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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 바닷속은 속살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맑은 물속을 헤집으며 고동을 잡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즐겁다.

쪽빛바다와 몽돌 화음에 귀가 즐겁고
갯바위 소나무 절경에 눈이 즐겁고
돌미역·장어·참가자미에 입이 즐거운
느리게 달리고 싶은 그림같은 풍경

# 들어가기
상자를 연다. 일정한 공간에 들어 있는 가지각색의 초콜릿. 그중 하나를 손에 든다. 포장지를 벗겨 입안에 쏙 넣으니 사르르 녹는다.
 초콜릿은 내 심장을 더욱더 뛰게 만든다. 혀 안에서 그것이 녹는 순간, 내 안의 모든 근육은 쾌감과 함께 이완된다.
 주전에서 강동으로 이어지는 2차선 해안도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은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격식과 가식으로 긴장됐던 내 몸을 풀어줄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하다. 그래서 여행은, 초콜릿임에 틀림없다.
 

   
▲ 주전 바닷가는 번잡하지 않고 물이 깨끗해 유난히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 몽돌과 함께 드러나는 바다 속살
예전의 그 구불구불한 도로가 아니다. 고개 하나를 넘으니 저기 푸른 바다가 보인다. 주전이다.
 이곳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붙들린 발길. 주전돌미역마을이다.
 주전돌미역은 다른 지역 미역보다 쫄깃쫄깃하며 미역 특유의 향 또한 뛰어나다. 매년 3~4월이면 해녀들이 수확한 돌미역을 말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최고 품질의 미역을 생산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어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닷가에 들어서니 한적한 느낌이다. 다문다문 있는 사람들. 뭐랄까? 이곳은 때 묻지 않은 듯하다.
 저기 아주머니 두 분은 연신 바다 속살을 헤집는다.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니 고동을 잡고 있는 중이다. 친구 사이라는 두 분은 가끔씩 이곳에 와서 고동을 잡았단다. 먹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잡는 재미도 있단다. 망에 담긴 고동을 보니 한 가득이다.
 그러고 보니 물이 맑다. 이곳의 자랑 몽돌과 함께 바다 속살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고동을 한가득 잡아 올린 것도 이유가 있었다.
 도로를 따라 차를 움직인다. 바닷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8월 그 한가운데서 내리쬐는 햇볕이 강렬하지만 바닷바람을 몸에 둘러서인지 한결 낫다.
 도로를 따라 이동한 지 5분도 안 돼 몽돌해변이 펼쳐진다. 해변을 따라 펼쳐진 텐트와 파라솔이 휴가철임을 실감케 한다. '아, 여름이구나!'
 해변에 발을 디디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젊음의 행진. 모두들 이 여름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저기 3명의 젊음들도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친구들이랑 함께 여기 왔어요. 놀려고요."라고 말하는 이재룡(15) 친구. 중학교 2학년생인 재룡 친구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몽돌해변에 자주 온단다. 가까울 뿐만 아니라 느낌도 편하단다.
 함께 놀러온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하니 포즈를 취한다. 찰칵. 모두들 사진이 잘 나왔다며 웃는다.
 가족 단위로도 많이 왔다. 고영관(40) 씨 가족도 그중 하나다. "장인어른이 여기 울산에 사시는데 휴가차 놀러 왔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는데 좋네요."라고 말하는 고영관 씨. 서울에서 온 고 씨는 이곳 몽돌해변이 해운대해수욕장이나 광안리해수욕장과는 달리 번잡하지 않단다. 잡상인도 많지 않아 덜 상업적이라고. 이뿐만이 아니다. "여러 해수욕장을 가봤는데, 여기 물이 깨끗합니다. 바다 속 몽돌이 다 보일 정도니까요." 주전 몽돌해변에 대한 고 씨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Good'이다.
 

   
▲ 검은 몽돌로 유명한 주전 바닷가.

