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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김사인

설거지를 마친 어둠이
어린 섬들을 안고 구석으로 돌아앉습니다.
하나씩 젖을 물려 저뭅니다. 

저녁비 호젓한 서호시장
김밥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
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 

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께서
억세고도 정겨운 통영 말로 긴 봄장마를 한마디씩 쥐어으시며
흰 뼈들 다시 접으시며
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이래봬도
충청도 보은극장 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
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홀려
앳된 보슬비 업고 걸리며 민주지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고 돌아
진양 산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 

어진 막내 처제가 있어
형부 하고 쫓아올 것 같은 명정골 따뜻한 골목도 지나왔습니다.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루하고
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
여치 같은 것이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입니다.


●김사인 시인 -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동덕여대 부교수. 고려대대학원 국문학과 수료. 제14회 대산문학상,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 제6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류윤모 시인
뒷골목은 술자리를 펼치면 '왕년에…'를 목청 높이는 과거형의 영웅담들이 있습니다. 빛바랜 남루들이 보잘것없는 안주거리 하나에 막걸리주전자를 놓고 둘러 앉아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시 구절처럼 침을 튀기며 신바람들이 나곤 했습니다.
 이젠 골목도 늙어서 기력이 쇠했는지 멱살잡이 드잡이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통통배 소리 정겨운 통영을 찾아가 능라 비단을 펼친 듯 번쩍이는 낙조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갑니다.
 시인은 파도가 젖 물려 키우는, 애미 애비 없는 섬들을 어르고 달래다 떨궈 놓고는 서호시장의 어둠 속으로 잠입합니다. 왕년에 보은극장 앞에서 침께나 뱉으며 한가락 하던 몸으로 술집들을 성지 순례하듯 놀던 시절이 있었나 봅니다.
 아내의 임의동행 영장을 발부하러온 괭이 같은 막내 처제의 '형부!'하는 땡고함소리에 기고만장하던 허세가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죽었을지도 모를 일. 아내 속을 썩이며 놀아본 사내치고 늦게라도 철들어 착하게 살겠다고 진드근히 들어앉았다면 그나마 기특할 일입니다.
 시장 뒷골목에는 막걸릿잔 소줏잔에 꽉 움켜쥔 사내들의 울혈과 손때 묻은 사연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피붙이 같고 투박한 사투리마저 정겹습니다. 골목 골목, 날 것의 살 부비며 살아가는 얘기들이 음화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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