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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활기넘치는 뉴욕거리를 길을 걷는 금발의 젊은이 손에는 R. Mutt라고 쓰인 남성용 소변기가 들려 있었다.

 참가비 6달러를 내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미국에서 가장 젊은 아방가르드를 표방한 '앙데팡당협회'에 자신의 작품으로 접수했다. 소변기를 접수받은 협회는 혼돈에 빠졌다. 대량생산한 물건이 작품이냐,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이다, 아니다, 출품비만 내면 작품을 출품할 수 있으니 당연히 출품시켜야 한다, 등등. 난상토론 끝에 결론은 출품 불허였다.

 이런 일을 벌인 젊은이는 프랑스인 마르셀 뒤샹이다. 그는 예상대로 논란이 일자 준비한 반박문을 바로 발표했다. 1950~60년대 미국 현대미술의 정신적 지도자, 젊은 예술가들에게 우상이었던 그는 1917년 이미 뉴욕에서 스타였다. 유럽의 최신 미술사조를 소개하는 '아모리 쇼'(1913)에서 그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가 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움직임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유럽에서 출품이 거부되었던 이 작품은 고전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뉴욕의 지성인과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1915년 아예 뉴욕으로 건너온 그는 뉴욕에 자신의 예술개념을 던졌다. 과감하게 아방가르드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것이다.

 R. Mutt라고 쓴 소변기는 수천 년을 내려온 미술개념에 대한 반란이었고, 예술가들에게 날카로운 문제제기였다. 남성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은 보았을 물건, 손으로 만든 것도 아닌 산업물품을 예술작품이라고 세상에 내던진 것이다. 뒤샹은 프랑스에서도 와인 병을 말리는 흔한 건조대를 작품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20세기에 던졌다. 왜 예술인가? 무엇이 예술이라고 판단하게 하는가? 그리고 누가 예술을 판단하는가?

 이 엉뚱발랄한 프랑스 이방인은 이후부터는 체스 프로기사로 활동하면서 점점 예술작품과는 멀어진다. 행위가이면서 프로기사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의 선동자로 살면서 새로운 작품은 제작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며 공개하도록 한 마지막 작품 또한 묘한 것이었다. 예술이 당연하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당연한 것에는 창조성이 싹틀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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