 
# 용바위의 절경 당사 마을
주전에서 정자로 넘어가는 길. 우측으로는 푸른빛 바다가, 좌측으로는 초록빛 산지가 나를 호위한다. 바닷바람인지 산들바람인지 모르겠으나 호위무사들이 일으킨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끊길 줄 모르고 이어지는 2차선 도로. 여기서만큼은 속력 낼 필요가 없다. 일상에서 벗어난 만큼 느릿하게 움직여도 좋다. 좌우 호위무사들이 펼쳐 보이는 풍광을 감상하기에는 '안단테'가 딱! 이다.
 이번에 들린 곳은 당사. 속력을 조금 더 냈더라면 지나쳐버렸을 정도로 아담한 곳이다. 마을 초입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아닌데, 맞은편에 위치한 강동구장이 아니었더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게다.
 마을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어촌에 떡하니 자리 잡은 자연산 직판장이 눈길을 끈다. 구청과 협약해 자연산 수산물만을 취급한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니 아주머니가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 직판장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자연산만 취급한다고 멀리서도 많이들 찾아오십니다." 김선옥(46) 씨가 고기를 손질하는 와중이지만 기자의 질문에 흔쾌히 대답한다. 잡어 같은 경우는 이곳 어장에서 기르는 거를 취급하지만 참가자미만큼은 바다에서 잡은 것만을 취급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정자 저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가자미는 기름이 많아 차지며 그 맛 또한 고소하기로 유명하다. 뼈가 무른 까닭에 뼈째 먹어도 괜찮은 게 또 하나의 특징. 저렴한 가격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는 직접 잡아들인 것만을 파니까 다른 곳보다 가격이 싼 편이에요. kg당 18,000원이니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요."
 먹거리는 충분하다. 하지만 입만 호사를 누릴 수도 없는 노릇. 이곳 당사마을의 볼거리를 소개해 달라는 말에 추천받은 곳은 마을 끝에 위치했다는 용바위다. 마을을 나서는 길목에 들어서니 육지에 맞닿은 바위와 바다 위에 솟아오른 바위가 이어졌는데, 바위에서 자생하는 곰솔과 함께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냈다. 그 아름다움을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카메라에 담는다.
 
#'사랑길 제전장어' 제전마을

   
▲ 정자 바닷속 자연산 가자미는 기름이 많아 차지며 그 맛 또한 고소하기가 일품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정자로 이동하는데 무언가 거창한 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거창하기보다는 아담하고, 북적거리기보다는 한적하다. '푸른색과 초록색으로 수놓인 화폭 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자연이 연출한 섬세함을 감상하기에는 여기만한 곳도 없을 거 같다.
 이번에 들린 곳은 제전마을. 여기 마을 또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정도로 아담한 곳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한 눈에 담기는 게 주위 자연과 잘 어울린다.
 고샅길에 할머니 대여섯 분이 앉아 있다. 이방인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듯 계속해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 사이를 지나는 순간 기자는 이방인이 된 거 같다. '여기가 울산인가?'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푹 퍼진 채 앉아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는데, 울산 안에 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을 옮겨놓은 듯하다. 울산 시내에서 채 1시간도 안 되는 곳에 왔을 뿐인데도 그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석양이 비치기 시작하는 포구에 들어서니 꼬마 녀석들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한 녀석이 힘껏 던지는데 바로 앞에 떨어진다. 이름을 물으니 8살 이원빈이란다.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 왔다고. 사촌형들도 오늘 함께 모였단다.
 낚싯대를 드리우는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어설프다. 6살 때 혼자서 고기를 잡아봤다고 말하는 원빈. 낚시대를 들고 있는 두 손을 보는데 무거운지 꽉 잡고 있다. 진지하다. 고기 한 마리 잡겠다고 포부를 밝힌 녀석이 낚시대를 다시 한 번 힘껏 던진다. 역시나 어설프다.
 이곳 제전은 과거에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각종 수산물을 걷어 올리며 번성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젊은층이 도시로 떠난 지금은 그때 그만큼의 활기를 띠지 못한다고. 고기잡이도 이제는, 나이 많은 사람 몇몇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난달 14일 문을 연 마을기업 '사랑길 제전장어'는 마을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방편이다. "사업기획서를 넣고 구청과 시청의 심의를 받았는데 통과가 됐습니다. 그래서 지원받은 예산으로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이 가게로 만든 거죠." 마을기업에 대해 설명하는 김명찬 어촌계장. 그의 설명을 들으니 여기 가게에서 일한 주민에게는 보수가 주어지니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출입으로 마을에 활기가 돌 거란 생각이다.
 안타까운 점은 맛을 볼 수 없다는 거다. 혼자인 까닭에 그저 입맛만 다시고 있을 뿐이다. 어찌하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나가기
어느덧 어둠이 내렸다. 오늘은 강동해변까지다. 화암마을 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주상절리는 다음에 보기로 한다.
 주전에서 강동으로 이어지는 이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 괜찮다는 생각이다. 푸른빛과 초록빛으로 수놓인 화폭을 따라 선을 그어 나가는데 그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볼거리 먹을거리를 두루 갖췄다.
 지난 한 주간 쌓였던 근육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를 점검한다. 오감을 자극했던 그 모든 것들이 얼마만큼 내 안에 녹아들었을까?
 초콜릿이 든 상자를 닫는다. 오늘의 여행은 여기까지다.
 강동해변도 이 여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폭죽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들르기로 생각한다. 오늘은 이곳 강동해변에서 낙관을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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