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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곧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물론 작품이 항상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의 고민과 인내는 화면상의 문제를 해결시키는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음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는 한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있어 그림의 완성은 곧 인격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작품에는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삶과 작업의 과제'이다.

 그 과제로 한국회화에 있어서 오늘날에는 그 전통의 맥락을 잃고 다른 장르에 흡수되고 만 조선민화 책가도를 오늘날의 현대 민화로 되살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이는 내 작품이 조선민화의 영향을 받은 후, 그것은 조선민화의 재생으로서도, 스스로의 회화로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없게 되어버린 데 있다. 동시에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화 화단에서 문제시 됐던 한국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라영 作 'Landscape' (한지에 호분, 암채, 먹, 160×130㎝, 2010).

 지금까지 한국화의 실험이 행했던 열정적 의욕에 의거하는 대담한 파괴와 실험, 서양미술의 과감한 흡수에 대한 일정의 평가는 이루어질 수 있지만, 한국화의 전통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이 문제가 곧 자작의 정체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오랜 일본유학 생활 중에 스스로 실감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은 항상 과거가 토대가 될 때만이 의미가 있으며, 전통이 철저히 극복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등장한 새로운 것이 새로운 전통의 창조로 이어져 가며 그렇지 않은 것은 결국 정체성을 혼란시킬 뿐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조선민화를 현대회화와 연결하는 작업 중 두 번째 연구작인 'Landscape'는 큰 맥락으로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제시해 준 그림이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 책가도의 신비로운 매력에 사로잡혀, 그 조형원리를 환골탈태한 것이다. 복수의 시점으로부터 표현된 이미지의 중첩 속에 모티브와 모티브, 색과 색, 구상과 추상과의 관계를 자유롭게 만들어 내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고, 그 원점이 책가도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러가지 것들이 미묘하게 다른 몇 가지 종류의 흰색과 검은색이 겹쳐지면서 나타나고, 또 동시에 지워지면서 화면 속 관계는 복잡해져 간다. 그것들은 그 자체인 동시에, 때로는 더욱 깊숙히 들여다보기 위한 창이 되고, 형태를 잃은 색면이 되며, 다시금 중첩의 저너머로 사라져간다. 그것들이 펼쳐내는 공간에 인상적인 블루와 옐로우가 한층 더 화면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자신의 작업실과 동네이며 자신이 생활하는 일상의 세계, 여기에 표현되어진 것은 그 세계와 나와의 관계다. 다시 말해 '사람과 세계와의 융합법'이다. '나'와 '바깥세계'와의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는 감각은 한국인들에게 전통적인 것이다. 극히 현대적으로 보이는 화면의 '중첩'은 사실 한국인이 마음 깊은 곳에 품어 온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조선회화의 정신과 조형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창조될 수 있었던 오리지날리티가 느껴지는 작품이 되길 조용히 바란다.

 

☞ 기라영 작가는 일본 타마미술대학원 박사전기과정 미술연구과 회화전공, 동대학원 박사후기과정은 미술연구과 미술전공을 마쳤다. 개인전을 여섯차례 열었으며 전 남구문화원 레지던시 입주작가, 현 울산북구예술창작소 입주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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