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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에 근무하게 되면 출근해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일일상황보고이다. 이 보고는 전날 오전 6시를 기준으로 24시간동안 전국의 화재 등 각종 사고를 요약 정리한 것으로 소방공무원이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보고서이다. 화재는 늘 접하지만 유난히 가족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사건들을 읽게 되면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더욱더 안타깝고 남일 같지가 않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이러한 비슷한 화재사고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아파트는 우리나라 전체인구 약 2/3 이상이 생활하는 주거공간으로 편리함이 있지만 자칫 화재가 발생하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되는 위험성이 있다.

 지난 9월 오전 4시경 서울 도봉구 쌍문동 아파트 13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아버지와 딸이 숨지고, 어머니와 아들은 부상을 당했으며, 이웃들도 연기 등으로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는 등 2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은 거실의 텔레비전 장식장 뒷편 전기적 요인으로 밝혀졌다. 인명피해가 컸던 원인은 경량칸막이가 있었지만 피해가족은 경량칸막이로 대피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2013년 12월 부산 화명동 아파트에도 발생했다. 전기 합선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는 거실에서 집안전체로 확대되어 미처 대피하지 못해 일가족 4명이 숨졌다. 특히 어머니는 두 자녀를 양팔로 감싸 안은 채 베란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경량칸막이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 2월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일가족 3명이 현관으로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평소 직장에서 소방안전교육을 받은 40대 가장이 침착하게 발코니의 경량칸막이를 부수고 옆집으로 탈출해 가족 모두의 목숨을 건졌다. 이처럼 경량칸막이는 화재 등 긴급 상황 시 탈출할 수 있는 있는 생명로인 셈이다.

 아파트 경량칸막이는 얇은 두께의 석고보드로 망치나 발로 차는 정도의 충격만으로 쉽게 깨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1992년 7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공동주택 3층 이상 층의 발코니에 세대 간 경계벽에 경량칸막이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더 나아가 2005년 이후에는 경량칸막이 대신 세대마다 2㎡ 이상 공간을 두어 불이 나서 미처 밖으로 대피할 수 없을 때 1시간 이상 불에 견딜 수 있는 대피공간을 두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최소한의 안전공간 확보는 되어있지만 문제는 안전장치 없는 아파트 발코니 확장이다.
 지난 1월 10일 오전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는 사망자 4명을 포함한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발코니가 있는 집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발코니는 상층부로부터 화염이나 연기층이 전이되는 것을 막아줘 피난계단으로의 탈출하기 어려울 때 옆 동으로 피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 소방대의 진입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발코니가 확장되면서 불길은 곧장 외부로 치솟아 거주자가 그대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발코니를 확장할 땐 방화판이나 스프링클러 같은 안전장치를 꼭 갖춰야 하지만 비용 때문에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량칸막이처럼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편리한 주거공간을 위해 발코니를 확장한 것은 나와 이웃주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을 주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무관심과 편리함이 우리의 안전보다 우선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의 불편함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줄 것이고 더 많은 관심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소방서에서는 겨울철을 맞아 소방안전대책으로 아파트 관리소장, 입주민에게 소방훈련, 소방교육, 간담회를 통해 화재발생 시 경량칸막이 활용법, 소방시설 사용법, 초기대응요령, 소방차 길터주기 홍보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입주민이 모두가 인식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반상회, 안내문, 안내방송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경량칸막이 또는 대피 공간의 중요성 등 화재예방 및 대응에 관한 사항을 반복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또한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유지관리도 철저히 해야 하며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 5분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차량을 이동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소방차 길 터주기는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사랑의 실천임을 잊지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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