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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정권과 현 정권 10여 년 동안 의료계는 사상 유래 없는 고난에 시달리고 있다.


 의료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시행된 의약분업의 실패는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특정집단의 이익 이면에 의료재정을 고갈시켰으며 그 짐을 고스란히 의사들에게 전가시켰다.
 상상을 초월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배출된 전문의료 인력을 공공재로 여기는 사회주의 의료정책 입안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각종규제와 불편부당한 법률로 옥죄는 것도 미흡해 일부 시민단체와 특정집단의 주장에 부합하는 전면적인 의료법개악에 몰두하더니, 실시간 진료감시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공인인증제 실시,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아 보안이 필요한 성분명 처방의 시범사업 실시 등에 이어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라는 전대미문의 악법으로 의사를 사지에 몰아넣고 있다.


 법안의 엄청난 파장과 민감성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논의로만 그쳐왔던 의료분쟁조정법이 사회주의 정권말기에 강력한 반대국회의원의 외유를 틈타 기습적으로 보건복지법안소위를 통과하게 되면서 그 이름도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으로 바뀌어 나타나면서 의료계를 경악케 했다.
 법 심사 절차상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이름 자체가 일방을 피해자로, 또 다른 일방을 가해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꼭 필요하다면 그 이름은 의료분쟁조정법이 되어야 할 것 이다.
 소위 의료사고피해조정법의 핵심 논점은 입증 책임의 전환이다. 무과실의 입증 책임을 의료인에게 전가해야한다는 논리는 증거가 의료인에게 편중되어있고, 의료인이 전문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의료인은 모든 진료행위를 기록하도록 의무화 되어있고, 환자는 필요하다면 언제나 열람할 수 있으며, 판결도 이 의무기록에 따라 의사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였던 바, 언제나 환자가 불리하고 의료인이 유리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제가 미약한 부분이 있다면 해당법의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온당한 것이지 그러하여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가시켜야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또 의료인이 전문직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오늘날 소송이 제기 되었을 때, 사실 감정등을 통해 다른 의료인으로부터 얼마든지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논리이고, 변호사 등을 포함한 다른 전문직들에 대해서는 그 입증책임전환의 논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왜 유독 의사만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자신의 선의에 의해 행한 의료행위에 대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법에 의해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가?


 병원의 응급실에 반나절만 있어보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다. 만에 하나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과연 어떤 의사가 자신의 소중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소신껏 진료에 임할 수 있겠는가? 일단 무과실입증책임의 굴레에 빠져 할 수 있는 검사란 검사, 촬영이라는 촬영은 다할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러고도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치료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의사가 아무리 지식을 갖고 고도의 훈련과정을 겪은 전문지식인이라고 하더라도 신이 아닌 이상 우주 삼라만상만큼 복잡 미묘한 인간의 몸과 정신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이런 상황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이 법안이 다양한 논의를 거쳐 의료분쟁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적절한 내용으로 제정된다 하더라도 입증책임의 전환만은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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