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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기시대' 주장 할 만큼 대대적으로 발견
[홍산문화] 2.옥기
2011년 11월 23일 (수) 21:38:25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 홍산문화의 적석총 형태 무덤에서 용·곰등 다양한 동물 문양 옥기가 출퇴됐다. 이는 동물을 숭배했던 토뎀 문화를 반영한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새모양 옥기, 2. 봉황모양 옥기, 3. 구름모양 옥기, 4. C자형 옥룡, 4. 곰모양 옥웅룡

중국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꽃피운 신석기시대 원시문화의 중심에 홍산문화가 있다. 홍산문화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대략 5000~6000년 전으로 유물의 특징은 주로 옥기(玉器)를 꼽을 수 있다.
 광역의 의미로 8000년전 흥륭와 문화도 홍산문화의 범주에 넣고 보면 중국학계의 표현대로 홍산문화는 '중화의 서광'이요 인류문명의 시원지라 할 수 있다. 이때 이미 무덤에서 정교한 옥제품이 출토되고 있다.

#6~7등급의 계급사회로 추정
옥기는 적석총에서 많이 출토 되었다. 이들 적석총에 매장된 옥기는 수량이 많고 품질이 뛰어난 재료를 사용해 묘주인이 귀한 신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장품의 정도에 따라 신분계층을 유추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출토된 옥제품 유물로 보아 6~7등급 정도 구분되고 있다. 이미 이 시대에 씨족구성원들의 신분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어 짐작컨대 이미 홍산문화는 계급사회를 이루어 국가체제로 접어들 무렵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산 정상에서 발견된 대형묘의 주인은 손에 옥거북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아마도 주인공은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임을 추측하게 한다. 여기서 옥은 제사장이 신에게 헌납하는 예물이라 할 수 있다. 제사장은 신과 소통을 통해 옥을 독점하고 옥을 통해 스스로 신적 존재임을 각인시켰을 것이다. 제사장·천신·옥은 고귀한 일체의 관계로 원시사회의 존엄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 자연석을 네모로 깍아 정연하게 쌓은 홍산문화의 전형적인 적석총. 이런 형태의 무덤에서 옥기가 수없이 발굴되었다.

#생활장식품부터 신앙적 의미 신물까지
홍산문화의 대표적 유적지인 요령성 건평현의 우하량 무덤에서 다량의 옥제품이 출토되어 중국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부장품이 있는 31기의 무덤 중 옥기를 수장한 무덤이 26기에 달했다. 부장품 무덤의 80%가 옥기를 수장했다. 우하량 무덤의 부장품들은 모두가 옥기에 속하고 옥 이외의 부장품은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이 우하량 문화유적이 지닌 특징이라 하겠다. 그래서 중국학자들이 이 지역에 대해서만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진입한 충간에 옥기시대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옥은 장신구나 제사용기에 많이 쓰이는 진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보석으로 하늘의 자연색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며 천신의 맑고 신성한 마음을 상징한다. 옥을 수장한 것은 옥이 신과 교감하며 천신과 소통하려는 홍산문화 주인공들의 정신세계의 표상이라 하겠다.
 주요 기종은 용머리 장식, 옥제거북이, 옥으로 만든 신상, 옥제 새, 팔찌, 귀걸이, 구름모양 옥제 패색, 인체의 형상, 곡옥형 옥제품, 곤충모양 등 종류가 다양한데 소형은 거의 치레걸이로 줄을 달 수 있게 구멍이 나 있다. 이 가운데도 주목을 받고 있는 옥제품은 용의 형상과 새모양, 곰모양의 옥웅룡이다. 이때부터 용의 형상을 창안해 용을 신성시한 신앙의식 사상이 구현된 것을 알 수 있다. 1971년 적봉시 북부의 옹무특기에서 발견된 'C'자형 옥으로 만든 용의 형상물은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으로 불리우면서 홍산문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곰·새 등 동이족과 깊은 연관성 가져
이들 무덤에서 새모양의 옥기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새를 토템으로 삼았던 동이족의 보편적 풍속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봉황모양도 발굴 되었는데 용봉 토템은 동아시아의 독특한 음양(陰陽)문화의 뿌리라 하겠다. 또 곰 모양과 용모양을 혼합한 옥웅룡(玉熊龍)이 다수 발견되어 곰을 신성시한 홍산인들의 토템을 짐작할 수 있다. 옥웅룡은 죽은자의 가슴부위에 놓여 있었는데, 주인공은 이것을 목에 걸고 신성한 의식을 치른 것으로 여겨진다.
 옥웅룡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하나의 신물(神物)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홍산인들의 여신(女神)과 더불어 곰을 숭배하는 곰 토템족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홍산문화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신석기인의 곰 숭배 문화는 퉁구스족이 가져온 2~3만년전 고 아시아족의 것으로, 우리민족과는 뿌리부터 곰 토템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홍산인들은 사소한 치레걸이에서부터 신성시한 신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옥제품으로 일관해 왔다. 옥은 홍산인들의 절대적 필수품이었다. 부장품으로 나타나는 옥제품은 살아 있을 때의 애장품이오 고귀한 신물이었다. 이러한 신물의 재료인 옥석(玉石)은 어디서 조달한 것일까?

   
▲ 우하량 적석총에서 8000년전의 옥기가 출토되어 학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허리부분에 옥웅룡, 머리부분에 머리장식 옥이 보인다.

 

#400여㎞ 떨어진 압록강유역 수암옥
홍산문화의 중심지인 중국 내몽고 자치구 적봉에는 옥산지가 없다. 중국학자들의 추적연구결과 홍산문화의 소산인 적석총에서 출토된 옥기는 거의 압록강 하류부근인 수암지역에서 생산된 수암옥으로 밝혀졌다. 적봉에서 남쪽으로 450km가량 떨어진 지역이다. 이곳 수암까지 홍산문화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데 홍산인들은 옥석을 구하기 위해 천리길을 마다 하지 않았다. 홍산문화의 옥 종류로 청옥, 홍옥, 황옥, 백옥등 갖가지 옥을 용도와 모양에 따라 다양하게 가공했는데 옥가공술은 현대인도 혀를 내두를 만큼 빼어난 옥제품을 남겼다. 현대의 기계로도 가공하기 힘든 장식품과 신물을 당시 석기로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깨고 쪼고 다듬고 문지르며 하나의 옥기를 생산하는데 수개월, 수년이 걸렸을 것이다. 현대의 정밀한 도구로도 뚫기 힘든 세밀한 구멍을 비롯한 조형을 만드는데는 특별한 옥제품 생산가공의 집단이 있었을 것이다. 숙련된 장인이 아니고는 세련된 옥기를 다듬기 어렵다. 그들이 다듬은 옥기는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 신이 남긴 조형물처럼 여겨진다.
 홍산인들에게 옥은 신과 소통하는, 신에게 바치는 예물이었을 것이다. 옥과 천신을 대등하게 여기고 옥을 숭앙하며 천신에게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옥, 그것은 홍산인들의 영물(靈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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