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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미사 때, 2차 헌금이 있었다. 대구 서문시장 화재를 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헌금이었다. 신부님은 이 춥고 배고프고 쓸쓸한 연말에 생각나는 분은 경주 최 부잣집 어른이라고 하셨다. 최 부잣집 어른은 1년 수학의 1/3을 이웃에게 베풀었으며 최 부잣집에 오는 과객에게 식사를 잘 대접해 줬음은 물론이고 사흘 치 식량을 주어 보냈다고 했다. 며느리는 시집 온 날부터 삼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야 했으며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함은 최 부잣집의 십 훈 중에 들어 있었다.

최 부잣집은 경주 교동에 있다. 흔히 부잣집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아흔아홉 칸의 어마어마한 집은 아니지만 창고는 크다. 창고 안에 쌓인 1년 수확의 1/3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베풀었다는 최 부잣집. 언제나 경주 온 관광객들은 그 집 뜰에 모여 안내자의 설명을 듣던 모습이 떠올라 최 부잣집을 둘러 집에 왔다.

그 날 이른 저녁, 티비에서는 아프리카 잠비아의 3형제 이야기를 보여 주었다. '나눔'이라는 프로였다. 아들 셋을 놔두고 아버지, 어머니가 도시로 떠났다. 큰 아들인 열세 살 샤드릭은 60명 반 아이들 중에서 1,2 등을 다투는 아이였고 꿈은 의사였다. 그러나 샤드릭은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우선 동생 둘의 끼니를 책임져야했고 동생들이 학교 갈 수 있도록 도와 줘야했기 때문이다.

샤드릭이 하는 일은 자기 키보다 몇 배나 큰 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어트리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면 하루에 세 그루 정도. 도끼로 찍어 넘어 트리기 때문에 발톱이며 손, 다리가 성하지 않았다. 잠비아의 아이들은 거의 다 숯을 만드는 데서 하루 종일 숯을 줍는 일을 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받는 일당이 500원. 샤드릭 형제는 형이 나무를 베면 구덩이를 파고 불을 피워 숯을 구웠다. 그 과정이 한 달이 걸리는데 팔아 받는 가격은 우리 돈으로 3,500원.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두 시간 떨어진 '움바'를 다녀 온 리포트는 울먹이며 이야기를 했다.

잠비아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곳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다. 아프리카 여행객들은 모두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환성을 지른다. 이만큼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 코스이다. 나도 10년 전 이곳을 다녀왔다. 이슬방울처럼 날리던 폭포 줄기, 선명한 무지개 속을 거닐며 우리는 깔깔댔다.  그곳의 아이들이 이렇게 끼니를 위해 혼신을 다해 땀을 흘리고 있는 줄은 그 때는 몰랐다.

그 현장을 취재하러 간 리포트 언니가 샤드릭에게 물었다. 
" 이 숯을 팔아 식량을 사고 동생들을 학교 보낼 수 있어요?"    
샤드릭은 아무 말 못하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 모습 위로 떨어지는 아나운서의 멘트.
"이 세상에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천주교엔 '까리타스' 라는 단체가 있다. 지구상의 오지에서 교육은 커녕,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를 돕는 단체이다. 어느 날, 이 일을 하시는 신부님이 이 단체 후원을 돕기 위해 우리 성당에 오셨다. "나는 신부가 되면 남한테 돈 이야기는 안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처음 엔 성당을 찾아다니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그러나 오지를 다녀 온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 아이들을 굶게 할 수는 없다."

이 날, 나를 비롯해 다수의 교우들이 정기 후원에 서명을 했다. 매달 자동이체로 후원금이 빠져 나간다. 생각보다 많은 이웃들이 춥고 쓸쓸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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