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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범인에게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엔 감사를…'이라는 글을 사랑했던 사람은, 1973년 5월 4일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한 조각가 권진규다. 우리 나이로 쉰 둘이었다.

 세 번의 개인전 그리고 고려대학교에서 전시를 개막한 다음 날, '인생은 공, 파멸'이라는 마지막 글과 함께 그는 테라코타와 석고, 작은 돌로 깍은 조각 등 겨우 수십 점 남기고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몇 안 되는 브론즈 작품들은 고통으로 찬 우리의 삶을 암시하듯 어둡고 깊은 사색에 잠긴 인물상이다. '남자흉상'은 보일 듯 말 듯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다. 바깥으로 벌어진 귀, 우직한 코, 꾹 다문 입술이 작가 자신의 얼굴을 닮았다. 아니, 세상의 모든 번뇌를 짊어진 부처님의 얼굴인지도….

귄진규, 남자흉상, 테라코타에 채색, 30×23×45㎝, 1968년, 개인소장.
 권진규는 조각가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의 인생은 고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조국의 현실은 예술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좌절로 나날을 채워나가는 삶이였다. 그래도 예술이라는 희망에 매달려 싹을 띄우려는 사슴의 여린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보려 했지만 세상은 강철같은 가슴을 원했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숨을 거두는 것으로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마저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범인의 생각으로는 몇 번의 결혼 실패에 대한 좌절, 변화하는 세계에 소극적 대항, 예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애착의 소멸이 이러한 결과를 만든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내가 없으면 화려한 장미로 뒤덮인 세상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세상이 내 뜻과 다르다고 변하기 싫다며 최소한 저항마저 포기하려 한다.

 우리도 그와 같은 부류일지 모른다. 단지 우리 스스로 아직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은 강철같은 가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음짓는 모습과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최소의 저항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범인은 모를 뿐이다.  

 작은 저항이 범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가 우리 삶을 살만한 가치로 바꾸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범인들은 변화하면 안된다고 온갖 수단으로 거부하기에 범인들의 삶은 괴롭고 또 피곤한 것이다.    
 '범인에게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에 감사를…',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새삼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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