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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 명절인 설과 추석이 되면 필자 가족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울산공원묘원으로 간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태어날 때 자신을 지켜봐 준 부모님을 위해 그 자식들은 임종(臨終)을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는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자식도 종종 있다. 임종을 직접 보지 못한 자식은 오랜 시간 부모님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불효자(不孝子)란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1984년에 필자는 군복무 중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귀대해서 소대원들과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데 위병소에서 누가 찾는다고 해서 가 보니 친구가 면회를 와 있었다. 평일에, 그것도 늦은 오후에 불시에 찾아온 친구는 짧은 말을 했다.
 "봉대야, 갑자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당황하자 그 친구는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러나 필자는 온 몸에 힘이 빠져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의 부고(訃告)를 알리는 등기가 도착했다. 정신없이 신고를 하고 부대를 나와 다음날 아침에야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은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이미 하관(下棺)이 끝나 친척들은 돌아간 뒤였다.
 필자는 아버지가 묻힌 울산공원묘지로 가서 절을 하고, 졸지에 임종과 하관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아들이 되었다. 그렇게 필자와 울산공원묘원은 만나게 되었다. 
 

 울산공원묘원은 1978년 개원을 했는데, 당초에는 몇 백기인 묘지가 지금은 13,000기가 넘었다. 필자가 처음 본 묘원과 지금은 그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난다. 주변의 산들이 점점 묘지로 변했다. 
 필자는 지난 해 추석부터 추석전날에 성묘를 하기로 하고 산소를 찾았다. 그것은 명절날 당일에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성묘를 오기 때문에 묘지 인근에는 주차난으로 난장판이 되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벌써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묘지가 많이 새로 생겼기 때문인 것이다.
 

 이번 설에는 형님과 동생과 함께 전 가족이 설 전날 오후에 산소를 찾아가서 성묘를 지냈다. 그날도 많은 분들이 성묘를 하러 왔다. 절을 하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른 묘지의 상석에 처음 보는 딱지가 붙어 있어 무엇인가 궁금해서 보니 '관리비 납부독촉' 딱지였다. 보기가 좋지 않았다.
 결국 그런 불미스런 일들은 성묘객들의 원성(怨聲)을 사게 되었다.
 동생은 그것을 보고는 "여기에도 관리비란 게 있어요?"라고 묻는다. 형님들이 관리비를 내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었다. 아니, 많은 성묘객들이 관리비를 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관리비는 말 그대로 묘지를 관리하는데 필요한 비용인 것이다. 추석 명절에 묘지마다 벌초를 하는 것, 그리고 명절이나 제사 때 묘지를 찾은 이들이 버리고 가는 그 많은 쓰레기들을 누가 치워 줄까? 그것을 자신들이 못 하니까 결국 관리인들을 고용해 관리비가 필요한 것이다.
 벌초도 각자가 하고, 쓰레기도 버리지 않고 난 뒤 관리비 납부독촉 딱지에 대한 부당성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최근 가금류들에게 발생하는 AI가 발생하여 감염된 가금류들은 땅속에 매몰시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구제역으로 인해 전 국토에 가축들을 매몰시켰다.
 이런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많은 공무원들은 가축을 묻을 땅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국토의 크기는 한정이 되어 있는데 언제까지 가축들을 땅속에 묻어야만 할지, 그에 따른 부작용들을 생각하면 매년 증가하고 있는 옥동 공원묘원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번 설 연휴에는 고인들의 유품을 보관한 납골함이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이제는 묘지보다, 더 나아가서 납골당 보다 자연 속으로 돌려보내는 장례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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