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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의 유머'라는 말이 있다. 별로 웃기지 않거나, 이미 지구를 한 바퀴 쯤 돌았을 철 지난 유머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면 "미스 김이 타는 차가 무언지 아나?" "마티즈? 아니, 모닝인가요?" "땡! 커피라네. 으하하하" 이럴 땐 "부장님의 유머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하고 맞장구를 치며 박장대소를 해주는 게 좋다. 아무리 썰렁한 유머라도 이마에 내천 자를 그리고 무게를 잡고 앉아 부하직원들의 뒤통수를 간질간질하게 하는 것 보다 백 배 나은 법이다.

 유머는 웃음을 유발하고, 웃음은 우리의 긴장을 이완시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옛말에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노(一怒一老)'라고 하였는데, 의학적으로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이다.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면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같은 쾌감 호르몬이 방출되어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음의 문을 닫고 화를 쌓아두면 치료도 어려운 화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언젠가 입술 주위 근육이 마비되어 웃지 못하는 사람에게 수술을 통해 웃음을 찾아주었다는 해외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수술비용이 우리 돈으로 2,000만 원인가 했다던데, 그렇다면 웃음은 적어도 2,00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자주 웃는다면 그만큼 가치 있게 돈을 쓰는 셈이다.

 웃음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터져 나오고 종류도 의외로 많다. 파안대소나 박장대소, 가가대소, 홍소는 박수를 치거나 소리 내어 크게 웃는 것이다. 함박웃음이란 아름다운 우리말 웃음도 있다. 미소나 목소는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이나 눈으로 웃는 웃음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는 담소는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러나 웃음이 모두 좋은 뜻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비웃음인 조소, 쓴 웃음인 고소, 모멸감을 주는 냉소와 같이 부정적인 웃음도 있다. 요즘은 '썩소'라는 신종 웃음도 생겨 감정의 충돌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런데 웃음을 유발하는 여러 상황 가운데서도 유머는 매우 지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이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뭔가 여유가 있고 당당해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이 주유소에서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자 클린턴이 빈정거리며 "당신이 저 친구와 결혼 했다면 주유소 직원의 아내가 되었겠군" 하니, '아니죠. 저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겠죠"라고 맞받아쳤다는 일화는 그 진위를 떠나 힐러리의 당당함에서 나온 유머일 것이다.

 유머는 말 그대로 그저 '웃기는' 유머도 있지만 주변 상황이나 상대방의 심리 등 뭔가를 '알아야' 웃게 되는 고급 유머도 있다. 웃음의 코드도 서로 맞아야 한다. 영어로 된 유머를 들을 때 멀뚱거리게 되는 것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무슨 소린지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동서양의 웃음의 코드가 서로 맞지 않아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유머는 단순히 웃기는 것을 넘어, 권력자를 골려주거나 조롱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기능도 갖는다. 익살이 해학을 낳고 해학은 풍자를 낳는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하루 종일 나사를 조이던 채플린이 공장을 나와서도 나사처럼 동그란 것만 보면 조이려고 달려드는 장면은 웃음과 함께 쓰디 쓴 각성을 요구한다. 이런 경우는 웃음과 눈물 사이를 넘나드는 '블랙 유머'라 할 것이다.

 지구를 이미 열두 바퀴는 돌았을 법한 오래된 유머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다. 만약 부장님이 이 농담을 꺼낸다면 아무리 부장님의 유머라도, 아무리 무릎을 '탁'치는 예스맨이라도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할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집채만 한 코끼리를 대상으로 한 무심한 듯한 대답이 웃음의 포인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기린을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이 고전적인 유머는 여러 가지 패러디를 낳았다. 먼저 학과에 따라, 법학과/오리를 코끼리의 대리인으로 지정하고 오리를 냉장고 안에 넣는다. 식품영양학과/코끼리를 햄으로 가공하여 냉장고에 넣는다. 심리학과/관중들에게 최면을 걸어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갔다고 믿게 한다. 교수/조교에게 시킨다. 조교/석사 1년차에게 시킨다. 그리고 그때그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닭을 고문하여 코끼리라고 자백시킨다. 전직 대통령에게 시킨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에게 시킨다 등등. 이때의 유머는 세태를 풍자하는 가볍지만 절묘한 블랙 유머가 되겠다.

 어느 시대든, 옛날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광야로 쫓아 보내는 속죄양이 필요한 법이니까. 자, 이제 누구에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고 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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