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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작가 최인훈의 『광장』을 읽어보았다. 대학생 때 읽어 보고, 지금 읽었으니 약 35년 만에 다시 읽은 셈이다. 느낌이 새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그동안 꾸준히 손을 보아, 내가 새로 구입해서 읽은 책은 다섯 번째로 개정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1960년에 처음 『광장』을 발표한 이래 약 30여 년 동안 『광장』을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쳐 왔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작가는 나이 80이 넘어버렸다.  

    내가 읽은 『광장』은 언어 표현에 있어서도 한자어를 되도록 우리말로 바꾸고 주인공 이명진의 이력에 의문이 가는 부분을 납득 할 수 있도록 보완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광장』은 1970년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필독서처럼 읽었던 책이다. 게다가 이 『광장』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광장'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광장』의 스토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인공 이명준은 아버지가 북으로 월북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혼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남과 북이 치열하게 이념 공방을 할 때 이명준은 무관심했지만, 월북한 공산주의자인 아버지가 대남 비난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취조실에 불려가 고문을 받게 된다. 이후 이명준은 남한에서 개인 밀실을 빼앗겼다며 이상주의를 꿈꾸며 북으로 간다. 북으로 간 이명준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신문사 기자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이명준은 북한 사회 역시 인민을 위한 혁명은 없고 혁명의 화석만 남아 있으며, 개인의 밀실은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광장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다가 6. 25전쟁이 발발하고, 이명준은 정치보위부 간부가 되어 서울로 가게 된다. 그리고 낙동강 전투에 참여하는데 그곳에서 뜻밖에도 간호병으로 지원 참전한 연인 은혜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둘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은혜는 명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린다. 그런데 은혜는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이명준은 포로로 잡히고 만다. 포로송환이 있던 날 이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을 택하고 인도행 선박을 타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이명준은 계속해서 배를 따라오는 큰 갈매기와 작은 갈매기를 보고 은혜와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만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분단체제이다. 남북 분단 이후 60년도 훨씬 넘은 지금도 남북 이데올로기가 살아있는 곳은 이 지구상에 우리 한반도뿐일 것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광장』에 애착을 갖고 개정하면서 끝내 이명준을 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 속에 개인 이명준을 통해 남한과 북한을 아우르는 비판의식을 통해 남북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분단소설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지만, 분단 문제에 대한 극복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덮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점에서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 『광장』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광장>의 의미와 <광장>의 이미지를 심어 준 데에 대해서는 한국 현대 소설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토론을 벌이던 공간이었던 '아고라'이다. 그래서 광장은 민주주의, 번영, 공공성을 상징했다. 반면, 절대권력의 지배공간으로서 권위의 상징이 되어 감시되고 통제 받는 곳이기도 했으며, 또한 이에 맞서는 저항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의미의 광장의 역사라 처음 시작된 것은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으로 서울시청 앞이라고 한다.

 광장의 정치가 회자되는 시대에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어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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