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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을 치르고 난 뒤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혹은 같은 시기를 보낸 자녀를 둔 부모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잠깐이라도 독립된 생활을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중고등학생이 되면 기숙학교란 곳에 들어가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아직 우리 한국에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진 부모 품을 못 벗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나의 학창시절만 해도 수학여행을 제외하곤 집 밖에서 잠을 잔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여학생들의 경우엔 이런 제약이 더 심했다.


 과잉보호는 곧 억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특히 사춘기 때 가출을 경험했다고 하는 또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대한 반항심으로 어긋난 경우가 많이 있었다. 반대로 부모가 너무 무관심해도 문제가 생긴다. 이런 현상은 요즘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청소년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느 해 여름, 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웃집 아이가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한다며 들뜬 모습으로 집을 나서는 걸 본 적이 있다. 2학년이나 3학년 쯤 되었을까, 아이는 집 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모습이었는데 배웅하는 엄마는 그게 아니었다. 잘 땐 꼭 모기약을 발라라, 이불은 반드시 덮고 자야 한다 등등 바로 코 앞인 학교에서 그것도 1박 2일 야영을 한다는데 온갖 주의사항이 끝이 없었다. 어찌보면 정작 당사자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부모 혼자서 못 미더워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놀라운 건 아이의 반응이었다.


 "됐어요, 엄만 내가 어린앤 줄 아세요?"
 초등학생 꼬마치곤 당돌하게 받아치는 모습이 여간 의젓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이는 씩씩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른 집에선 역시 1박 2일 야영을 하고 돌아온 아이가 엄마를 원망하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아이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야영 가방을 팽개치며 큰소리로 짜증을 냈다. 나중에 까닭을 알고보니 별 이유도 없었다.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보냈더니 저러네요. 애가 워낙 예민해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데다 집 떠나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니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사정을 듣고보니 부모로서 걱정이 될만도 했다. 물론 이런 경우 자라면서 달라지긴 하겠지만 고학년이 되어서도 부모 곁을 떠나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부모란 자식이 성장하는 걸 지켜봐주는 후원자일 뿐,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대리인이 아니다. 청소년 기에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남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낸다는 건 분명 불편한 일이다. 집에 있으면 식사며 잠자리며 엄마가 만능 자판기처럼 척척 처리해주던 일들을 혼자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독립된 생활을 몇 차례 경험해보면 의외로 엄청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이젠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뿌듯한 자의식이 세상에 대한 도전의식을 일깨워주는 걸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되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 중·고등학생 시절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캠핑도 권할 만하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모험을 즐겨보도록 권하고 싶다. 혼자서 목적지를 정하고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하루 종일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 그리고 잠은 어디서 잘 것인지를 선택하고 그 결정에 따라 움직여 보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자신이 한뼘 더 성장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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