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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웅난변(雌雄難辨).' 까마귀의 암수는 분간하기 어렵다는 말로 <시경>'소아'편에 나온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쉽지 않다는 비유로 흔히 쓰는 표현이다.


 이곡, 정약용, 이덕무 등 많은 옛 지식인들은 이 말을 빌려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우기는 혼탁한 세태를 일갈했다. 한문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도 일침(一針)을 가한다.


 "다들 저밖에 적임자가 없다하고 자기만이 해낼 수 있다 하나, 과연 누가 실상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선거 때만 되면 검증할 수 없는 의혹이 난무하고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린다. 정책대결은 간 데 없고, 흥신소 수준의 의혹 부풀리기만 횡행한다. 봐 주기가 민망하다. 그 틈에 훼예(毁譽)를 헝클고, 시비를 뒤집자는 속셈이다"


 어지러운 세상, 옛 성현의 지혜가 그리운 이때 <일침>은 반가운 책이다. 정민 교수는 옛것을 빌려 오늘을 말한다. 그는 고전에서 시대정신을 길어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웅숭 깊은 성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까지 사유의 폭을 넓혔다.


 책 속엔 추사 김정희의 일화도 있다.
 추사는 좀처럼 남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남이 한 것은 헐고, 제 것만 최고로 쳤다는 것이다.


아집과 독선에 찬 언행으로 남에게 많은 상처를 입힌 추사의 단골 카드는 "내가 중국에 갔을 때 실물을 봤는데"라는 말이라고 지적한 이는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이다. 그 한마디면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추사가 북청 유배에서 풀려 강원도 지역을 지날 때, 옥수수밭에 둘린 초가의 마루에 늙은 부부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추사는 묻고 노인은 답한다. "올해 몇이우?" "일흔입지요" "서울은 가봤소?" "웬걸 입쇼, 관청에도 못 가봤는데요" "그래 뭘 먹고 사시오?" "옥수수 먹고 삽니다" 추사는 순간 마음이 아스라해졌다. 그래서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남북을 부평처럼 떠돌고 비바람에 휘날렸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몰래 망연자실해졌다"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는 옛 선비들의 시구는 비록 네 글자밖에 안되는 한자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촌철살인의 일침이요, 간명한 통찰이다.


 100개의 글이 '마음의 표정' '공부의 칼끝' '진창의 탄식' '통치의 묘방' 등 네 갈래로 묶였다. 정 교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차츰 사물과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추기급물(推己及物)의 순서를 의식했다"고 설명한다. 글 제목은 모두 사자성어다. 단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수천년에 걸쳐 응축된 세상의 이치가 담긴 생각의 진수이자 사유의 결정체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오히려 간명한 통찰이 필요한 때 아닌가. 간결한 문장에 담아낸 깊이있는 사유가 정수리에 침을 놓은 것처럼 달아났던 마음을 돌려세운다. 그는 "고작 네 글자로 문화의 담론을 이끌어내는 지적 전통 속에 내가 속한 것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작은 소통의 길을 내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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