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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무위(無爲)로 읽은 노자는 리더십의 교본을 남겼다. 도덕경이다.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은 도덕경 60장에 나오는 경구다. 직역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생뚱맞게 무슨 생선 굽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노자식 유추법이다. 신라 향가 안민가처럼 백성이 편한 정치를 하려면 군군신신민민(君君臣臣民民)이라 돌직구를 날리는 것보다 에둘러 이야기한 것이지만 생선 굽는 일을 직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게 녹록치 않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익지도 않은 살이 부서져 버리기 십상이고 그냥 놔 뒀다간 등짝이 새까맣게 타버려 먹지도 못하는 모양이 된다. 잘 익을 때까지 가만히 놓아 두는 일, 약팽소선은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쇄신의 책략으로 내놓은 카드는 강골검사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정권의 얼굴마담 격이던 국무총리 자리는 언제나 그만그만한 인사들의 이미지 관리용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라는 의중이 읽힌다. 문제는 아버지 세대의 유산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대로 둔 채 남재준과 김장수를 경질한 점이다. 즉각 반응이 나왔다. 야당은 김기춘 교체 없는 인적 쇄신은 무의미하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비서실장은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인사청문회도 없고 추인도 없다. 잠깐 여론의 동향은 보겠지만 역시 대통령이 쓰고 싶은 사람을 쓸 수 있는 자리는 사실상 비서실장이 유일하다.

비서실장도 인사청문회 대상으로 넣어두지 못한 것이 아쉽겠지만 우리 정부의 시스템상 국무총리보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영향력은 법적 권한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기야 역대 정권에서 비서실장은 고사하고 청와대 수석 완장만 차고 앉아도 정부 부처 장관들을 쥐락펴락했으니 중언부언할 일도 아니다. 비서실과 수석은 말 그대로 대통령과 내각, 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주는 다리다. 다리가 본질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리로 만족하지 못하고 본 도로까지 나서니 하체가 부실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교수신문이 약팽소선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던 일이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신년 인사회에서 "약팽소선은 보수적인 구호 아니냐"고 언급했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을텐데 사족을 달았다. 노 대통령은 "가만 놔두라는 얘기는 대단히 보수적인 구호 아니냐. 올해는 대단히 국민들이 만사가 귀찮으니까 가만 놔두라 이러니까 이대로 가자 이런 뜻인데, 이대로 가도 될는지 모르겠다. 보기에 따라선 대단히 보수적인 구호이고 해서 걱정이다" 정말 걱정인 것은 노자의 경구를 그 정도로 해석하는 치자의 경륜이었지만 감성의 정치에 몰입한 그의 철학은 걱정만 하다가 한해를 보내고 말았다.

노자가 이야기 한 정치는 위자패지 집자실지(爲者敗之, 執者失之)에 스며들어 있다. "하려는 자는 패할 것이며. 가지려는 자는 잃을 것이다." 천하가 돌아가는 것은 불가사의한 그릇과 같아서 사람이 억지로 어찌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잘하려고 애쓰면 실패하기 십상이고, 꽉 잡고 장악하려 하면 천하는 어느새 손아귀가 아닌 밖에서 침을 뱉는게 현실이다. 나라를 다스릴 때도 이와 같아서 사사건건 간섭하지 말고 자율성을 살려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당을 일류국가로 만든 현종은 집권 초반기동안 노자의 정치철학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다. 그의 능력은 사람을 쓰는 방법이었다. 현종은 집권하자 송경을 재상으로 앉혔다. 사심이 없고,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대쪽 재상이었다. 노회한 송경이 물러나자 현종은 한휴를 불렀다. '돌직구'라는 별명을 가질 법한 바른생활 사나이가 한휴였다. 한휴의 직언은 현종을 경계하게 했다. 현종은 연회를 할 때마다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걱정을 하면서 '한휴가 알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아부로 세상을 훔친 간신들은 현종을 향해 "한휴가 재상이 되고 나서 폐하께서 여위셨습니다"라며 한휴를 비방했지만 현종은 "내가 여위어도 천하의 백성은 그 덕분으로 살찐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겠는가"라며 되받아쳤다. 밝은 기운이 살아 있을 동안 현종은 송경이나 한휴같은 인재를 통해 치세를 폈지만 말년에 갈수록 입 안의 혀처럼 구는 간신들에 마음을 주고 말았다. 치자의 반면교사로 좋은 텍스트 감이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투표를 하루 앞두고 사무실을 정리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역할이 모두 끝났고 결과와 상관없이 박근혜 후보에게 어떠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일찌감치 자리를 정리했다는 일화가 있다. '국민검사'라는 닉네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의 등장은 분명 새로운 자극이다. 문제는 앞으로 그에게 부여될 임무는 적폐청산을 위한 특별검사가 아닌 대통령을 보좌하고 직언하는 총리라는 사실이다. 생선이 타지 않게, 가능한 노릇노릇하게 국민의 식탁에 올릴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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