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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초기 부처별 업무보고 자리에서 틈만 나면 지적과 조언을 마다않던 박근혜 대통령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 가운데 압권은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였다. 포장하지 말고 찬찬히 살펴 모자람과 부족함을 살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 악마가 바로 청와대를 에워싸고 있다. 김용준과 안대희에 이어 세 번째다. 개과불린(改過不吝).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다. 치자의 경전인 서경에 나오는 경구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고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경구는 통치철학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되새겨 볼 만한 사자성어다. 서경은 쉽게 잡히는 책이 아니다. 순자(荀子)가 말했듯이 서경은 '정치의 기(紀)'라 할 만한 정법서이지만 오늘의 코드로 보면 리더의 교본과 같은 책이다.

 한참 연배가 적은 기대승과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서신토론을 마다않은 퇴계가 자신의 주장이 옳다며 아집을 부리는 기대승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眞勇 不在於逞氣强說(진용 부재어령기강설), 而在於改過不吝 聞義卽服也(이재어개과불린 문의즉복야). 풀어서 이야기 하면 "진정한 용기는 기세를 부려 억지소리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고 의리를 들으면 즉시 따르는 데 있다." 훗날 주자학의 대가가 된 기대승은 어린 제자를 대등하게 대한 퇴계의 인품에 고개를 숙이고 스승의 충고를 일생의 경구로 삼았다.

 사설이 길었지만 장황한 이야기의 핵심은 과오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온 나라가 문창극이라는 변종 보수골통에 시끄럽다. 궤변에 가까운 말들과 기명 칼럼이 베스트셀러 이상으로 퍼져 있지만 청와대와 여권의 기류는 이상반응이다. 새누리당 쪽의 이상반응을 보면 한사람의 말과 표현이 이렇게 다르게 해석 될 수 있는구나 싶어 국어공부를 다시 해야 할 듯하다. 문창극의 문제 발언에 대한 해명을 보면 그렇다. 문창극은 교회 강연에서 "우리 민족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대해 새누리당이 변론에 나섰다. "이 발언은 후보자가 직접 발언한 내용이 아니라, 윤치호의 발언을 인용했을 뿐인데 마치 후보자가 발언한 것처럼 왜곡한 것"이라고 한다. 또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공짜를 좋아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윤치호의 발언을 먼저 인용한 후 식민지배가 끝나도 분단되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공산화됐을 것인데 하나님이 분단과 6·25 라는 시련을 주셨고, 우리 국민이 이를 잘 극복해 오늘날과 같은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권의 지원사격에 힘을 얻은 문창극은 스스로도 이런 해명을 하고 있다. "강연 같은 것을 오늘 하루 종일 검토했다. 그랬더니 전체 맥락으로 그런게 아니다"라며 "우리나라가 시련과 고난을 견디고 이렇게 살기좋은 부한 나라가 됐다, 그런 고난의 의미를 강조했는데 (보도에는) 그런 의미가 강조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문창극의 서울대 강의도 문제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우리 힘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감쌀 수 있어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됐다. 당장 위안부 할머니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인식, 이런 역사관을 가진 자를 국무총리로 앉힌다면 어떻게 일본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며 탄식하고 있다.

 사실 문창극류의 인식을 가진 대한민국 지식인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 생각의 저변에 우리가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고 큰소리치는 자들이다. 우월하니 사과도 필요 없고 배상도 필요 없다는 논리다. 언뜻 통큰 역사인식이라 보이지만 까놓고 보면 허당이다. 과거에 대한 명확한 선긋기는 미래를 위한 기본적인 교통정리다. 미화하고 덮어버린 역사는 또 다른 왜곡의 역사로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친일의 역사, 종북좌파식 역사인식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기에 근대사의 비극과 오늘의 이념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문창극 정도의 수준이라면 일본 우익의 애완견쯤으로 불리는 오선화류의 역사인식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의 개인적 성향이 아니다. 청와대가 미처 그의 강연을 못 챙겼을 수도 있다. 한둘이 아닌 그의 발언이 세상에 공개될 줄도 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시점까지 드러난 그의 과거 행적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일은 일본의 극우주의자나 정치인들의 사고에 손을 드는 격이다. 두번의 인사참사가 있었는데 또 거둬들이려니 체면이 안 설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인사문제에 관해선 체면 운운할 입장은 아니다. 여기서 더 나가는게 문제다. 인정하고 접는 것이 망신을 넘어 참극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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