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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아이를 낳은 지도 벌써 100일이 다 돼간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를 보면 너무 행복하다. 커가며 달라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다시 못 볼 이 시기의 모습에 매 순간이 아쉬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자연주의를 추구해 아이를 가졌을 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두 가지는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였다. 첫 번째 자연분만은 우여곡절 끝에 유도분만과 무통주사를 맞아가며 결국 해냈다.
 그리고 모유수유. 이건 더 어려웠다. 경험도 없고 정보도 없다보니 막연히 모유수유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산후조리원에 입실했다. 그곳에서 모유수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입실교육을 통해 수유자세, 유축기 사용법 등 기본적인 사항을 배웠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아이를 낳은 직후 초유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초유가 나오기 전에도 아이에게 젖을 물렸기에 민망한 웃음이 났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이를 낳은 지 3일 정도가 지나서 초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먹을 것이니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축을 해보니 황당하게도 처음에는 몇 방울 나오지 않았다.
 젖이 나오지 않아 마사지를 받아볼까 모유촉진차를 마셔볼까 다양한 생각을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는 듯 모유 양은 점점 늘어갔다.
 모유 양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아이를 다루는 것에 대해 조바심이 났다. 먼저 입실한 산모들은 능숙하게 아이를 다루고 있었다. 수유를 하며 아이의 자세를 바꾸는 것도 어쩔 줄 몰랐는데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 인터폰을 하는 산모를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아이를 다루고 기저귀를 갈까 고민하는 사이 며칠이 지나자 필자도 아이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했다.
 산후조리원의 생활은 식사하고 간식을 먹고 그 중간 시간마다 3시간 간격으로 유축하거나 수유하러 가는 패턴식의 바쁜 하루를 보냈다. 유축을 하거나 수유를 하면 허기가 지니 밥을 먹고 또 수유하고 간식 먹고 즉 먹고 젖을 주는 시간의 반복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유축을 해서 수유실에 젖을 갖다 주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 함께 타는 병원손님과 마주치곤 한다. 처음에는 젖병에 담긴 젖을 들고 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민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신감으로 바뀌어 갔다. 수유실에서 산모들과의 안부 인사는 서로에게 젖은 잘나오는지 혹은 아이가 젖을 잘 빠는지를 묻는 것이다.
 실제로 젖이 잘 안 나와서 걱정하는 산모들도 있었고 아이가 잘 안 빨아서 걱정하는 산모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에서 수유콜이 오면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위해서 달려갔다. 필자 뿐 아니라 다른 산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두유를 마시거나 맛사지를 받으며 모유 양을 늘리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산모들이 많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수유실에서 젖을 물리고 객실에서는 쉬며 유축을 했다. 그렇게 모유수유에 열심이던 산모들도 조리원을 퇴실하며 하나둘씩 단유를 했다.
 필자는 아직도 모유수유를 하지만 조리원을 퇴실하며 단유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한다. 조리원에서 유축을 하며 젖을 물리는 것은 다른 산모들과 다 같이 하는 것이므로 자연스럽지만 집에서 혼자 유축하고 있으면 뭔가 모르게 서글픈 생각이 든다.
 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면 외출 자체가 힘든데 수유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젖을 물리고 유축을 해가며 집안일 까지 해야 하는 수고로움과 체력의 한계도 있다. 다른 경우는 직장에 일찍 복귀해야하고 일찍 복귀하지 않으면 사실상 일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다. 여자로서 살아가며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해주는 것은 강한 체력과 인내를 요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무리가 가는 것은 사실이다. 산모들이 편안하게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서 가정에서부터 가족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하다. 부가적으로 육아휴직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되지 않는 사회적인 시스템과 시설내부에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할애해주는 세심함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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