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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는 '곤곤 곡곡'하고 울어 우리나라에서는 고니라고 부른다. 행동이 민첩하고 날쌔어서 '잔나비'라고 부르는 동물이 있다. 원숭이의 다른 이름이다.
 잔나비를 나타내는 실질적 한자어는 원(猿)·후 등이다. 신(申)은 지지(地支)의 아홉 번째로 잔나비의 상징으로 쓰인다.

 '잔나비 띠는 재주가 있다', '잔나비 밥 짓듯 한다', '잔나비 잔치' 등 속담에서 원숭이를 지난날 잔나비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잔나비는 '재빠르게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변천된 이름이다.
 '후'는 영리, 똑똑, 깜찍, 재치 등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가하면 경솔, 경망, 간사, 약음, 교활, 변덕 등 부정적인 의미에도 표현된다.
 잔나비의 영어 이름 monkey는 장난꾸러기, 남의 흉내를 잘 내는, 까불다, 만지작거리다, 짓굳은 등의 의미로 쓰인다.
 잔나비의 일본어 사루(さる·猿) 역시 '교활하고 잔꾀를 잘 부리는 자를 비웃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1956년 잔나비 띠에 태어난 남녀가 올해 60세로 생일에 따라 차례로 환갑을 맞는다.
 올해를 '붉은 잔나비 해'라 부르는 이유는 10개의 천간(天干)을 2로 나누면 5조가 되며 그 중 병(丙)과 정(丁)은 같은 조가 된다. 다시 오방색으로 구분지으면 적색에 해당된다.

 올해 천간이 병(丙)이 되며 지지(地支)가 신(申)이 된다. 간지(干支)가 병신(丙申)에 속하니 '붉은 잔나비 해'라고 부른다. '당사주(唐四柱)'에는 잔나비 골격인 원골(猿骨)에 대한 설명이 있다.
 "잔나비가 나무에 깃들이니 위인이 의심이 많도다. 남과 더불어 동사하면 의심이 많아 불쾌하리라. 성정이 교묘하니 수시변통에 능하도다. 육친의 덕은 없으나 공문에서 재물을 얻으리라. 후분은 운이 대통하니 매사여의 하리라" 라고 했다.
 또한 '토끼는 잔나비의 불평을 원망한다 하여 잔나비 띠와 토끼띠는 서로 원진(怨嗔)임을 알 수 있다.
 재미로 보지만 잔나비 띠는 자수성가(自手成家·재산을 물려받거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집안 혹은 재산을 모음)해야 할 삶이다.
 세계 400대 부자 65%가 자수성가형인데 우리나라는 한 명도 없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잔나비 띠에게 기대할 일이다. 하지만 어디 잔나비 띠만 자수성가형이겠는가?

 잔나비는 따로 학습이 없어도 사람의 행동을 곧잘 따라하는 대표적 짐승이다. 이러한 연유로 한 시대 약장수는 군중을 불러 모으는데 항상 잔나비를 활용했다.
 잔나비는 '오소리 기름', '동동구리무' 등 다양한 물건 팔기에' 거울보기', '이 잡기' 등 디양한 흉내로 톡톡히 한 몫을 했다. 때문에 약장수가 제일 아끼는 재산목록이기도 했다.
 잔나비가 학과 함께하면 원학(猿鶴)이라 하여 잔나비의 부정적 이미지가 완전히 탈바꿈된다. 원학은 세속적 삶보다 수행적 삶의 중심으로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은둔하는 수행자와 선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잔나비와 학은 생태적으로 서로 만나기 쉽지 않다. 잔나비는 산에 살며 학은 들판의 습지에 살기에 서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적다. 이러한 연유로 실제적으로 시어(詩語)에 산원(山猿-山猿戱野花/張養浩:1270-1329,'退隱')과 야학(野鶴-野鶴靑雲爲伴侶/元曉:617-686,'自警文')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시끄러움 소인지훤(小人之喧)인 잔나비와 고요함 군자지적(君子之寂)인 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원학은 원학사충(猿鶴沙蟲)의 준말로 주나라 목왕이 남쪽으로 정복하다가 군대가 몰살하자 군자는 잔나비와 학이 되고 소인은 모래와 벌레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대에 오면서 원학은 판소리 소재, 은거처, 수행자와 세속인 등으로 활용된다.
 적벽가(赤壁歌)에도 조조가 싸움에서 크게 패한 내용 중에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층작한데 만학에 눈 쌓이고 천봉에 바람칠제 화초목실이 바이없고 앵무 원학(猿鶴)이 끊어졌는데 새가 어이 우랴마는 적벽강 화염 중에 불타 죽은 군사들이 원조라는 새가되어 조승상을 원망하며 슬피 앉아 울더니라"라고하여 원학이 등장한다.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 계당마을 출신 통도사 구하 스님(1872-1965) 은 통도사 산문 뒤 무풍 다리를 다시 축조하면서 '통도 천년 사찰이 무풍의 만세교를 축조했네. 산에 오르려 물가에 이른 나그네 잔나비랑 학과 함께 다리를 건너네(通度千年寺 舞風萬歲橋 登山臨水客 猿鶴伴逍遙-舞風橋更設吟)' 라고 읊었다.
 불교의 전생담에는 부처가 전생에 잔나비 왕국의 국왕이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러한 전생담은 인도의 잔나비 자연생태계와 연관이 있다. 현재도 인도의 사원에서 쉽게 잔나비를 발견할 수 있다.
 '붉은 잔나비 해'가 이미 밝았다.
 만물의 영장 인간이 어찌 육십갑자에 얽매이고 잔나비 띠에 신세 타량하겠는가? '인간세상의 삶은 결코 게으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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