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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관광부가 우리나라 종교를 조사한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만큼 종교자유를 넘어 방임하는 국가도 없다. 흔히 알고 있는 불교나 유교, 기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슬람, 러시아정교, 힌두교, 남묘호랑개교로 잘 알려진 일본의 SGI 등 전 세계의 종교가 총 망라돼 있다. 이는 우리가 반만년 넘도록 단일 국가의 정통성을 지켜왔지만 외세 문명에는 늘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역으로는 민족정체성이 약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결국 유행과 속설에 약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좋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신앙도 없고, 배우고 덜 배운 차이도 없다. 모두가 한 통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술에 기초한 6백년만의 황금돼지띠 해라고 하자, 상점마다 누런 칠을 한 황금돼지가 넘쳐나고 있다. 황금돼지 인형 등 소품 하나씩 갖고 있지 않은 집이 없다. 이런 유행이 급기야는 아이들 출생일까지 조작하는 지경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어, 우리를 더 없이 아연케 하고 있다. 출생과 관련된 사주팔자는 동양철학, 그것도 도교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도교를 신봉하는 종교인이 있는가.
 있다면, 역술인이거나 미신(迷信)을 믿는 무지몽매한 인간뿐이다. 평소에는 더 없이 이성적인 척 하다가도 자신과 직결된 문제에 봉착만 하면 미신에 줄을 선다. 동네 담배포보다 많은 것이 점집이고 역술인집이다. 신년만 되면 한해 운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갑남을녀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변형이 아이들 출생신고에 나타나고 있다. "정해년 약력 2월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복을 받는다"는 출처불명의 이 말 한마디에 신생아 부모들이 너도나도 출생신고를 미룬 채 2월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한다. 산후조리원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가 절반가량을 넘고 있는가 하면, 산부인과에는 출생확인서를 2월 이후로 만들어달라는 웃지 못 할 청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보다 더 극성스런 부모는 출산일을 아예 2월 이후로 하기 위해 분만지연제를 주사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설사 이 속설이 맞다 하더라도 사주팔자가 같은 아이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쏟아지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겠는가. 전부가 대통령, 아니면 재벌총수 사주라고 한다면 그 혼란도 만만찮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었을 때 어느 방송에서 YS와 사주팔자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더니,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양봉을 하고 있더라 한다. 수천만의 군중을, 벌떼들로 대신한 만봉지상(萬蜂之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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