산
김종경대기자의 울산공부방
2011년 08월 17일 (수) 18:06:16 김종경 kimj@ulsanpress.net
   
▲ 태화강 하구 여천부락을 조개가 많이 난다고 해서 조개섬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가구가 농사를 짓고 소금을 구워서 생활하였다.

소금[鹽·salt]은 사람에게는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소금을 얻기 위한 노력은 아주 옛날부터 이뤄졌다. 원시시대에는 조수나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식물을 채취하여 섭취함으로써 염분을 충족했다. 선사시대에 들어와 소금이 산출되는 해안 등지나 바위소금이 있는 곳은 교역의 중심이 됐다. 수렵민이나 농경민은 그들이 잡은 짐승이나 기른 농산물을 소금과 바꾸기 위해 소금 산지에 모여 들었다.

 우리 나라의 소금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의 고구려조에 나온다.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왔다'고 간략하게 적혀 있다. 고려 때에는 도염원(都鹽院)을 두고 나라에서 직접 소금을 제조·판매하여 재정수입원으로 삼았다. 조선 때에는 연안의 고을마다 염장(鹽場)을 설치해 관가에서 소금을 구웠다. 일제강점기에 소금은 완전히 전매제(專賣制)가 됐고, 1961년에 전매법이 폐지됐다.

 울산은 조선 때에 지금도 소금이 생산되고 있는 서해안처럼 소금생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울산의 소금생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울산군의 남쪽 세 곳에 염소(鹽所)가 있다. 염창(鹽倉), 즉 소금 창고는 읍성 안에 있으며, 염장관(鹽場官)을 따로 두어 관리하도록 했다'고 돼 있다. 다른 기록에는 '소금이 많이 나서 백성 가운데 앉아서 부자가 된 사람이 여럿이 있다'고 적혀 있다.

 울산의 3대 소금생산지는 ①태화강과 여천강이 만나는 삼산동과 돋질산 아래 지역 ②선암동 태광산업 근처에서 부곡동에 걸쳐 있었다는 염분개[鹽盆浦] ③외황강 하구의 상개와 하개 일대에서 청량면 오천과 오대에 걸쳐 있었던 마채[馬鞭] 지역이 꼽혔다. 어떤 이들은 염분개 대신 염포를 꼽기도 한다. 마채 지역에는 소금을 굽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근래 인근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멸실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한다.

 한편 1934년에 발행된 울산읍지에는 울산면의 태화강안 삼산과 하상면의 명촌부락 태화강 하구, 대현면의 태화강 하구 여천부락의 조개섬, 청량면의 외황강 하구 마채 등 네 곳에 염전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소금생산량은 울산면이 3만6,000평의 염밭에서 21만6,000근, 하상면 3,000평에 4,300근, 대현면 3,650평에 1만3,400근 등이었다.

 울산의 염전 가운데 태화강 하구 여천부락의 조개섬에 있던 염전은 1965년까지도 명맥을 이었다. 6명의 소유자 중에 5명은 섬 바깥 여천부락 거주자였고, 정해수씨 1명만 섬에 살았다. 정씨는 3,000여평의 염전을 갖고 있었고, 가족들이 많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소유자는 외지 인부를 고용하여 운영했으며, 성수기 때에는 50명이 넘는 인부가 생산에 매달렸다고 한다.

 울산의 소금생산 방법은 서해안과는 달랐다.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은 염전에 바닷물을 가둬놓고 햇볕에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천일염(天日鹽) 방식이다. 즉 바닷물을 염전의 저수지(貯水池)와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에 차례로 옮겨가면서 햇볕과 바람에 의해 수분을 증발·결정시켜 만드는 것.

 울산은 갯펄에 바닷물을 가둬놓고 증발시킨 뒤에 흙과 함께 뭉쳐진 소금덩어리를 가마에 넣고 구워서 얻는 전토염(煎土鹽)이었다. 염전에서 소금덩어리를 가마에 넣어 구울 때 연기가 피어올랐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염전에서 소금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묘사한 '염촌담연(鹽村淡烟)'이 울산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19세기 후반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영좌병영지도(嶺左兵營地圖)'에도 삼산염전에서 오르는 푸른 연기가 그려져 있다.

 서해안에 못잖은 생산량을 보인 울산의 소금은 언양의 석남재와 운문재, 소호재 등을 넘어 내륙으로 팔려나갔다. 경북 북부 문경 이남에서 울산 소금을 먹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동해안에서 울산 외에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울산 장날이면 등짐 장수들이 한 가득 몰려들어 소금을 산 뒤, 범서와 언양, 상북 등지의 고개를 넘어 내륙 곳곳에 소금을 풀었다.

 울산 소금은 오늘날에도 옛 명성을 잇고 있다.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주식회사 한주가 지난 1979년부터 이온교환식 전기투석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고 있다. 한주의 소금공장은 조선 때 울산의 3대 소금생산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마채염전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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