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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가

                                                                                             박재삼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울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에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 1962년 간행된 박재삼의 첫시집 '춘향이 마음'에는 총 10편의 연작시가 수록돼 있다. 이 시도 그 중 하나로, '춘향전'에서 소재를 취해 춘향의 마음으로 상정된 그리움과 한의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초록이 온 산야로 무장무장 풀려나는 이 봄날, 옥구슬 따 내린 듯 수양버들 척척 휘늘어진 남원 광한루 찾아가면 낭군님 계신 쪽으로 낭창낭창 휘어지던, 아리따운 춘향의 넋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외적 조건만 보고 접근해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부박浮薄한 요즘 세태에 춘향전 서사敍事의 순정을 찾아내기란 바늘 줍기보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남원부사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합니다. 이 시에선 춘향의 집과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맑고 깨끗하며 단정한 우물집으로, 여기에 사는 춘향의 마음 또한 정화수처럼 깨끗했을 것이라고….
 새로 부임한 관리가 춘향의 미모에 반해 수청을 강요하지만 춘향은 일부종사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한편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 어사가 되어 출도해 신관 부사를 탐관오리로 몰아 봉고파직封庫罷職시키고 춘향을 구출합니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아 백년해로를 합니다.
 소위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나 유수의 대기업군 배우자에게만 시선이 쏠리는 물질 만능주의 풍토에서 당시 귀족이었을 10대 유생과 10대 천민 출신 기녀의 딸이 첫눈에 반해 운명적 사랑을 느꼈다면 무슨 조건 따위에 현혹되었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순정한 사랑이란 이렇듯 마음의 현주소 쪽으로 순순히 휘어지는 것입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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