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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좌장의 복귀'라는 이야기를 들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을 두고 우파언론들이 앞 다투어 '보수의 재집결'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무성 스스로도 자신의 불출마에 대해 "보수우파의 재집권을 위한 선택"임을 분명히 했다. 스스로 보수라는 이름표를 내린 새누리당이 보수우파의 재집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언뜻 모순 같아 보이지만 정치판은 엄연히 보수와 진보의 맞대결로 판이 짜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것은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적 프레임이다. 문제는 대결의 방식과 양상에 있다. 이른바 정치 선진국일수록 보수와 진보는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한 다음 선거에 임하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 51%의 룰에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나 승복하는 자세를 두고 '아름다운 패배'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일은 스스로의 정치적 소신에 자신이 있고 정체성이 확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보수가 보수다워야 하고 진보가 진보다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거가 코앞에 왔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300석의 의석수를 어떻게 황금분할 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다. 이념과 정책이 다르고 구성원의 정치적 성향과 지향점이 다른 이들도 쉽게 야합의 밀실로 손을 잡고 들어간다. 경선룰의 불공정성을 이야기하고 부정시비에 휘말리면서도 뒤돌아 애써 손을 들어주고 비굴한 미소를 보내는 이유도 결국 의석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정치판에서 보수와 진보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에 정치적 소신은 플랜카드에 걸린 구호일 뿐, 사실은 금배지의 개수에 목을 맬 뿐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보수 광풍은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바로 매카시즘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인 1950년 2월, 미국 위스콘신주 공화당 상원의원인 매카시는 "내 손엔 미국 국무부와 정부에 침투한 205명의 좌익분자 명단이 있다"고 폭로했다. 매카시가 던진 이 한마디는 삽시간에 미국 사회를 반공산주의 바람을 불렀고 그 바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광풍으로 번졌다. 매카시가 외친 용공색출은 어쩌면 그 외침이 번져 빨갛게 달아오른 적들이 가능한 얼굴까지 붉힐 때, 대중은 자신에게 빨갱이를 처단할 전가의 보도를 쥐어준다는 믿음이 있었을지 모른다. 

 해방직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의 그물망에 스스로를 가둔 우리 지식인들은 제대로 된 이념투쟁을 겪어보지 못한 채 한국전쟁을 맞았다. 이념의 현실적 대입이나 앞선 경험집단의 실체를 우리식으로 재구성해 보는 이념의 체계화를 거치지 못한 대립은 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주먹질과 암살, 비난과 야유라는 시정잡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같은 경험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세력이 오늘의 진보세력이다. 우리 정치판에서 진보세력은 과거 해방전후의 죄익세력이 보여준 선동적이고 투쟁적인 기질에다 30여 년 동안이나 이어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실전경험까지 쌓았다. 투쟁의 시대는 끝났지만 전투력으로 전신을 무장한 진보는 10년간의 집권신화까지 썼다. 한번 맛본 권력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 중독의 양분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이번 4월 총선이고 그 승리를 기반으로 올겨울, 재집권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러니 목적을 위한 수단은 어떤 것이든 수용할 수 있다. 보수정권의 씨앗만 아니라면 어떤 집단 어떤 세력과도 두 손 맞잡고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런 진보와 맞붙은 보수우파 세력의 현주소는 어떤가. 지금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사실 한나라당의 역사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하기에 낯이 뜨겁다. 흔히 보수를 두고 도덕성과 준법성, 안정성을 기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출발부터 보수의 가치기준을 바꿔놓았다. 이른바 '강부자 내각'부터 '고소영 정권'까지 도덕성보다 능력이 우선되는 가치로 보수를 인테리어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보수는 모태보수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형 보수로 놀림감이 되고 전투력에 유연성까지 갖춘 진보의 뭇매를 맞는 처지로 전락했다.

 문제는 그런 식의 보수라면 보수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보세력을 향해 매카시의 망령이 든 것처럼 종북좌파를 이야기하고, 국가안보를 정정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정적 길들이기에 이용하는 수준으로는 진보세력과 한판승부는 어렵다.
 제대로 된 보수를 위해 보수를 전면 보수하고 무대에 나서야 보수의 이름으로 깃발 한번 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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