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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법이 새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취임 일주일 만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안색이 어둡다. 박근혜 정부의 야심작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름도 얻지 못한채 장관후보자가 보따리를 쌌다.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정치를 질책하는 대통령의 목소리는 분노마저 깔려 있다. 언론은 대통령의 담화에서 절박함과 단호함을 읽었고 야당은 위협을 읽었다. 측근들은 담화가 끝나자 "오늘 같은 격앙된 말투와 표정은 없었다"며 입을 다물었다. 국민들은 어땠을까. 취임과 함께 의욕적인 모습을 기대한 국민들은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대통령이 어찌할 수 없는 오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필자는 대통령의 굳은 얼굴에서 두 가지 분노를 읽었다. 하나는 정치권에 대한 답답함이고 나머지는 보따리를 싸버린 김종훈 후보자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원칙주의'에 입각한 박근혜식 정치로 보면 지금의 정치상황은 극단적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세력이 승리한 세력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일정기간 비난을 자제해 주는 것은 승리한 쪽의 기대감이다. 대체로 선거 가 끝나면 승리한 측에 박수를 보내고 일정기간 비난전을 자제하는 '관행'이 묵시적으로 교감했다. 하지만 이같은 희망이 전달되기에는 야당의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승리의 기대치를 놓치지 않았던 야당이었기에 후유증도 그만큼 컸다. 한쪽에선 '친노 대청소'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안철수 신당설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판에 허니문은 오래된 농담 수준이다. 내부가 불안하니 밖으로 향한 목소리는 거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 사정이야 대통령이 읽지 못했을 리가 없다. 문제는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18년 정치 현장에서 이력이 나도록 보아온 정치판의 행태를 제대로 읽었다면 정색을 하고 단호한 어법으로 이야기를 한들 돌아올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고 본다. 대통령의 행동은 고도의 정치행위다. 진돗개 한 마리에 이름을 지어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치적 행위로 읽히는 것이 대통령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행동은 치밀한 계산법이 깔려 있어야 한다. 김종훈이 보따리를 싸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여야의 절충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국민 앞에 서서 야당을 꾸짖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좀 더 기다리고 싶었겠지만 참을 수 없게 한 인사가 바로 김종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 정부를 꾸리면서 언제나 제일 앞에 세운 것이 '창조경제'였다. 그 창조 경제의 구심점이 바로 미래창조과학부 아닌가.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립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야심작이기에 장관 후보자의 '미국행'은 충격이었다. 김종훈이 누군가. 그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 400대 부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위인이며, 미국인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다시 '조국을 위해' 한국인이 되겠다고 돌아온 사람이다.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에게는 쓴소리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삼고초려한 김종훈은 자수성가에 미래비전까지 갖춘 인재였다. 그를 사용해 경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전 산업 분야에 창조경제의 신상품을 접목시키려한 박근혜식 비전이 꺾인 셈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박근혜식 창조경제는 첫출발부터 흔들렸다. 정치가 발목을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큰 문제는 삼고초려한 인물의 처신이다. 한국정치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기 싫었다는 변명은 사내답지 못하다. 한국 정치 수준이 이 정도인 것을 몰랐을 리 없는 그가 정치 수준을 이야기 하면 핑계다. 그래서 그의 처신에 의혹이 고리로 달려 요란한 소리를 낸다. 일각에서는 김종훈 후보자의 돌연 사퇴를 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이유의 저변에는 신상문제가 걸려 있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김 후보자의 국적 포기 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김 후보자가 중앙정보국(CIA)과 일한 적이 있는 정보통신업계 거물인 만큼 미국이 국가기밀 및 두뇌 유출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점을 근거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김 후보자가 미국으로 떠난 저변에는 '울고 있던' 부인의 눈물이 가장 큰 변수가 됐다는 이야기다. 김 후보자의 부인이 처음부터 남편의 미국 국적 포기와 입각을 반대했다는 점에 근거한 이 이야기는  공직에 대한 김 후보자의 중량감을 짐작케 한다. 그는 입각 발표 이후 언론의 파상공세 속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 국적을 포기할 경우 수천억원에 이르는 국적 포기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을 비롯해 미국에 있는 재산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지만 그 보다 조국에 대한 헌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런 그가 '정치수준'을 이야기 하며 보따리를 쌌다. 결국 개인적 상황이 공직을 버리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국행을 결심한 순간, 그가 마주한 것이 조국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 아니라 '금의환향'을 기대한 축하 퍼레이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이유다. 이삿짐이 아니라 여행가방을 쌌기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웠나 하는 아쉬움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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