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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글이 하나 있다. 2년간 일한 아르바이트생이 퇴직금과 주휴수당으로 700만 원을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을 월 100만원 남짓 가져갈까 말까한 서민 편의점주라고 밝힌 글쓴이는 최저임금은 다 지켰다면서, "어처구니가 없어 그날부로 그만두라고 했는데, 어제 노동고용청에서 삼자대면하라고 우편이 날라 왔다. 걔한테 전화하니 법적으로 주당 몇 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를 유급휴일로 해줘야 하는데 그 2년 치 쌓인 게 450만 원, 퇴직금은 250만 원이라고 하더라"라고 하소연했다.

 이 글의 파장은 꽤나 커서 누리꾼들은 아르바이트생을 옹호하는 측과 점주를 옹호하는 측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법적 권리를 요구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왜 유급휴일을 그때그때 말하지 않고 나중에 목돈으로 챙기려하냐면서 '알바생의 뒷통수' '인간미 없는 알바생'이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편의점 알바 700만 원 요구'는 자신의 자작글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그 글에서 자신이 자작글을 쓰게 된 이유를 상세히 풀어놓았다. 그는 1년 정도 악덕업주 밑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같이 일을 하던 사람 중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7년 동안 일을 하던 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받지 못한 임금, 법정 가산수당, 퇴직금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우리는 직원이고 상대는 사장님인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직원 된 도리라는 게 있다"며 도리어 사장을 두둔하고 옹호하더라는 것이다. 그 뒤 글쓴이는 일을 그만두면서 덜 받았던 돈을 온갖 증빙서류를 첨부하여 조금씩 조금씩 받아냈고, 이후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이 과연 악(惡)인가 고민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앞에서 말한 글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반전'이 있는 게시글은 법과 권리, 그리고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누리꾼들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기보다 '꼼수'나 '인간미 없음'으로 비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을 인간미와 정(情)의 문제로 치부해야 할 것인가. 인간미나 정을 따진다면 오히려 약자인 아르바이트생의 권리를 찾아주고 주휴수당을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법을 따진다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 아닌가 등등.

 사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대등한 개인 대 개인의 계약관계인데도 마치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약 자영업자가 세금을 내는 기한을 모르거나 잊어서 과징금을 물게 되었다면 불평을 하더라도 법대로 세금을 낼 것이다.(물론 고의로 체납하는 악덕 고액체납자도 많다) 하지만 예컨대 아르바이트생이 주휴수당을 달라고 요청하면 아무리 그것이 법에 근거한 것이라고는 하나 기꺼이 지불할 고용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요청한 직원을 자르고 주휴수당에 대해 잘 모르는 새 직원을 고용할 확률이 높다.

 피고용인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정당한 권리의 주장 보다는 '그래도 일자리가 있는 게 어딘데' 하며 주저하고 침묵하게 만든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피고용인을 착취하는 블랙기업들이 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법을 따지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시민의 당연한 역할이 아니라 투사의 일, 싸움꾼이 하는 과격한 행동으로 여겨지게 된다.

 더구나 우리의 정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에서도 드러나듯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집단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거나 하는 일을 몹시 꺼리고 견제하는 성향이 있다. 난방비를 올바르게 책정하기 위해 싸우는 배우 김부선씨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응원을 보냈지만, '잘난척한다' '나댄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권리는 누가 지켜주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찾아야 할 문제이다. '우는 아이 젖 더 준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물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글쓴이는 글의 말미에서 "당신이 가장 비참할 때에 그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 법이 있고 법은 최소한의 기준을 상정하는데 의의가 있다. 우리가 법치 국가에 살고 있는지, 인치 국가에 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만한 시대"라고 하였다. 인치가 아닌 법치국가에서 살기 위해서 법과 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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