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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결국 파멸로 이어지지만 당장은 달콤하다. 엄청난 사건이 세상을 흔들 때 우왕좌왕하는 사회 시스템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바로 그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거짓이다. "좌절감을 이용하라. 하지만 가능한 조절하고 줄여주어야 한다." 짧고 명료한 한마디는 불신으로 물든 사회에서 유효하다. 불신에서 싹튼 좌절감이 몇몇 선동가의 달콤한 거짓말로 옷을 갈아입으면 죄절은 분노와 증오로 부풀어진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괴벨스의 거짓과 선동의 함수관계는 지극히 수학적이다. 그래서 확실하고 뚜렷하다. 선명한 색깔에 문구는 두 세 단어를 넘지 않는다. '진실을 인양하라' '박근혜 아웃'.
 광우병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우리 사회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곧바로 폭력 시위로 연결된다. 광화문 앞이 다시 난장판으로 변한 건 세월호 참사 1주기였다. 세월호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가지 못했다. '진실을 인양하라'는 구호가 '대통령 퇴진'을 넘어 '과도 정부 구성'이라는 전시 상황 같은 붉은 단어로 얼룩졌지만 공권력은 방패만 두들기고 정치는 목젖만 요란하게 치켜들 뿐, 본질은 봄날 꽃잎마냥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인양할 진실이 무엇이길래, 왜 저리도 청와대로 향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지만 상황을 기획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이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변질된 세월호 관련 시위는 '4·16연대'라는 해괴한 조직이 주도하고 있다. 이름도 요란하다.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 집중 행동'이다. 지난 3월 출범한 4·16연대는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이 중심이 된 '4·16가족협의회' 관계자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관계자 등이 주축이 돼 결성됐다. 형식상 개인 회원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사실상 좌파 단체 등 단체 800여개가 참여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완전한 세월호 인양을 제1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인양이 결정되자 시행법 철폐가 맨 앞줄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1주기 행사 이후 분명한 노선은 정권퇴진으로 둔갑했다. 실제 4·16연대에는 세월호 일부 유족 외에 상임운영위원과 사무처장 등에 세월호대책회의의 주요 인사와 옛 통합진보당 당원일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유가족이 참여하지 않은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유가족들과 단일 연대체를 만들어 투쟁 동력 확보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그래서 이 단체는 최근 세월호와 전혀 무관한 민주노총 총파업 지지 성명도 냈다.
 "대중은 이해력이 부족하고 잘 잊어버린다."는 괴벨스의 말에 정색을 하고 "무슨 소리"하고 싶겠지만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병언이 도주하고 선장이 스트립쇼를 했지만 반추하는 언론은 없다. 1년이 지나면서 안전대책이 요란해졌고 시스템이 강화됐지만 선령 30년이 넘은 배들은 여전히 남해와 서해에서 파도를 삼키고 있다. 물론 히밀라야 등산복 차림의 나들이객들은 사진찍기에 바쁘다.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광화문 일대는 주말마다 난장이다. 진실이 아직 침몰해 있다고 건져올려야 한다고 외치다 이젠 아예 청와대를 접수하겠다는 섬광이 번득거린다. 문제는 정치다. 선동하는 정치, 조작하는 정치, 분열시키는 정치가 봄날 꽃망울을 찡그리게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직전에도 그랬지만 좌와 우, 여와 야로 갈려 맞서왔다. 사고의 원인보다 연결고리를 찾으려는데 혈안이 됐고 연결의 끝이 목적지와 다르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궤도수정을 서슴지 않았다. 한쪽은 수구보수 정치권을 겨냥했고 다른쪽은 악덕 기업의 부도덕과 일부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꼭짓점으로 인식했다. 그러니 청계 광장에서 시작된 세월호 추모 촛불 집회는 진실규명보다 "박근혜는 학살자다" "박근혜는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주류를 이뤘고 급기야 유족 중 일부는 정치시위를 반대하는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대중들, 쉽게 말해서 국민들은 대부분 답답할 뿐이다. 아직 건져내지 못한 세월호가 답답하고 시행령의 본질을 떠나 폐기하라고 외치고, 안된다고 버티는 대립구조가 답답하다. 재보선을 한다며 선거판으로 몰려다니며 '더러운 돈 받은 놈'과 '니는 깨끗한 놈이냐'는 멱살잡이를 벌이는 정치가 답답하다. 그놈이 그놈이고 모두가 잡놈 같은데 그런 놈들에게 자신의 한표를 던진 것도 답답하다. 거짓말로 세상을 훔친 괴벨스는 답답해 하는 대중들이 분연히 일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순 없지만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세력의 기반은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말한다. "내게 한문장만 달라,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거리에는 불편한 진실이 펄럭이고 있는지 모른다. '진실을 인양하라'는 플래카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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