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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생각·벌레들
                                                                                       
박지영
 
꿈속으로 작은 벌레들이 떼 지어 몰려온다
십자가를 들고 온몸으로 막아서도
몸속으로 파고들어
머릿속에서 고물거리며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들이 벌레가 되어 내 몸을 휩싸고 돈다
벌레들은 점점 커져서 나를 삼켜버리기도 하고
벌레들에 쫓기며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벌레들은 내 몸속에서 털까지 달고
스물스물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뇌수를 파먹고 있어, 그 생각 끝에서
나는 내 말꼬리를 잡고
말밑으로 내려서고 있다. 언어들은
기억회로에 남아 혼탁하게 들끓고
글자들은 징그러운 벌레들처럼
책 위를 방향감각 없이 기어 다니고 있다
 

● 박지영 시인- 경북 의성 출생. 이화여대 불어교육과 졸업.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수료. 1992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서랍 속의 여자' '귀갑문 유리컵' '눈빛' '검은 맛'. 평론집 '욕망의 꼬리는 길다'.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상 수상.
 

 

▲ 박성규 시인

어느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 중에 송판에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었다. 외롭다는 것이 무엇일까? 혼밥, 혼술족은 아니지만 일여 년 동안 혼자 지내며 자연스럽게 외로움을 체험하고 보니 아직 처절하게 겪어보지 않아서 인지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으로 뒤범벅이다.
 그런 차에 삼월이 되었다고 산책이라도 나가면 깔따구인지 하루살이인지 모르지만 수많은 벌레들이 주위를 맴돌며 산책을 방해한다. 때 이른 불청객의 방해를 받으며 나선 산책길은 허탈하기만 했다.
 밤새 비가 내렸으니 곧 경칩이 다가 올 거고, 그러면 입 붙은 개구리들이 기지개 켜며 여름 한철 또 울어대겠지만 저 날벌레들을 퇴치하는 데 있어서 개구리만큼 좋은 도구가 어디 있으랴. 아무리 먹이사슬이라고 하지만 남녘부터 전해오는 봄소식에 한해를 시작하자고 다짐하는데 저 벌레들이 설치는 바람에 내 머릿속에도 벌레들이 꿈틀대는 것 같다.
 그동안 혼자 지내 오면서 처음에는 외롭다는 생각보다 자유롭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었지만 지금은 외롭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그동안 책이라도 읽으며 지냈으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싶은데 근래에는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활자들이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것 같다. 뉴런이 온전하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표일까? 박지영 시인의 작품 '꿈·생각·벌레들'을 대하는 이 순간 펼쳐놓은 책의 활자가 징그러운 벌레로 변신하여 기어가는 것 같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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