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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지역 자율형사립고와 과학중점학교, 영어중점학교 등이 줄줄이 교육과정을 축소·폐지하거나 지정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오락가락 교육정책에 혼선을 빚으며 학교·학생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는 실정이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지역 자율형사립고와 과학중점학교, 영어중점학교 등이 줄줄이 교육과정을 축소·폐지하거나 지정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 학교는 이른바 '수월성 교육'에 집중했던 전 정부가 '고교 교육과정 다양화 정책'을 시행하며 쏟아냈던 산물이다. 그러나 현 정부들어 정책기조의 무게중심이 평준화 쪽으로 살짝 이동하면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사고 지정취소를 검토하고 나선 성신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학교다양화 정책의 현주소를 해부해봤다. 편집자


#성신고 일반고로 전환 검토 문의 빗발
자율형사립고인 성신고등학교가 지정 5년 만에 일반고로 유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학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학교가 평준화고교로 전환될 경우 대입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재학생 또는 자사고를 목표로 고입을 준비하던 중 혼선에 빠진 중학생의 학부모가 대다수였다.
 이들은 "학교가 자사고이냐 일반고이냐는 대입은 물론 취업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아이의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청이나 학교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보도 이후 학교 측에서는 "정확한 시기가 구체화된 것은 아니며 내년 4월께 시교육청과 다시 협의하기로 하기로 한 만큼 결론이 어떻게 날 지 몰라 학부모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자사고 지정 이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왔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가피하게 일반고 전환방안을 울산시교육청과 논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0년부터 자율형사립고 대거 확대
정권 교체되며 다양화→평준화로 이동
정부 지원 열악 학교마다 재정압박
학부모도 들쑥날쑥 정책에 불만 고조

#전국 54개 자사고 중 8곳 지정취소
성신고의 이같은 고민은 애초부터 예고됐었다.
 지난 2011년부터 처음 자사고로 지정받게 된 것은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당시는 교육부(옛 교육과학기술부)가 우수한 학생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과정 다양화에 치중할 때였다.
 울산에 특목고인 외국어고등학교가 신설된 것도 이같은 정책 기조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자사고를 무더기로 지정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정부는 과거 소수에 불과했던 '자립형사립고'를 2010년부터 '자율형사립고'로 변경하면서 운영학교수를 대거 확대했다.


 일반고였던 성신고 역시 이 때 시교육청의 권유를 수용해 자사고에 합류했다.
 이에 따라 울산은 특목고인 과학고·외고, 자사고인 현대청운고·성신고 등 4곳(직업계열인 마이스터고·예술계열인 울산예고 제외)의 특목·자사고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총 54곳의 자사고 가운데 지난 5년간 지정을 취소한 곳은 이날까지 8곳에 달한다.
 현재도 곳곳에서 지정취소를 준비하고 있어 일반고 전환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재정부담에 학교들 어쩔 수 없는 선택
자사고 취소 붐이 전개된 데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교육정책도 변화의 바람을 탄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자사고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멀어지면서 해당 학교들은 심각한 재정압박에 시달려왔다.
 특히 사회통합전형(당시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이 미달될 시 정부가 보전해주기로 했던 지원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치명적이었다.
 울산은 정원의 20%를 이 전형으로 뽑도록 하고 있다.
 56명을 뽑아야하는 성신고는 2년 연속 46명이 대거 미달 사태를 빚으며 재정난을 이어왔다.
 현재의 등록금을 기준으로 볼 때 2억에 달하는 재정부족을 매년 겪어온 것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정부가 유일하게 지원하던 비정규직 인건비 마저 전면중단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자사고는 말그대로 교육과정, 교원인사, 학사관리 등에서 학교가 광범위한 자율성을 갖도록 한 형태의 사립학교로 시교육청의 여타의 지원은 전혀 없다.


 대신 수업료를 일반고의 최대 세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성신고는 모기업인 성신양회의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까지 415만원이었던 수업료를 올해 일반고의 세배를 꽉채운 436만 원으로 인상했다.
 모기업인 성신양회도 학교법인 성신학원 측에 2억2,800만원 수준의 전출금을 지원하다가 지난해에는 7억3,800만원으로 올렸다. 그런데도 올해 학교 운영에 필요한 경비 중 6억원이 부족한 상태다.
 성신고 오수용 교장은 "당초 재정부담을 우려해 자사고 운영에 난색을 표했지만 교육청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며 "그런데 이제는 오롯이 학교가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으면 상황에 놓였다"고 털어놓았다.

# 울산 각종 중점학교도 폐지·축소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자사고 뿐만 아니다.
 교육과정 다양화의 일환으로 시행된 각종 '중점학교'도 폐지되거가 축소되고 있다.
 울산에는 이른바 '준과학고' 개념의 학교인 '과학중점학교'로 방어진고·강남고·중앙고가 지난 2019년부터 연차적으로 지정됐다.
 방어진고와 강남고는 학교 전체가 중점학교로 지정됐다가 지난해부터 학년별 3학급씩 총 9학급만 과학중점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규모를 축소했다.
 중앙고 역시 당초 학년별 6개학급 총 18학급을 운영하다 같은 시기에 동일한 규모로 줄였다.
 교육과정은 어려운 반면 이같은 수월성 과정을 이수한 학생의 경력이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비율은 줄어 희망하는 학생들이 급감하고 있는데 따른 조치다.


 과학중점학교의 경우 수학은 모두 4과목, 과학은 총 8과목씩이나 이수해야하기 때문에 재학생들의 학습부담이 크다. 반면 대학입시제도는 입학사정관제도를 속속 폐지하는 등 변화를 보이면서 중점학교 출신들이 경쟁력을 드러낼 수 있는 통로는 좁아진 것이다.
 이 때문에 강남고는 학급을 줄였는데도 올해 신입생이 미달되는 사태를 겪었다. 현재 2학급만 중점학교로 운영하고, 나머지 1개 학급은 평준화 과정으로 보충했다.
 '영어중점학교'로 지정됐던 성광여고는 아예 중점학교를 폐지했다.

# 교육부 "학생 불이익 받는 일 없어"
현 정부는 과거 수월성 교육 정책을 희석시키면서 대신 진로에 맞는 '진로집중과정'을 도입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혼선을 빚어왔던 일선학교들은 아직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 역시 '종잡을 수 없는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한 학부모는 "학비가 대학등록금에 버금가는 데도 자사고를 선택하는 이유는 학교의 네임밸류를 믿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들쑥날쑥한 정책 때문에 학교의 간판이 하루아침에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교육부 측은 교육과정이 달라져도 기존 학생들이 받게 될 불이익은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대입전형담당 김태훈 사무관은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하더라도 재학생들은 일반고 신입생과 분리된 자사고 과정을 그대로 이수하게 된다"며 "자사고 졸업생은 어차피 서류전형에서 제출하는 학생부에 자사고 과정 이수 경력이 기입되기 때문에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됐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주화기자 u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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