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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왜성(울산시 문화재자료 제8호) 인근에 공덕비, 불망비 등으로 추정되는 여러 비석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어, 이를 인근 창표당과 연계한 '비림'으로 조성, 지역사의 한 자료이자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로 삼자는 지적이다.
 22일 찾은 울주군 서생면 서생포 왜성 남문 성벽 인근. 5 기의 비석이 풀 숲에 묻히거나 기댄 채로 방치돼 있었다. 특히 그 중 한 기는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 널부러진 모습이었다.

   
▲ 박봉경씨가 7~8기의 비석들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불망비·공덕비 등 울산시 문화재자료
풀에 덮히거나 쓰러진채 두동강까지
왜성 입구 관청샘 인근 7~8기 매립도

# "한데 모아 관광상품화를"
이 비석들은 모두 마모가 심해 온전히 그 내용을 이해하긴 힘들지만 대부분 1840년대~70년대 건립된 것으로 추청되는 불망비(죽은 자의 공덕을 기리고자 세우는는 비석)들이다. 이 중 한 기는 고종 6년 이 지역에 부임했던 관찰사 이근필의 선정비로, 다른 2기는 행첨사 정재린과 이해진의 영세불망비로 추정되지만 모두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

 울산시나 울주군 등 관계당국의 이 곳 일대 비석들에 대한 방치실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성 입구 관청샘 인근에만 해도 이곳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최소 7~8기의 비석이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해지지만 관계 당국은 조사도 한 번 나선적이 없다. 이 곳 일대는 예로부터 임진왜란 당시 많은 의병 및 관군들이 국위를 위해 싸운 전쟁터로, 이들을 기리는 공덕비들이 많아 주민들 사이에선 '비석거리'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인 박봉경(84) 할아버지에 따르면 "관청샘 옆 이곳에 7~8기의 비석이 또 그 옆엔 최소 1기의 비석이 있는 것으로 옛날부터 주민들은 알고 있는데 꺼내려는 노력이 없어 내 스스로 정과 망치를 들고 해보기까지 했다"며 "아무리 문화재적 가치가 크건 적건 나라를 위한 일들을 한 사람에 대한 대우가 이렇게 낮아도 되는가"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또 인근 사유지에는 현재 암행어사 유석으로 추정되는 청덕비 역시 그대로 방치돼 있는 형편이다.

# 울주군"첨 듣는 애기"
이에 향토사학계에서는 이들 비석들이 비록 문화재적 가치가 크진 않더라도 지역의 한 역사로서 '비림' 등을 조성해 서생포 왜성의 또다른 볼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향토사학 연구자는 "최근 중구만 해도 동헌 인근의 비석들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지역 유산을 보존관리 할 뿐 아니라 동헌 앞의 한 볼거리로 조성했다"며 "동네의 특성상 비석이 많은 이곳 실정을 살려 콘텐츠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생포 왜성 문화유산해설사의 집에서 근무중이던 전옥련 문화관광해설사는 "'비림'이 빛을 발하려면 시와 울주군이 조성예정인 창표당(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56위의 의병 위폐를 모시고 추모제를 지낸 제당)을 함께 연계해 관광 및 교육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우던 순국열사들의 뜻을 기리는 장소이자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울주군의 한 관계자는 "이 일대에 비석들이 이런 상태로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며 "문화재의 보존 관리는 우선 그 문화재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확인됐을 때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만큼 시 관계당국과 상의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필요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답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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