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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아름다운 서재]14.김반석 화가
인생 2막 가꿔온 보금자리이자 지식 재창조 공간
2012년 11월 22일 (목) 21:43:11 김주영 uskjy@ulsanpress.net

20일 오전 울산에서 활동하는 글그림작가 김반석 화가를 만나기 위해 울주 두동의 한적한 산골마을을 찾았다. 당일 기사마감에 쫓기던 터라 생각보다 먼 거리에 있는 갤러리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가을의 늦자락, 단풍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산과 청명한 하늘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감걱정은 어느덧 씻은듯이 사라졌다. 이 아름다운 배경속에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반석 갤러리. 이곳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김반석 화가가 지난 10년간 화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가꿔온 보금자리이자 그동안의 책과 인생 얘기를 들려줄 서재였다.

부산상고 졸업 후 은행원으로 30년 근무
10년전부터 전업화가로 울산서 전원생활
미술 교육 없이도 독서로 예술관 확립
언어 시각화한 독창 화법 '글그림' 선봬



   
▲ 반석갤러리에 마련된 김반석 화가의 서재 '득화소(得畵所)'는 말그대로 그림을 얻는 공간이다. 10년전 이곳에서 '글그림'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화가에게 이곳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독서를 통해 그림의 이론적 바탕을 형성한 자양분이 된 공간이다.

 

# 철재 난로 속 따뜻한 군고구마처럼 정이 넘치는
먼저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한 뒤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기 위해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선 뜻밖에 반가운 물건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 20년 전쯤, 초등학교 반마다 있었던 기다랗고 검은 철제 난로가 그것이었다. 주둥이를 창밖으로 꺼낸 채 따뜻한 열기를 피워올리고 있던 난로에서 작가는 "기자님 오면 주려고 준비해뒀다"며 군고구마를 꺼내 손수 껍질까지 까서 건넸다. 이처럼 인자한 작가가 꺼내준 김이 모락한 군고구마를 먹으며 듣는 책과 그림 얘기는 도통 시간이 가는줄을 모르게 했다.

김반석 화가는 본래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제일은행에 취업해 30여년간 은행일을 한 뒤 10년전쯤 이곳에 내려와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것은 이쯤이었지만 사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이미 회사를 다닐 때부터였다. 주말마다 일요화가회 등의 활동을 통해 꾸준히 그림을 그렸던것. 그림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4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한-불 어린이 미술교류전에 반에서 총명했던 그가 학년 대표로 출전하게 된 것. 당시 담임선생님에게 특별 미술과외를 받았던 것을 계기로 그는 중고등학생 때도 미술반활동을 하며 꾸준히 미술을 접했다. 그렇지만 비전공자 입장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그는 화가로서 '글그림'이라는 독특한 양식의 그림을 독자적으로 그려온 데 자양분이 돼준 것은 순전히 '독서'의 영향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 미술서·고전·철학 곱씹어 읽어
예술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누구의 확신도 불가능한, 오로지 자신의 직관 등에 의존하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삶을 살기 마련이다. 더욱이 비전공자 입장에서 '글그림'이란 새 장르를 개척한 작가의 경우 그 불확실성은 얼마나 컸을까. 한글 글자가 곧 그림이 되는 그의 글그림은 '언어의 시각화'과정을 통해 태어난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황소'는 황소란 글씨를 이용해 실제 성난 황소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유명한 작품'눈코입귀' 역시 부처의 얼굴이 연상되는 얼굴 속에 이들 글자를 활용한 눈코입귀를 담아냈다.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기법이다보니 그의 작품을 단순히 재밌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 속내에는 한글을 우리 정신문화의 표상이라고 보는 작가의 깊은 마음이 깔려 있다. 글그림엔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잃고 서양문화에 맹목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요즘 세태에 대한 비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미술을 비롯한 예술분야와 철학, 인문서 등을 통해 얻은 지식은 예술관과 작품의 방향설정 등에 주효한 보탬이 됐다.

가령 그는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미술에 관한 용어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미술용어사전을 읽다 그 속에서 나이브 아트, 랭귀지 앤 아트라는 단어의 정의를 보고 "아, 내가 하는 미술이 바로 나이브 아트이고 내가하고 있는 글 그림이 어쩌면 1930년대 영국에서 시작될 뻔한 언어를 예술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나이브 아트란 토속적인 지역예술과는 차별되는 말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화단과도 별 관계없이 이른바 문명적인 세련된 기교와도 담을 쌓은 채, 기교 이전의 순수한 즐거움과 충동적 본능으로 그림을 그린 이들을 말한다. 지금 자신을 나이브 아트작가의 범주에 넣는 그는 앞으로 울산에서도 이런 이들이 많아지면 보다 다양한 색체가 어우러지는 예술계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실제 그의 서재에는 본 책 역시 근본적으로 미술이나 예술, 미학을 다룬 미술서관련 책이 많았다. 그 중 한국미술사, 미술가로 살아가기, 미학적 명상 등은 몇번씩 곱씹으며 읽은 책이라고 했다. 또 인간, 또 인간간의 관계를 다루는 철학서나 역사서, 인문고전류 등도 다양했다. 조선왕조실록, 독일문학,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등이 눈에 띄었다. 특이했던 것은 그 역시 허영란 교수 등 이전에 만났던 다른 이들처럼 자기계발서는 전혀 읽지 않는다고 한 점이다. 그는 남과 견주어서 지지않기 위해 최근 젊은 이들이 너도나도 하는'계발','스펙쌓기'등은 실제 자신의 인생의 그리 큰 '계발'은 되지 않으므로 젊은이들이 좀 더 진정한 자신과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고전이나 철학서, 인문서 등을 읽길 바란다고 했다.
 
# "독서는 내 생각을 깨닫는 행위"
이처럼 독서란 요즘 많은 이들이 행하고 있는 '단순한 지식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책을 읽어감으로써 스스로의 '내면의 얘기를 듣는 일'이라고 정의하는 김 작가. 그는 독서는 곧 '내 생각을 깨닫는 행위'라고 했는데 흔히 능동적인 독서라고도 표현되는 이 얘기는 실로 가슴에 와닿았다. 결국 독서란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내 생각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스스로를 아는 시간이자 그것이 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이유로 특정 정보를 알려주는 책보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책 혹은 질문거리를 남겨두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또 그런 과정은 결코 한번 읽어서는 이뤄지지 않는만큼 적어도 재독을 권했다. 그는 양서의 경우 실제 5번까지는 읽는다고 했다.

실제 그의 작업실에서 그가 꺼내 보여준 빛바랜 책들의 첫 장에는 그가 연필로 기록한 년도와 날짜, 책을 읽은 횟수가 표시돼 있었다. 작가는 독서를 통해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흡수하고 그것을 붕어빵처럼 똑같이 재생산하는 요즘의 일부 지식인들이나 그들에게서 교육받은 현대인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큰 붕어빵, 작은 붕어빵의 모습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자신의 철학, 자신의 가치관이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읽고 충분히 고민하고 또 시간을 갖고 사색하는 과정은 필수인듯 하다고 했다.

물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 할 양서를 여러차례 읽으라는 얘기는 조금 맞지 않는 독서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온 지금,  더중요한 것은 오히려 지식을 체득화해 내 방식대로 그것을 재구성하거나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10년간 글그림이라는 상대와 아둥바둥 씨름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룩한 한 작가는 그 자신의 삶과 실천을 통해 그것이 훨씬 중요함을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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