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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 개청식에서 김영삼 대통령, 심완구 초대 울산광역시장 등 참석자들이 현판식을 하고 있는 모습. 1997년 07월 15일.

22일 새벽 서거한 김영삼 전대통령과 울산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과거 울산이 전통적인 야도였지만 박정희 전대통령의 공업센터 지정 이후 정치적 지형도가 급격히 변화했다. 하지만 YS의 정치적 자산에서 울산은 언제나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온산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다. 그는 울산과 부산 경남을 넘어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온산은 말 그대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문민정부 시절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던 중 1997년 3월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포스트 YS'가 될 가능성이 컸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울산은 도시발전의 대전환기를 맞는다. 바로 광역시 승격이다. 당시 울산시민과 상공계,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울산광역시승격추진위원회가 광역시 승격 추진 작업을 이끌었다. 이들은 1995년부터 시민 서명운동 등을 벌였고, 상공회의소와 기업체 노조 등도 동참했다.

 하지만 광역시 승격은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를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YS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온산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이었고 뒤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 YS였다.


최측근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 지역구로 YS 정치적 큰 자산 역할
강삼재 전 사무총장 움직여 경남도 반발 잠재워 이해관계 풀어



 울산은 1962년도 1월 특정공업지구로 지정이 되었다. 1962년 6월 2일 울산시로 승격이 될 때 인구는 17만명이었지만 광역시 승격 당시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당시 울산은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예산이 없어서 도시계획기반이 전혀 되지 않았다. 광역시 승격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였지만 경남도의 반대와 정치권의 복잡한 역학관계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었다.

 이 때 온산의 역할과 경남도의 반발을 잠재운 강삼재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의 역할로 광역시 승격을 이뤄냈다. 물론 강삼재를 움직이게 한 이는 바로 YS였다.  정재환기자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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