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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심층 심리학, 실험 심리학, 발달 심리학, 사회 심리학 등 그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서로 다른 이론에서 한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의 적이다." 라는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허무맹랑한 소리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것이 더 좋은 것의 발판이라던가 친구지 어떻게 적이 될 수 있는가. 과장된 표현이든가 '튀려는' 소리이겠지 여겼던 것인데 그것에 관한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한 사람이지 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자신의 선한 점·좋은 점을 추구하며 좋지 못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며 지양하여서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사실 사회에서 적응할 수 없는 자가 되거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될 것이다.
 특히 성인이 되기 전에는 이런 건전한 발달 단계를 거쳐 강한 자아로 키워내지 않으면, 그 후 자신에게 불어닥칠 여러 도전에서 자신을 지켜내고 또 가능성을 이끌어 자기실현을 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우월한 기능을 이끌어올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인정받으며 단체 속 한 개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한 개인의 발전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좋다는 것이 무엇인가. 또한 우월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인을 지나서 중년에 이르면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우월한 것이라도 그것은 하나의 '기능'이지 그것이 자신의 전체가 아니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의 좋은 것이며 이런 차이가 자각된 것이 좋은 것이지 그냥 '맹목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집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결코 좋은 것만 있지는 않다. 그것은 자신 안에서 봐도 그렇다. 자신의 우월한 점은 그것이 '일방적'일 때는 생명력이 없어진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기능은 자신이 그것을 덜 사용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곳에는 자율적 움직임과 함께 생명력이 있을 수 있다. 우월기능의 보완·보상·균형자로서 작용할 수 있으며 깊은 깨달음도 열등기능을 통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을 통하여 전체를 보게 되며 좁은 의식을 뛰어넘게 되기 때문이다. 열등기능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다시 찾게 된다고 할까.
 편안한 삶·좋은 음식 그리고 보장된 것들을 생각해 보자.  그런 것들이 계속 제공된다면 사람은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쇼펜하우어는 고통은 적극적이고 쾌락은 소극적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육체의 건강은 잘 느끼지 못하나 병이 나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직접적으로 명료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을  편안한 삶은 결국 자각할 수 없으며 고통을 느껴서야 자신이 누렸던 행복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고통이 인생에 꼭 필요한 점이라는 것을 배의 밸러스트 비유를 통해서도 강조하는데 고통이 우리를 무섭게 가라앉게 하지만 모래주머니처럼 풍랑에 마구 흔들리지 않게 하여 정해진 항로를 항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항시 겪고 있는 이 끊임없는 고통을 아무런 목적도 없는 단순히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하나 하나의 불행은 각기 예외적인 사건처럼 보이나 일반적으로 불행은 원칙적인 것이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좋은 것에 취해서, 안락함에 젖어서 인위적이며 '자아 중심적인' 세계를 '자기 본연'의 세계라고 착각하고 산다. 사실 이런 착각은 우리가 깊이 갈등하는 다른 한 쪽을 멀리하며 한쪽에서만 살고 있을 때 잘 일어나는 것 같다.
 삶만 쳐다보고 죽음을 보지 않으면 삶이 부실해진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할 수 있게 하는 미움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깨끗함도 역시 더러움의 깨끗함이다. 아니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깨끗함 그 자체는 없다.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아는 것이 깨끗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실현'이란 이런 것들의 갈등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좋은 것들·생명·깨끗함·사랑 이런 것은 그것의 짝인 죽음·더러움·미움과 같은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인 자기실현에는 적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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